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등 국내 대형 조선 3사의 차입 만기구조가 장기화하고 있다. 조선업이 슈퍼사이클의 궤도에 오르면서 영업현금흐름 창출능력이 개선되자 단기적인 유동성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으로 파악된다.
대형 조선 3사의 차입 구조에서 나타나는 또 하나의 변화는 공모 회사채의 비중 확대다. 업황 개선과 함께 조선사를 향한 자본시장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조선사들이 금융기관 차입과 사모 방식의 단기사채 이외에 다른 조달 옵션을 장착하게 된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 3사 중 유일하게 장기성 차입 비중 과반 웃돌아 THE CFO 집계에 따르면 2025년 3분기 말 기준으로 대형 조선 3사의 총차입금(금융기관 차입, 사채, 리스부채 등 이자발생부채) 합계는 9조6766억원, 이 중 장기성 차입의 합계는 3조9243억원으로 총차입금 대비 장기성 차입의 비중이 40.6%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28% 대비 12.6%p(포인트) 높아졌다.
대형 3사는 2010년대 중반에서 2020년에 이르는 수주 가뭄기를 겪으며 영업에서의 현금 창출능력이 약화했다. 이에 선박 건조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단기 차입이나 전자단기사채, 기업어음증권(CP) 등 자체 현금흐름의 부족분을 즉각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단기성 차입에 크게 의존해 왔다.
2021년 들어 글로벌 선박 발주량이 급증하고 선박 건조가격 역시 크게 높아지면서 대형 3사도 이 시기 수주한 물량의 작업이 본격화한 2023~2024년 즈음부터 영업현금 창출능력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이로 인해 총차입금의 감소와 차입 만기구조의 장기화 등 2가지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유동성에 여유가 생긴 만큼 단기적인 상환 압력을 장기적으로 분산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 3분기 말 총차입금이 1조6315억원, 장기성 차입이 1조186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총차입금이 7.6% 줄어드는 사이 장기성 차입이 21.6% 증가했다. 이 기간 총차입금 대비 장기성 차입의 비중은 55.3%에서 72.7%로 17.4%p 높아져 3사 중 비중 확대 폭이 가장 컸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은 총차입금 2조7401억원, 장기성 차입 5216억원으로 총차입금이 31.7% 줄어드는 사이 장기성 차입은 81.7% 급증했다. 총차입금 대비 장기성 차입의 비중은 7.2%에서 19%로 11.8%p 확대됐다.
한화오션은 총차입금이 5조305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7% 늘어 3사 중 유일하게 차입 규모가 커졌다. 다른 2사 대비 영업현금흐름 증대의 턴어라운드가 늦었던 만큼 본격적인 차입 축소의 단계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장기성 차입이 1조7464억원에서 2조2159억원으로 26.9% 증가하면서 총차입금 대비 장기성 차입의 비중 역시 35.2%에서 41.8%로 6.6%p 커졌다. 시기가 상대적으로 늦었을 뿐 영업현금흐름의 개선 추세는 확실한 만큼 만기구조를 장기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모채 발행 재개한 한화오션·삼성중공업 대형 3사는 현금 창출능력 개선과 재무구조 안정화를 바탕으로 이전보다 공모시장에서의 조달을 확대하고 있다. 올 3분기 말 기준으로 대형 3사의 미상환 공모 회사채 잔액 합계는 1조316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5.5% 증가했다. 할인발행차금은 고려하지 않은 수치다. 이 기간 총차입금 대비 공모채의 금액 비중은 9.1%에서 14.3%로 4.6%p 커졌다.
단순 비중의 증감으로 보면 4.6%p의 변화가 그다지 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조선사별 공모채 발행 현황을 살펴보면 삼성중공업은 올 9월 3000억원의 발행을 통해 2015년 이후 10년만에 공모채 시장에 복귀했다. 한화오션 역시 지난해 11월 1000억원 규모 발행으로 2015년 이후 9년만에 공모시장을 노크했으며 올들어서는 2월 1120억원, 7월 1200억원 등 2차례 공모시장을 찾았다.
HD한국조선해양은 연결기준 공모채 잔액이 9719억원에서 6847억원으로 29.6% 줄었다. 총차입금 대비 공모채 비중 역시 55.1%에서 42%로 13.1%p 축소됐다. 그러나 산하 조선사별로 살펴보면 이 공모채는 전액 HD현대중공업의 발행분이며 이 기간 HD현대중공업의 총차입금은 1조4986억원에서 7678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에 총차입금 대비 공모채 비중은 24.3%p 확대됐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실적 슈퍼사이클을 타고 재무구조를 안정화하면서 기존의 단기적인 조달 옵션 이외에 추가적인 옵션을 확보하게 된 것"이라며 "금리 변동 등 시장 상황에 맞춰 가장 유리한 옵션을 선택하면서 이자비용 등 조달에 따른 재무적 부담을 경감하는 길이 더욱 넓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조달 옵션의 다양화를 상징하는 또 다른 사례로 HD한국조선해양의 올 3월 6000억원 조달이 있다. 분기보고서에 사모사채로 분류된 이 조달건은 자회사 HD현대중공업의 지분 1.95%(173만576주)를 담보로 발행한 교환사채(EB)다. 당시 HD한국조선해양은 금리 인하와 업황 호조에 따른 시장 내 긍정적 평가 등 우호적 환경이 조성된 점을 교환사채 발행 결정의 이유로 설명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