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2020년을 기점으로 이사회 독립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의장을 대표이사와 분리했다. 삼성전자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하면서 계열사로 확장하는 '신호탄'을 쐈다. 현재 상장 계열사의 절반 이상이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하고 있다.
하지만 그룹 신사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그룹의 기조와는 반대로 가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대표이사와 의장을 분리하는 시스템에서 겸직하는 시스템으로 최근 바꾸면서 경영과 이사회를 일원화했다. 사실상 경영진을 견제할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이 주목된다.
◇김태한 전 의장 경영진 '견제', 존림 대표 입사 4년만에 경영·이사회 장악삼성바이오로직스는 17일 진행한 정기주주총회에서 존림 대표이사가 신임 이사회 의장으로 선출됐음을 공개했다. 기존 김태한 전 의장이 임기 만료를 끝으로 사내이사에서 내려온 데 따른 후속 조치다.
림 대표는 이날 사내이사로 재선임되면서 임기가 3년 뒤인 2026년 3월까지로 늘었다. 이밖에 신임 사내이사로 노균 EPCV센터장(부사장)이 선임됐다. 사외이사로는 김경희 한국ESG기준원 ESG기준위원회 위원이 재선임됐고 안도걸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책임연구위원이 신규선임됐다. 박재완 사외이사는 임기가 2년 더 남았지만 퇴임했다.
림 대표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입사 4년여 만에 대표이사에 이어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며 경영은 물론 의사결정 시스템도 완전히 장악하게 됐다. 림 대표는 2018년 9월 입사하고 2020년 12월 대표이사가 됐다. 2019년까지만 해도 다수의 '공정운영 임원' 중 한명이었을 뿐 사내이사도 아니었다.
그러다 2020년 3월 사내이사로 선임되면서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글로벌 바이오 제약기업 제넨텍(Genentech), 로슈(Roche) 등에서 영업 및 마케팅, 생산·RM·SCM을 거쳐 CFO를 역임했다. 업계 최고 수준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문성을 보유했다는 게 사내이사 선임 배경으로 소개됐다. 산업 전반의 높은 이해도를 바탕으로 사업 역량 및 경쟁력 강화와 신규 수주 확대에 기여 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다.
림 대표의 사내이사 선임은 이사회 구성도 변화시켰다. 기존에는 대표이사와 CFO 단 2인의 사내이사와 3인의 사외이사로 총 5인 구성이었다. 그러나 림 대표가 사내이사로 선임되고부터는 사내이사 3인, 사외이사 4인으로 총 7인 구성이 됐다.
그리고 이듬해 림 대표가 대표이사로 취임한 후 고문으로 물러난 전 대표이사가 의장이 되면서 이사회는 절반의 독립성을 확보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던 시스템이 분리를 이뤘다. 림 대표와 김 전 의장을 공존토록 하면서 전 경영진의 현 경영진에 대한 감시감독 체계가 구축됐다.
다만 삼성바이오로직스는 김 전 의장이 고문으로 물러나면서 이사회 안건 외 회사 경영방침에 대해선 일체 공유하지 않는 일종의 '방화벽(firewall)'을 쳐놨다. 경영상 직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셈이다.
◇'원팀' 존림 리더십에 힘싣기, 평판관리보다는 '확장'에 방점그간의 이사회 시스템을 고려할 때 김 전 의장이 사임하고 림 대표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까지 겸직하게 된 건 상당한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림 대표를 견제할 '시스템'이 사라졌다는 의미이다. 사외이사 외엔 이사회를 견제할 마땅한 창구가 없다. 사외이사 가운데 바이오 전문가는 전무하기 때문에 사실상 경영진 견제 기능이 발동하긴 쉽지 않다.
이 같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이사회 행보가 그룹 기조와도 상반된 흐름이라는 점도 눈여겨 볼 지점이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는 상장사는 호텔신라·삼성SDS·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등 16곳 중 7곳이다. 코스닥 상장사 멀티캠퍼스를 제외하면 6곳이다.
호텔신라는 대표이사이자 오너일가인 이부진 사장이, 나머지 계열사들은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맡고 있다. 업의 이해도가 높은 인물이 이사회를 움직이는 게 전략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는 물론 삼성물산·삼성생명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 중요한 구심점인 계열사 9곳은 모두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고 있다. 이사회 중심 경영구도를 확립하는 차원에서 표면적으로나마 투명성 및 전문성을 강화하는 조치다.
이러한 그룹 기조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가 다른 행보를 보일 수 있었던 배경은 역시 림 대표에게 힘을 싣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림 대표가 경영을 쥐고부터 줄곧 강조하는 '원팀(One team)'을 실행하기 위한 강력한 리더십 체계를 구축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내 대기업들은 물론 글로벌 빅파마들까지 CDMO(위탁개발생산) 시장에 가세하면서 승기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란 평가다. 평판관리보다는 '공격적 확장'에 나서야 할 때라는 점을 분명히 한 시그널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삼성바이오로직스 인사담당자는 정기주총 현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사회 판단 하에 존림 대표가 의장직을 가장 잘 수행할 것으로 판단해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