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엔 현명관 실장이 있었는데…"
삼성 임원과 식사를 하던 중 낯익은 이름이 나왔다. '그 시절'은 1993년을 말한다. 삼성이 신경영을 선포하며 체질 개선에 나서던 시기다. 당시 삼성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한 이가 그룹 비서실장 현명관이었다.
현명관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감사원에서 근무를 했다. 이후 1978년 전주제지(현 한솔제지)로 입사해 호텔신라 삼성건설 삼성물산 등에서 근무했다.
신라호텔 만두 사건으로 이병철 회장의 눈에 든다. 이병철 회장이 신라호텔 만두가 맛이 없다고 하자 수석 셰프와 함께 만두 해부 작업을 했다. 경쟁 호텔 만두를 구해와 핀셋으로 나물을 골라내며 만두소 구성을 파악했고 기름과 고기의 비율, 만두피의 무게 등을 점검했다.
초밥에 대한 비율을 지적받자 현명관은 일본 유명 호텔 일식집을 탐방하고 신라호텔에 입사하는 요리사들을 일본에 연수를 보냈다.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진양철 회장이 '초밥 밥알 갯수가 몇개고'라고 주방장을 다그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실제 모티브가 된 일화다.
현명관은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이후엔 삼성시계로 자리를 옮겼다. 좌천이나 다름없는 인사였다. 당시 삼성은 선대 회장 시절 인사들을 배제하고 새 인물을 등용했다. 삼성시계는 그룹내 주력회사도 아니고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었다.
현명관은 삼성시계를 독하게 구조조정했다. 본인의 월급도 깎고 본사를 성남으로 옮기고 주요 사업장도 정리했다. 재무구조를 건전화하고 일본 세이코와 기술 제휴를 개선하면서 회사를 정상화시켰다. 이후 삼성시계는 계열분리돼 독립한다. 이건희 회장이 현명관을 다시 중용하게 만든 계기였다.
현명관은 삼성그룹 비서실장이 된다. 그 유명한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포 이후 비서실장을 맡았다. 비서실장은 그룹 인사권과 재무 법무 기획 라인을 손에 쥔 자리다. 훗날 구조본, 미래전략실이 된다.
신경영의 성과에 대해선 두말할 나위가 없다. 삼성이 우물 속 대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계기였다. 이 과정에서 현명관은 일관된 메시지가 상층부에서 하단까지 내려가도록 독려했다. 팩트 기반의 의사 결정이 가능하도록 했고 신속하고 간결한 보고 문화를 만들었다. 삼성의 체질을 바꾸었다.
현명관이 비서실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 배경으론 여러가지 요인이 꼽힌다. 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과 핵심 메시지도 있었다. 현명관 실장의 일하는 스타일이나 집요함 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무엇보다 '외부 인사'란 점도 꼽힌다.
감사원 출신 외부 인사인데다 이건희 회장 라인도 아니다. 초반엔 이건희 회장에게 물을 먹었다. 이런 인물이 구조조정에 전권을 쥐고 그룹의 썩은 살을 도려냈다. 사심없이 객관적으로 구조조정을 하고 체질 개선에 나설 수 있는 배경이다.
현명관은 3년간 비서실장을 맡은 뒤 삼성물산 회장으로 옮겼다. 현명관은 삼성내에서 전문 경영인으로 회장 타이틀을 단 몇 안되는 인물이다.
삼성엔 최근 '위기론'이 자취를 감춘 듯 하다. 삼성이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엔 때마다 위기론이 나와 이렇게 돈을 잘 버는 데 웬 위기설이냐는 볼멘소리가 있었다. 지금은 삼성전자 주가가 6만원 대에 머물고 본원 경쟁력인 반도체에서 초격차를 잃은 지 오래인데도 '이정도면 잘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에선 관세 전쟁이 벌어지고 삼성생명법, 상법 개정안 등이 만들어지고 중국 생산도 위태롭다. 경영권은 물론이고 경쟁력을 위태롭게 하는 수 많은 변수들이 쏟아지고 있다. 옛 구조본과 비서실장은 정부와 담판을 짓고 '빅딜'도 마다하지 않았는데 이런 모습이 안 보인다.
신경영이 아니라 혁신경영이라도 내놔야 할 판에 '미국 반도체 팹이 잘 돌아갈 것'이란 긍정 회로나 돌리고 있다. 체질을 다시 한번 바꾸겠다는 각오가 나와야 할 타이밍에 옛 선수들을 돌리는 또 한번의 회전문 인사나 하고 있다.
삼성을 새롭게 할 인사가 보이지 않는다. 위기의식을 고취하는 고함도 들리지 않는다. 삼성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할만한 메시지가 없다. 현명관이라도 다시 불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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