SK가 2021년 8월 시그넷이브이(현 SK시그넷)의 기존 주주에게서 전환우선주를 사들인 가격은 주당 5만원이었다. 5년 뒤 당시 인수한 우선주를 포함해 지분을 넘기는 계약의 공시상 주당 가액은 1871원이다. 그사이 SK는 세 차례 더 출자했고, 매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소수주주 지분 취득과 추가 증자에 돈을 쓰게 됐다.
최초 인수대금 2932억원은 예정된 지출까지 합치면 총투입액 6158억원으로 늘어난다. 반면 현재 공시된 매각대금은 약 692억원에 그친다. 최대 1250억원의 추가 대금도 향후 실적 등에 달려 있어 전부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계약상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추가 회수액은 이보다 줄어든다.
◇인수대금 2932억, 추가 출자로 5082억까지
SK시그넷은 29일 SK가 보유하거나 주식교환으로 취득할 주식 가운데 3698만257주를 SK일렉링크에 넘기는 계약을 공시했다. 보통주와 우선주를 합친 물량으로, 현재 공시상 주당 가액은 1871원이다. 거래종결은 내년 1분기로 예정돼 있다.
인수자인 SK일렉링크는 현재 앵커에쿼티파트너스가 최대주주인 충전소 운영사다. 앵커에쿼티파트너스는 지난해 SK네트웍스로부터 SK일렉링크 경영권을 인수했다. 아직 사명에 'SK'가 붙어 있지만 지난해 하반기 SK 계열에서 제외됐다.
SK와 시그넷의 인연은 2021년 4월 인수계약에서 시작됐다. 당시 최대주주인 리오제일호사모투자합자회사의 전환우선주 162만87주를 주당 5만원, 총 810억원에 사고, 신주 592만주를 주당 3만5850원에 인수하며 2122억원을 더 넣었다. 그해 8월 납입을 마친 SK는 지분 53.4%를 가진 최대주주가 됐다. 이듬해 3월 사명도 SK시그넷으로 바뀌었다.
인수대금 2932억원으로 SK의 지출이 끝나지는 않았다. 회사가 손실을 내면서 추가 자금이 필요해졌다. SK시그넷은 2024년 매출 838억원에 영업손실 2428억원, 순손실 2441억원을 냈다. 이듬해 약 1500억원 규모의 보통주 증자가 이뤄졌고 SK가 현금 1150억원을 넣었다. 해외판매 파트너인 마루베니는 약 350억원의 채권을 출자전환했다.
자금 수혈은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순손실은 517억원으로 줄었지만 흑자로 돌아서지는 못했다. SK는 그해 12월 보통주 300억원어치를 주당 9662원에 인수하고, 올해 6월에는 주당 7102원에 우선주 700억원어치를 받았다. 인수 이후 세 차례 출자액은 2150억원, 최초 인수대금까지 합친 투자액은 5082억원으로 불어났다.
이때까지의 자금 용도는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올해 6월에도 북미 생산능력 확충과 연구개발, 원재료 매입 등에 돈을 쓰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2025년 5월 매각설을 부인했던 회사는 추가 출자를 거친 뒤 매각 절차에 들어섰다.
SK는 전기차 수요 성장 둔화와 충전기 보조금 축소 등으로 사업환경이 악화한 가운데 충전기 제조사업과 그룹 핵심 성장축의 연계성이 제한적이라고 판단했다. 추가 자금을 투입해온 사업을 매각하고 핵심사업으로 자본을 재배분하기로 한 배경이다.
◇매각 준비에 1076억 더…추가 대금도 실적에 달려
매각 단계에 들어서자 지출의 성격이 달라졌다.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출자에 이어 소수주주 지분을 사들이고 매각 선행 조건을 충족하는 데도 돈이 필요해졌다. 매각 준비에 드는 금액은 이미 집행한 돈과 예정액을 합쳐 1076억원이다.
SK가 택한 방식은 소수주주 지분을 사들여 완전자회사로 만든 뒤 상장폐지하고 매각하는 절차다. 올해 7월부터 진행한 두 차례 공개매수로 보통주 918만4158주를 주당 8200원에 취득하는 데 753억원을 썼다.
남은 88만8428주는 내년 1월 5일로 예정된 주식교환을 통해 취득한다. 대가는 공개매수와 같은 주당 현금 8200원으로, 약 73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 소수주주 지분을 정리하는 데만 총 826억원을 쓰는 셈이다.
매각 선행 조건으로 250억원의 추가 출자도 예정돼 있다. SK시그넷이 SK를 대상으로 우선주를 발행하면 SK가 이를 인수한 뒤 매각 대상에 포함한다. 구체적인 발행조건과 납입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인수와 세 차례 증자, 두 차례 공개매수에 이미 쓴 돈은 5835억원이다. 예정된 주식교환 교부금 73억원과 증자 250억원까지 더하면 총투입액은 6158억원이 된다. 회사에 들어간 출자금뿐 아니라 기존 주주에게 지급하는 주식 취득대금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반면 현재 계약에 적힌 매각대금은 약 692억원에 그친다. 전체 지분의 기본 매각대금은 750억원으로 정했으나, 보호예수 중인 보통주 310만4947주가 이번 매각에서 빠지면서 대금도 그만큼 줄었다. 거래종결 전 증자와 우선주 전환 등에 따라 매각 주식 수와 대금은 조정될 수 있다.
기본대금 외에 향후 실적에 따라 최대 1250억원을 더 받을 수 있다. 다만 SK시그넷의 2028~2029년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와 순차입금 등이 계약상 조건을 충족해야 해 최대 금액을 모두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회사를 팔고도 투자금을 얼마나 더 회수할지는 시그넷의 실적 회복에 달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