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자금 운용 전략은 재계 벤치마크 대상이다. 레버리지를 일으켜 대규모 투자에 뛰어들기보다 현금흐름 이내 투자를 선호한다. 외부 조달이 필요할 때는 선제적 자본 조달로 재무 안정성을 관리한다.
보수적인 자금 운용 전략을 편 결과 여러 계열사가 순현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예외도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국면이 길어진 삼성SDI는 유상증자와 자산 매각으로 확보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차입금 상환 능력을 입증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삼성그룹 주요 비금융 계열 상장사 중 지난해 말 연결 기준(이하 동일)으로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보다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등 포함)이 많은 순현금 상태인 곳은 8개사(△삼성전자 △삼성SDS △삼성E&A △삼성물산 △에스원 △제일기획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전기)이다. 4곳(△삼성SDI △삼성중공업 △호텔신라 △삼성에피스홀딩스)은 순차입금을 보유 중이다.
삼성전자는 3년만에 순현금이 100조원대로 복귀했다. 지난해 잉여현금흐름(FCF) 23조2648억원을 벌어 자금 운용에 여유가 생겼다. 그해 말 순현금은 1년 전보다 7조2864억원 증가한 100조6080억원이다. 그해 차입금 순증액(5조908억원)보다 현금성 자산 순증액(13조1953억원)이 더 컸다.
삼성전자는 인수·합병(M&A)뿐만 아니라 다운 턴에도 투자를 집행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남겨두고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순현금 전환에 안주하지 않고 미국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해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서는 이유도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실탄 격차를 줄이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100조원 이상 순현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E&A는 조단위 순현금을 보유한 계열사다. 삼성SDS와 삼성물산은 꾸준한 FCF를 바탕으로 순현금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SDS는 2년 전부터 순현금이 5조원 이상이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 순현금이 1년 전보다 1조267억원 증가한 1조5453억원이다. 삼성E&A는 2024년부터 FCF 흑자 흐름을 이어가며 지난해 말 순현금을 2조8518억원 들고 있다.
에스원, 제일기획, 삼성전기는 지난 2년 동안 순현금 규모를 키웠다. 지난해 말 순현금 규모는 에스원이 8634억원, 제일기획이 5497억원, 삼성전기가 4240억원이다. 삼성물산 종속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24년 말 순차입(1876억원) 상태였던 재무구조가 지난해 말 순현금(5289억원) 상태로 바뀌었다. 지난해 FCF(7727억원)로 차입금을 순상환(1640억원)하고, 삼성에피스홀딩스 인적분할 과정에서 일부 차입금을 이전(2570억원)해 차입 부담이 줄었다.
삼성SDI와 호텔신라는 각각 전기차 캐즘, 면세 업황 침체로 현금 창출력이 약화된 상태다. 경쟁사와 비교한 차입 상환 능력은 호텔신라가 더 우위에 있다. 호텔신라는 지난해 순차입금/상각 전 영업이익(EBITDA)가 8배로 호텔롯데(14배)보다 낮다. 삼성SDI는 해당 지표가 24배로 LG에너지솔루션(4배), SK온(18배)보다 높다.
삼성SDI는 지난해 유상증자, 자산 매각 등으로 차입 부담이 늘어나는 걸 막았다. 그해 FCF는 마이너스(-)2조4066억원이었다. 공모 유상증자(1조6549억원), 종속기업 유상증자(2525억원) 등 자본 확충과 편광필름 사업 양도 등 자산 매각(1조452억원)으로 설비 투자금과 차입금 상환 재원을 마련했다. 그해 말 순차입금은 전년 말 대비 5869억원 감소한 9조1676억원이다. 향후 차입금을 상환할 자체 현금 창출력을 얼마나 빠르게 회복할지가 관건이다.
호텔신라는 영업활동현금흐름 안에서 투자를 집행하고, 리스부채를 줄여 순차입금이 감소했다. 지난해 FCF는 흑자 전환한 501억원이다. 그해 말 순차입금은 전년 말보다 453억원 감소한 1조2093억원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재무구조 개선이 두드러진 계열사다. 그해 FCF로 1조3455억원을 벌었다. 그해 말 순차입금은 전년 말보다 1조3178억원 감소한 1조2221억원이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EBITDA는 3배에서 1배로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