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가장 큰 과제는 세대 전환이었다."
찬 바람이 분다. 인사의 계절이 왔다. 인사는 어렵다. 누구를 내치기도 어렵고 들이는 것도 쉽지 않다. 기준을 만들어도 상황에 따라 달리 해야 한다. 업무 능력에 맞춰 인사를 내면 된다고 하지만 누가 어느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할지 알수 없다. 지나 봐야 아는 일이다.
몇 해 전 미래에셋그룹이 세대 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창업 멤버들이 물러나고 50대 부회장들로 세대 교체가 이뤄졌다.
당시 박현주 회장은 '26년간의 고민이었다'고 말했다. 창업과 함께 시작한 인사 고민이었다. 인사를 내기 전 이사회 워크샵에서 경영진 교체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2023년 창업 멤버들을 물러나게 했다.
박 회장은 앞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일관된 원칙을 피력했다. 꽤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인간적으로 안타깝고 후회되는 일도 있으나 새로운 전문 경영 체제를 출범시킨다'고 인사의 의미를 설명했다. 가장 가까이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함께 한 창업 멤버들을 먼저 교체시켰다. 수 없이 고민하고 수십년간 되뇌인 결과다. 올드 세대가 되면 판단이 느려진다고 이유를 댔다.
가문 승계는 하지 않겠다는 원칙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미래에셋그룹은 박현주 회장이 만든 그룹이고 개인 지배력이 여전히 탄탄하다. 미래에셋컨설팅 미래에셋자산운용을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 2세 승계를 결심해도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을 안 하겠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전했다.
세대교체는 전문 경영인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전문성'을 가장 중요한 잣대로 삼았다. '누구나 CEO가 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철학도 피력해 왔다. 그대로 인사를 단행했다. 전문 경영인 중심의 거버넌스를 만들었다.
박 회장은 세대 교체 뒤 최고 글로벌 전략 책임자(GSO)로 역할을 하고 있다. 국내 비즈니스는 후배들에게 맡기고 글로벌 중장기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세대 교체 후 미래에셋의 성과는 양호하다. 시장 상황이 좋았고 증시도 올랐으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래에셋의 성장은 조금 결이 다르다. 국내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 과거 국내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은 대부분 실패했는데 지금까지 미래에셋의 성적은 양호하다.
운용자산이 370조원에서 400조원으로 늘었는데 이 중 45%인 181조원을 해외에서 운용한다. 인도 브로커리지회사 셰어칸을 인수해 인도시장에서 가파른 성장을 하고 있다. 박 회장은 사석에서 '그동안 M&A는 모두 제 값을 주고 샀는데 셰어칸은 예상보다 할인해 인수했다'고 얘기한다. 그만큼 공들이고 면밀히 분석한 딜이었다. 이를 잘 매듭지어준 게 후배 경영진들이다.
미래에셋 스타일의 인사가 항상 옳다곤 볼 수 없다. 오너 가문이 중심이 돼 경영을 세습하는 게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퍼포먼스를 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20년짜리 인사 고민은 오너들이나 하지 전문경영인은 2~3년을 내다보는게 고작이다.
다만 미래에셋처럼 장기적으로, 일관된 인사 원칙을 내놓는 것은 승계 고민에 빠진 재벌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명확하다.
창업자나 초기 멤버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구조화된 책임 체계를 만들고 성과 기반, 전문성을 기반으로 한 거버넌스를 구축하면 경영성과는 자연스레 뒤따라온다. 2세에 지분과 경영권을 넘겨 주기 위해 꼼수를 쓸 필요도 없다. 아들의 경영이 마음에 안 든다고 증여 지분을 취소하겠다고 재판할 일도 없다. 아버지가 다시 등판해 경영 일선에 나서겠다고 잡음을 낼 일도 없다.
인사는 만사다. 재벌가에도 통용되는 말이다. 꼼수와 세대 갈등으로 불필요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C, D 그룹 오너들은 미래에셋 사례를 다시 한번 살펴보길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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