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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자사주 보유·처분 공시가 강화됐다. 자사주 보유 비중이 발행주식총수 5% 이상인 상장사는 보유 현황과 목적, 향후 처리 계획 등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이사회 승인을 받고, 해당 내용을 공시해야 한다. 자사주를 처분할 때는 처분 목적, 처분 상대방과 선정 사유, 예상 주식가치 희석 효과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 주도로 자사주 원칙적 소각에 대한 법제화가 논의되면서 자사주 소각과 활용법이 주목받고 있다. thecfo가 주요 그룹의 자사주 보유 현황과 활용법에 대해 살펴본다.
SK이노베이션이 SK엔무브 지분 취득에 따른 자금 소요에 대응해 자사주를 조달 재원으로 활용했다. 그동안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한 차례 소각을 실시하기도 했지만 이번 교환사채(EB) 발행에 자사주의 사실상 전부를 교환대상으로 내걸었다.
SK이노베이션은 2일 3767억원 규모 EB를 발행했다. 발행대상은 IMM크레딧앤솔루션(ICS)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에코솔루션홀딩스다. ICS는 국내 사모펀드 운용사 IMM프라이빗에쿼티를 산하에 둔 IMM홀딩스가 2020년 9월 완전자회사로 설립한 사모크레딧펀드(PCF) 운용사다.
이 EB의 교환대상으로 제시된 것이 SK이노베이션의 보통주 자사주 340만4104주다. SK이노베이션은 EB 발행 직전 보통주 340만4649주와 우선주 12만9684주를 자사주로 보유해 발행주식총수(1억5228만3202주·보통주 및 우선주 합산)에서의 자사주 비율이 2.32%였으며 보통주만 따지면 2.25%였다. SK이노베이션은 EB 발행을 위해 보통주 자사주 사실상 전부를 내놓은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EB를 발행한 것은 자회사인 SK엔무브 지분 30%를 취득하기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지분 취득가액은 8593억원이다. SK엔무브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는 곳은 이번에 EB를 인수하는 에코솔루션홀딩스로 같다.
SK엔무브는 애초 SK이노베이션의 완전자회사였다. 하지만 SK이노베이션이 투자 재원 마련을 위해 2021년 7월 SK엔무브 지분 40%를 ICS에 1조1195억원에 팔았다. 지난해 10월 SK이노베이션이 ICS로부터 SK엔무브 지분 일부인 10%를 1428억원에 되사왔다.
SK이노베이션은 ICS의 엑시트를 위해 SK엔무브를 상장시킬 계획이었지만 ICS 보유지분 전량을 되사오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ICS로서는 SK엔무브 지분 앞선 10%에 대한 매각대금(1428억원)과 이번 30%에 대한 매각대금(8593억원)을 합해도 최초 40%에 대한 매입금액(1조1195억원)에 조금 못 미친다.
그럼에도 SK엔무브는 배당금수익으로 투자금을 꾸준히 회수해왔다. ICS가 SK엔무브 지분 40%(1600만주)를 처음 투자한 2021년부터 2023년까지 SK엔무브가 매년 주당배당금으로 1만6000원은 안팎을 지급했으며 지난해는 주당배당금이 7347원으로, ICS의 SK엔무브 지분이 30%(1200만주)로 각각 줄어든 점을 고려해도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간 ICS는 배당금수익으로만 8489억원을 벌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에도 SK이노베이션은 ICS에 EB를 발행해 SK이노베이션 주식에 투자하도록 함으로써 SK엔무브 지분 취득 자금을 일부 충당하는 동시에 ICS에 추가 수익 기회를 열어준 것으로 보인다. 교환청구가 발행 바로 다음날인 3일부터 가능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 EB의 만기는 내년 12월말로 만기까지 교환청구가 가능하다. 교환가액은 11만673원이며 지난 1일 종가는 12만6500원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최근 수년간 자금 소요로 조달 전략이 부각됐다. SK이노베이션이 2023년 1월 SK온 유상증자에 2조원을 납입한 점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1월 그룹 차원의 리밸런싱 계획에 따라 현금창출력이 우수한 SK E&S를 합병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여기에 더해 이번에 SK엔무브 지분 인수에 따른 자금 소요가 발생하면서 자사주를 조달 재원으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이 그동안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2월 보유하고 있던 자사주 일부인 491만9974주를 소각했으며 금액으로 따지면 7936억원 규모였다. SK온에 대한 자금 소요가 불거지며 SK이노베이션 주가가 지난해 연중 부진했지만 2023년 결산배당도 실시하지 못하면서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가치를 높이려는 의도였다. 다만 신규 자사주 취득에는 비교적 소극적이다. 2020년 2월부터 4월까지 4953억원(462만8000주) 규모 자사주를 취득한 이후 취득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서는 2024년과 2025년에는 주당 2000원의 최소 배당금을 제시했으며 2026년은 향후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2027년 이후에는 주주환원율 35% 이상을 지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주환원율에는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취득이 모두 포함돼있다. 이 때문에 이번 EB 발행에 따라 자사주가 거의 없어졌지만 향후 주주환원율 달성을 위해 배당과 함께 자사주를 추가로 취득할 여지는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