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온과 포스코퓨처엠의 합병설이 제기됐지만 양 사는 곧바로 "사실이 아니다"라며 부인 공시를 냈다. 다만 이런 '설'이 나온 배경에는 배터리 셀 제조사인 SK온의 재무적 상황이 있다. 업황 개선기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계열사 합병 등을 단행했지만 재무 개선이 요원하고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다만 그럼에도 SK그룹이 배터리 사업을 포기할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누적 EBITDA -2.2조, 순차입금 23.4조…터질듯한 리스크 30일 SK그룹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에 따르면 SK그룹은 SK온에 대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했었다. 최근 한 언론에서 제기한 타 상장사와의 합병설 외에도 설비 투자로 재무 상황이 악화하고 '캐즘'이 찾아오면서 매각설 등 SK온을 둘러싼 여러 소문이 업계에 공공연히 돌아왔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확실한 근거가 없는 루머였다. SK그룹 내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SK온에 대해 여러가지 안을 거론했을 수는 있겠지만 이는 '거론' 수준이었을 뿐 실제 검토하거나 안을 추진하는 등의 진지한 단계까지는 가지 않았다.
이렇게 연기가 나기까지 굴뚝에 땔감을 넣었던 것은 SK온의 재무적 상황이다. 비교적 후발 주자로서 엄청난 설비 투자를 단행했던 SK온은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분할 창사된 이후로 단 한 번도 순이익을 낸 적이 없다.
심지어 감가상각비를 덜어낸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역시 매년 적자를 냈고 올해 1분기도 적자다. 2021년부터 올해 1분기까지 SK온의 누적 EBITDA는 -2조2097억원이다. 누적 순손실은 4조3664억원, 영업손실은 4조2948억원이다.
적시에 기업공개(IPO)를 진행하지 못해 수 차례 재무적투자자(FI) 유치와 금융권 차입에 의존했던 SK온은 계열사 합병 카드까지 꺼냈다. SK이노베이션과 SK E&S가 합병했고, SK온도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트레이딩인터내셔널(SKTI)과 SK엔텀과 삼자 합병을 단행했다. 작년 9월 말 자산총계 37조4719억원이었던 SK온은 합병 후 작년 말 자산이 48조3742억원까지 늘었고, 올 1분기 말에는 50조4341억원까지 증가했다.
SK온-SKTI-SK엔텀 합병은 일단 현금이 나오는 사업인 SKTI와 SK엔텀을 SK온에 붙여줌으로써 캐즘 극복기까지 시간을 벌자는 취지였다. 특히 석유 트레이딩 기업이었던 SKTI는 한 해 매출만 50조원 안팎을 기록하고 영업활동현금흐름도 수천억원을 내는 기업이었다.
다만 이런 합병에도 올 1분기 SK온의 손익과 현금흐름은 녹록지 않았다. SK온의 1분기 연결 영업손실은 3341억원,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액을 반영해도 1633억원의 적자를 봤다. 순손실도 2537억원을 기록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영업활동현금흐름 역시 511억원의 적자를 봤다. SKTI와 SK엔텀을 붙여준 보람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재무 상황은 악화일로다. 올 1분기 말 SK온의 연결 순차입금은 23조4659억원이다. 재무 건전성 강화를 우선순위로 선정한 LG에너지솔루션의 1분기 순차입금 13조8983억원보다도 10조원가량이 많다. 유상증자 카드를 꺼낸 삼성SDI의 1분기 순차입금은 10조3825억원으로 SK온은 삼성SDI보다도 13조원가량이 많다.
만약 SK온과 포스코퓨처엠의 합병이 이뤄졌다면 SK 입장에서는 어떤 이점이 있을까. 포스코퓨처엠과의 합병이 아니더라도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SK온의 지분율을 50% 미만으로 낮추게 된다면 회계 처리 상 현재의 종속기업이 아닌 관계기업으로의 재편입이 가능하다. 이 경우 SK이노베이션의 연결 재무상태표 상 SK온의 대규모 차입금 중 부실이 제거되는 효과를 낳는다.
모회사도 SK이노베이션이 아닌 포스코홀딩스 혹은 새로운 주체가 생기기 때문에 추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이 확 줄어든다. 업계 관계자는 "이런 '설'의 근원은 결국 SK온의 재무적 부실"이라면서 "이 부실과 추후 리스크를 어떻게 감축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오너 책임론부터 ESG까지, SK 배터리 포기 힘든 이유 그럼에도 SK그룹이 SK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큰 요소는 오너의 책임론이다. SK그룹의 배터리 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이끌었던 사업이다.
배터리 사업의 성패에 따라 최 수석부회장의 평가가 갈리게 된다. SK그룹이 배터리 사업의 일부 혹은 전부를 포기하게 되면 곧바로 최 수석부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최 수석부회장이라는 한 개인의 평가를 넘어 배터리 사업은 SK그룹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대형 사업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또 SK온에 묶여있는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다. 앞서 언급됐던 재무적투자자(FI)들이 대표적이다. SK온은 FI들에게 2026년까지 상장하겠다고 약속했고 기한 내 보장한 수익률과 상장 시 목표한 특정한 기업가치가 있다. 다만 상장사와의 합병이 이뤄질 경우 FI들에 보장한 수익률을 맞춰줄 수 있을 지 미지수다. 합병 과정에서의 합병비율 논란도 배제할 수 없다. 합병 대상이 되는 상장사들의 주주들도 설득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배터리 사업의 불투명한 전망과 SK온의 막대한 차입 부담 등을 고려하면 주주 설득에도 큰 난관이 예상된다.
마지막으로 SK그룹의 방향성이다. 배터리 사업은 2020년대 초반 4대 핵심사업(그린·첨단소재·디지털·바이오) 중 하나이자 SK그룹의 미래 핵심 먹거리다. SK의 핵심 경영가치가 된 ESG와도 결이 맞는다. 업계 관계자는 "탄소 감축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던 SK그룹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포기하는 것은 본인들이 제시했던 방향성을 역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SK온 관계자는 "포스코퓨처엠과의 합병 설은 사실 무근"이라면서 "투자자들과의 약속에 따라 2026년 말까지 IPO를 실시하고, 협의 하에 1년 단위로 최대 28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포스코퓨처엠 관계자 역시 "SK온과의 합병은 사실 무근"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