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영업으로 확보한 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도 투자 지출은 전년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투자까지 마치고 남은 잉여현금은 1년 전보다 7조원 넘게 감소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는 현금 유입이 줄었음에도 투자를 늘리면서 잉여현금이 두 회사의 배당 지급액에도 못 미쳤다.
변화의 중심에는 현대차 차량부문이 있었다. 영업현금 감소와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잉여현금이 전년의 4분의 1에도 미치지 못했다. 기아와 다른 계열사들이 투자 후 현금을 남겼지만 그룹 전체의 여유가 줄어드는 흐름까지 막지는 못했다.
◇들어오는 현금 줄어도 투자 지속…완성차 잉여현금 63.3% 감소 30일 각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상장 10개사의 지난해 합산 잉여현금은 11조5861억원으로 전년 18조8851억원보다 38.6% 감소했다. 영업활동으로 확보한 현금에서 투자 지출을 빼고 남은 금액이 약 7조3000억원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글로비스, 현대위아, 현대로템, 현대오토에버, 이노션을 대상으로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설비투자(CAPEX)를 차감했다. CAPEX는 유형·무형자산 취득액을 적용하되 현대차 차량부문은 공시 형식에 따라 처분액을 뺀 순액을 반영했다. 현대차는 금융·기타부문을 제외한 차량부문, 나머지 회사는 연결 기준이다. 현대차 차량부문 현금흐름은 해당 부문 법인의 내부거래 조정 전 단순 합산액이며, 분석 대상 계열사 간 내부거래도 제거하지 않았다. 배당은 같은 기간 현금흐름표에 반영된 실제 지급액을 비교했다.
잉여현금 감소는 투자 급증보다 현금 유입 축소에서 시작됐다. 10개사 합산 영업현금은 38조7551억원에서 30조9254억원으로 20.2% 줄었다. 약 7조8300억원이 감소한 반면 CAPEX는 19조8700억원에서 19조3394억원으로 2.7% 줄어드는 데 그쳤다. 들어오는 현금은 크게 줄었지만 투자에 쓰는 금액은 거의 유지됐다.
완성차회사 두 곳은 오히려 투자를 늘렸다.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 영업현금이 29조5490억원에서 20조6339억원으로 30.2% 감소하는 동안 CAPEX는 13조9105억원에서 14조8987억원으로 7.1% 증가했다. 양쪽의 변화가 겹치면서 잉여현금은 15조6384억원에서 5조7352억원으로 63.3% 줄었다.
현대차 차량부문의 변화가 특히 컸다. 2024년에는 영업으로 16조9846억원을 확보해 CAPEX로 9조2279억원을 쓰고도 7조7567억원이 남았다. 지난해에는 영업현금이 11조5798억원으로 줄었는데 CAPEX는 9조9056억원으로 늘었다. 투자 후 남은 현금은 1조6742억원에 그쳤다.
이 차이를 차량 판매 부진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차량부문 영업현금에는 배당금 수취도 포함돼 있다. 이 금액이 2024년 5조106억원에서 지난해 1조4907억원으로 줄었다. 배당금 수취 감소액만 약 3조5200억원으로 영업현금 감소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기아는 이익 감소에 재고 부담이 더해졌다. 영업현금이 12조5644억원에서 9조541억원으로 줄었고 현금흐름표상 재고자산 증가에 따른 차감액은 1조4966억원에서 2조6427억원으로 커졌다. 현금이 재고에 묶이는 규모가 늘어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CAPEX는 4조6826억원에서 4조9931억원으로 증가해 잉여현금은 4조611억원으로 줄었다.
◇투자 마치니 배당보다 적게 남아…현대차·기아 간 달랐던 여력 투자 후 남은 현금이 줄면서 배당과의 관계도 달라졌다. 지난해 현대차 차량부문과 기아의 합산 배당 지급액은 6조4730억원이었다. 잉여현금 5조7352억원보다 약 7400억원 많았다. 당해 영업현금에서 CAPEX를 차감한 금액으로 배당의 88.6%를 충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회사별로 보면 기아의 잉여현금은 배당 지급액을 웃돌았다. 기아는 투자 후 남은 4조611억원으로 배당 2조5590억원을 지급하고도 여유가 있었다. 반면 현대차 차량부문은 잉여현금 1조6742억원에 비해 배당 지급액이 3조9139억원으로 약 2조2400억원 많았다. 기아의 여유분을 합쳐도 현대차 차량부문의 격차를 모두 메우지는 못했다.
완성차회사를 제외한 계열사들은 현금 유입을 늘리고 투자를 줄여 감소폭을 완화했다. 나머지 8개사의 영업현금은 9조2061억원에서 10조2915억원으로 늘고 CAPEX는 5조9595억원에서 4조4407억원으로 줄었다. 잉여현금은 3조2466억원에서 5조8508억원으로 증가해 현대차와 기아의 합산액을 넘어섰다. 현대로템의 영업현금 확대와 현대모비스의 투자 지출 축소가 이런 흐름을 뒷받침했다.
현대건설은 예외였다. 지난해 영업이익 6530억원을 내며 흑자로 돌아섰지만 영업활동에서는 현금 7483억원이 순유출됐다. 매출채권 증가에 따른 차감액만 1조8077억원에 이르렀다. 이익 회복이 현금 회수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CAPEX를 반영하기 전부터 영업현금이 마이너스였고 잉여현금도 순유출을 기록했다.
올해 상반기에는 완성차의 현금흐름이 회복되면서 배당과의 격차도 해소됐다. 현대차와 기아는 영업현금 17조851억원에서 CAPEX 6조4624억원을 쓰고 10조6227억원을 남겼다. 같은 기간 배당 지급액 6조7676억원을 웃돌았다. 10개사 전체 잉여현금도 지난해 상반기 8조4526억원에서 올해 상반기 12조9066억원으로 늘었다.
회복의 배경에는 현금이 들어오고 나가는 시점의 변화도 있었다. 현대차 차량부문의 올해 상반기 영업현금에는 배당금 수취 3조9829억원이 포함됐다. 기아는 영업에서 창출된 현금이 늘어난 데 더해 법인세 납부액이 전년 동기보다 줄었다. 투자와 배당을 감당할 여유는 되찾았지만 이를 모두 본업의 현금창출력 개선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