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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구조 분석솔리다임

흑자전환 시장호황보다 중요했던 '거버넌스'

[크로스보더]③최태원 회장 의장 선임 후 SSD로 체질전환…모회사 지원 대신 독자 생존 모델

허인혜 기자  2025-11-17 15:59:12

편집자주

글로벌 M&A가 흔해진 시대, 기업의 '국적'은 여전히 상징적·실질적 의미를 지닌다.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을 인수하거나 반대로 해외 기업이 국내 기업을 사들였을 때 단순한 소유권 이전 이상의 다층적인 변화가 발생한다. 지배구조와 계열사, 경영환경의 재편과 그 과정에서의 거버넌스 충돌 등이다. 글로벌 M&A를 앞둔 기업들이 미리 대비해야할 어젠다이기도 하다. THECFO는 국적 변화가 지배구조와 경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조망해본다.
조지 데이비스 인텔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솔리다임의 전신인 낸드 사업부를 두고 "충분한 수익(adequate profits)을 벌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발언이 나온 직후 밥 스완 인텔 전 CEO가 매각을 결정했다.

SK그룹이 솔리다임을 사들인 후에도 한동안 메모리 한파가 이어졌다. 솔리다임의 실적은 곤두박질쳤고 SK그룹으로 피인수 후 3년간 누적 순손실만 8조원에 이르렀다. 2024년에 이르러서야 처음으로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이처럼 솔리다임의 실적 회복은 단순한 시장 회복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솔리다임의 체질개선은 그 사이 변화된 거버넌스와 경영진, 이사회의 판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매출은 나와도 돈은 못 벌었던 솔리다임

2020년 3월 인텔이 부서 매각을 결정했을 때만 해도 낸드 사업부는 돈을 못 버는 부서가 아니었다. 2020년 상반기에만 인텔 전체 매출액의 7%에 달하는 28억달러의 수익을 냈다. 비휘발성 메모리 솔루션 그룹(NSG)으로 좁히면 9할이 넘는 기여를 했다. 낸드 메모리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다.

그럼에도 인텔은 매각을 결정했다. 절대적인 성장세만 보면 팔 이유가 없었지만 글로벌 시장을 분석했을 때 인텔의 낸드 사업부는 비교우위에 설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글로벌 점유율은 2~3위권을 오갔지만 미중갈등 등의 여파로 생산 효율성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낸드 사업부의 매출액이 폭증한 이유도 가격 반등에 따랐다. 대량 생산과 가격 조정이 핵심적인 경쟁력인데 사업부 수준으로는 국제 시장의 기준을 맞추기 어려웠다. 더 전폭적인 지원을 해 줄만한 대기업에 매각하고 포트폴리오를 줄이는 수순을 택했다.

솔리다임의 실적 추이를 보면 2022년과 2023년 각각 매출액은 4조6957억원, 3조110억원을 기록했다. 순이익 기준으로는 연속 적자였다. 2022년에는 마이너스(-) 3조3257억원, 2023년에는 -4조344억원으로 집계됐다.


◇시장 앞선 전열 정비 덕…SK 이사회의 체질개선

2024년 솔리다임은 인수 후 처음으로 흑자를 낸다. SK하이닉스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솔리다임은 2024년 연간 당기순이익 8307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순이익 추정치도 6100억원을 상회한다. 계획대로라면 2년 연속 흑자다. 2026년부터는 조단위 성과도 기대한다.

시장 호황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인공지능(AI) 산업이 커지며 메모리 산업은 다시 급부상했다.

흑자 전환의 배경에는 2023년부터 본격화된 전열 재정비가 있었다. 솔리다임은 2023년 자사 로드맵에서 쿼드레벨셀(QLC) 기반 고용량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를 주력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공식화했다.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가 귀해지면서 대체제인 QLC SSD의 인기도 덩달아 뛰었던 시기다. SK그룹의 전열 정비 노력이 AI시대에 한 몫을 한 셈이다. 같은 해 SK하이닉스도 업계 최초로 QLC 기반 128TB SSD 양산에 들어갔다고 발표했다. SK 전체 낸드 전략이 QLC에 초점이 맞춰졌음을 시사한다.

변화를 이끈 건 이사회다. 솔리다임에 대한 이사회 지원의 핵심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사회 의장 선임이었다. 그룹 내의 솔리다임 존재감을 확보하는 한편 의사결정 체계가 빨라졌다. 최 회장이 의장으로서 SSD로의 전환을 이끌었다.

이달 14일 발표된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최 회장은 최근 솔리다임 이사회 의장을 맡은 지 1년 만에 물러났다. 하반기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회장의 리더십이 효과적으로 적용되며 솔리다임의 실적 전망이 긍정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SK아메리카스 이사회 의장(SK Americas Inc. Chairperson of the Board of Directors)을 맡으며 또 한 번 거버넌스 실현에 나선다.

◇'지원 찬반' 나뉜 이사회, 견제와 지원 줄다리기

전폭적인 지지만 한 것은 아니다. SK그룹과 솔리다임의 이사회는 견제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SK하이닉스 이사회의 솔리다임 자금대여 안건 반대다.


SK하이닉스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8월 이사회는 '해외계열사와의 거래' 단일 안건 논의와 의결을 위해 모였다. 솔리다임이 포함된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스에 약 1조3500억원의 자금을 빌려주는 내용이었다.

안건은 반대와 수정 요구로 부결됐다. 다음달인 9월 5일 같은 안건이 올라왔다. 수정과 수정가결, 반대 등으로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통상 '가결'이 대부분인 이사회의 의결 과정에서 이례적인 결과다. 솔리다임의 운영자금 지원 때마다 이사회 차원에서 면밀히 살폈다는 의미다.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SK하이닉스의 솔리다임에 대한 대여금 잔액은 11조3196억원으로 나타났다.

또 SK하이닉스의 이사회 안건을 보면 꾸준히 솔리다임의 경영실적을 보고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7월과 12월 각각 솔리다임의 경영현황을 공유받았다. 이듬해인 2024년에도 솔리다임 현황이 공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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