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성 전 삼성SDI 경영지원실장(CFO)의 건배사는 '배터리'였다. "배가 터지게 이익을 내자"는 다짐이다. 2차전지 호황기에는 유쾌한 구호였지만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난 현재, 그 말은 더 절실한 각오로 들린다.
삼성SDI는 전기차 캐즘의 한복판에서 거센 파도를 건너는 중이다. 수요 둔화와 가격 경쟁, 정책 불확실성이 겹친 불황은 예상보다 길어졌고 일시적 조정이라던 캐즘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터널이 됐다.
지난해 삼성SDI는 1조722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외형 성장 기대가 컸던 시점이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다만 위기는 방향을 다시 잡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회사가 5년 만에 CFO를 교체한 것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재무 전략을 재설계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전임 체제에서 2조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하고 삼성디스플레이 지분 매각을 추진하는 등 자산 유동화에 나선 결정은 시간을 벌기 위한 선제적 대응이었다. 시장의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자본을 확충하고 재무 안전판을 보강한 것은 움츠림이 아니라 전략적 후퇴이자 재정비다. 긴 싸움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하는 과정이었다.
새로 지휘봉을 잡은 오재균 CFO는 삼성전자 DS부문과 해외 반도체 법인에서 지원·관리 업무를 맡아온 '지원통'이다.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 숫자로 리스크를 통제해온 경험은 지금 같은 국면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는 전기차 수요 회복이 단기간에 쉽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낙관 대신 현실을 전제로 전략을 짜겠다는 메시지다. 정확한 진단 위에서만 해법도 구체화될 수 있다.
그가 마주한 과제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다. 투자와 재무 안정성 사이의 균형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전고체 배터리, 해외 생산거점 확대, ESS 등 미래 사업을 멈출 순 없다. 기술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지고 있어서다. 동시에 현금흐름 관리와 금리 부담 대응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속도보다 체력이 중요한 시기다. 과속은 위험하지만 정체는 더 치명적이다.
배터리는 멈추지 않는다. 충전의 시간은 도약을 위한 전제다. 캐즘의 파고를 견디는 오늘의 결단이 내일의 반등을 만든다.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방패를 단단히 세우고 동시에 미래를 향한 투자의 불씨를 지키는 일. 그것이 지금 삼성SDI CFO의 역할이다.
구조 전환의 한복판에서 체력을 관리하며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는 일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시간이 쌓여 기업의 내구성을 만든다. '배터리'라는 건배사가 다시 힘을 얻으려면, 성급한 반등을 기대하기보다 기초를 다지는 과정에 의미를 둘 때다. 삼성SDI의 선택이 얼마나 단단한 결실로 이어질지 차분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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