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석유화학사들이 체질개선을 강요받고 있다. 그간 이익의 중심축이 된 기초 화학제품이 중국과 산유국의 공세에 밀려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어서다. 사별 전략이 제각각인 가운데 이에 필요한 유동성을 적기에 확보해야 한다는 공통의 과제가 있다. THE CFO는 석유화학사들의 체질개선 전략과 이를 위한 재무적 움직임을 유동성의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LG화학이 유동성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주력 자산과 사업은 물론이고 기존의 주력 자산이나 핵심 자회사의 지분을 활용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중이다. 기초소재 의존도가 높은 포트폴리오를 고부가 첨단·친환경소재 중심으로 전환하는 작업의 일환이다.
LG화학의 기초소재사업은 최근의 이차전지사업(LG에너지솔루션)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이윤을 남겨 온 전통의 캐시카우였으나 몇 년 사이 적자를 내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 LG화학은 포트폴리오 재편이 시급하다. 소요자금을 적시에 마련해야 하는 차동석 최고재무책임자(CFO) 사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석화 수익성 호전 기대 힘들어, 기초소재 탈출 자금마련 속도
차 사장은 최근 진행된 LG화학의 2025년 2분기 실적발표회에서 "LG엔솔(LG에너지솔루션) 지분은 전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이라며 "LG엔솔 지분을 포함해 다른 자산을 적기에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간 업계 안팎에서 거론되던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의 매각 가능성이 처음 공식적으로 언급된 것이다.
LG화학은 앞서 6월 첨단소재부문의 수처리필터사업을 1조4000억원에, 최근 생명과학부문의 에스테틱사업을 2000억원에 각각 매각했다. 석유화학사업부문에서도 비스페놀A(BPA)사업과 여수 NCC(나프타 분해설비) 2공장의 매각을 추진해 왔으나 현재 답보 상태다.
수처리필터사업과 에스테틱사업은 LG화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반면 BPA는 석유화학부문 내에서 수익성이 나쁘지 않은 제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NCC는 모든 석화 제품의 원재료인 에틸렌이나 자일렌 등 기초소재를 생산하는 설비다. LG화학으로서는 석유화학부문의 주력 사업을 일부 잘라내는 셈이다.
LG화학 석유화학부문은 2020년 영업이익 1조9364억원을 내 그 해 LG화학 전체 영업이익 1조8014억원을 웃돌았고 이듬해에는 무려 4조815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2022년에는 영업이익이 1조475억원으로 꺾였고 2023년과 지난해에는 1000억원대 영업손실로 돌아섰다.
(자료=한국거래소 전자공시시스템)
이는 중국 석화업계의 진화와 맞닿아 있다. 중국 석화사들은 과거 기초유분을 수입에 의존했으나 이제는 직접 생산하면서 여유 물량을 수출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글로벌 시장에서 LG화학 기초소재의 가격 경쟁력이 크게 약화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의 정유사들(아람코 등)이 사업 다각화를 위해 기초소재분야로의 직접 진출을 추진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원재료인 나프타를 구매해야 하는 LG화학 등 국내 석화사들이 원재료를 직접 조달하는 산유국 정유사들과 경쟁에서 이길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석화는 적어도 국내 한정으로는 더 이상 사이클 산업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익성은 갈수록 악화할 것이며 단순 효율성 제고만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이는 LG화학이 이익 포트폴리오를 대대적으로 재편해야 함을 의미한다.
LG화학은 석유화학부문의 일부 고부가·친환경 제품과 이차전지소재 등 첨단소재부문을 확대하고 기초소재의 비중을 낮추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차 사장은 이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자산매각은 물론이고 LG에너지솔루션 보유지분까지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높아진 차입 의존도, 유동성 해답은 결국 LG엔솔?
THE CFO 집계에 따르면 LG화학은 2024년 연결기준으로 자본적 지출(CAPEX) 투자를 14조7799억억원 집행했다. 여기서 LG에너지솔루션의 투자를 제외한 순수 LG화학의 투자만 따져도 2조3760억원에 이른다.
LG화학은 포트폴리오 재편을 위해 미국 테네시주의 양극재 공장 투자, 충남 서산시의 바이오연료 공장 투자 등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다. 이를 고려하면 향후 자본적 지출(CAPEX) 투자의 확대가 필연적이다. LG화학은 지난해 2조3760억원이었던 CAPEX 집행금액(LG에너지솔루션 제외 기준)이 올해 2조8200억원가량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관건은 투자에 필요한 유동성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지난해 LG화학의 연결기준 영업활동현금흐름은 7조123억원, 여기서 LG에너지솔루션의 연결 영업현금흐름을 단순 제외한 값은 1조9006억원이다. 같은 기간 연결기준 CAPEX 투자금액에서 LG에너지솔루션의 투자분을 제외한 값은 2조2595억원이다. 2022년을 제외하면 투자가 현금 창출분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자료=THE CFO)
향후 석유화학부문의 이익 창출능력을 크게 기대할 수 없는 만큼 차 사장으로서는 투자활동이나 재무활동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는 비중을 확대해야 한다. 다만 단순 차입에만 의존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2022년 23.5%에 머물렀던 LG화학의 차입금의존도는 지난해 말 30.2%까지 높아져 안정적 기업의 기준으로 통용되는 30%를 넘어섰다.
현재 매각이 답보 중인 BPA사업과 여수 NCC 2공장의 경우 기초소재 관련 사업 및 설비인 만큼 시장에서 크게 매력적인 매물은 아니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때문에 차 사장으로서도 뾰족한 해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다. 단순 매각뿐만 아니라 투자유치나 합작사 전환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다.
LG에너지솔루션 지분의 경우 LG화학의 보유분인 81.84%의 가치가 최근 시가총액 수준인 90조원을 기준으로 73조원가량에 이른다. 만약 경영권 및 연결회계 유지에 필요한 50%만을 남긴다고 가정할 경우 28조원 수준의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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