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하는 루닛 경영진이 주주 설득에 나섰다. 대규모 전환사채 풋옵션(조기상환청구권) 리스크를 제거하고 올해 EBITDA 기준 흑자전환을 이룰 수 있다는 청사진을 꺼내들었다. 이번 유증이 총 주식수의 27%에 달하는 적잖은 규모인데다 미뤄진 흑자전환, 조달 잡음 등으로 루닛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하락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시장 신뢰 회복의 길은 흑자전환 달성 여부에 있다. 메인 제품인 인사이트·스코프 매출을 최대 50% 확대하고 비용을 20% 줄임으로써 '성장 중심'에서 '현금흐름 중심' 구조로의 체질개선을 약속했다.
◇주주배정 유증 결정 배경 "풋옵션 리스크 제거"
루닛은 2일 오전 본사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개최했다. 지난달 30일 오후 2500억원 규모 주주배정 유증을 발표한 직후 빠르게 시장 대응에 나섰다. 서범석 대표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박현성 상무(CFO)가 이번 자본조달의 의미와 성장전략을 설명했다.
당초 루닛은 기관투자자를 통해 제3자배정 전환우선주(CPS)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려 했지만 주주배정 유증으로 방식을 바꾼데다 규모도 2500억원에 달해 주주들의 우려가 커졌다.
서범석 루닛 대표
루닛 경영진은 주주배정 유증을 결정한 가장 큰 이유를 '풋옵션 리스크 제거'로 꼽았다. 루닛은 2024년 5월 1715억원 규모의 1~2회차 전환사채(CB)를 발행했다. 채권자들은 오는 5월부터 풋옵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풋옵션 여부가 잠재적 재무리스크로 여겨지면서 루닛이 신규 투자를 받는데 늘 걸림돌이 됐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에 루닛의 실적이 주가로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박 상무는 "32곳 채권자들의 풋옵션 의사가 크지는 않지만 리스크가 잔재하는 것은 사실"이라며 "3자배정 투자 의사를 확인할 때도 풋옵션에 대한 피드백이 가장 많았고 결국 이걸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은 주주배정 유증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 루닛 지난 1년 주가는 3만~7만원대 박스권에 갇혀있다. 지난해 글로벌 빅테크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 매출액 53% 증가 등 괄목할 성과도 냈지만 기업가치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루닛은 주가가 박스권에 갇힌 근본적인 원인이 재무 리스크에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루닛의 재무사정도 좋은 편이 아니다. 매출은 늘었지만 비용도 함께 늘어난 탓에 보유 현금이 빠르게 줄었다. 2024년 말 600억원대에서 약 1년 만에 절반가량으로 줄었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83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3% 증가했다. 동시에 영업손실 831억원으로 전년보다 22% 손실폭이 커졌다.
루닛이 최근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300억원의 단기차입을 일으킨 배경이다. 기존 120억원 차입금은 3.72% 수준에서 이자율이 결정됐지만 이번 추가 차입으로 이자율이 7.5%로 껑충 뛰었다. 올해 1분기 중 상환해야 할 100억원대 단기차입금도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는 의미다.
박 상무는 "이번 대규모 현금 유입으로 회사가 장기 성장성을 추진해 나가는데 탄탄한 재무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동안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면 올해 EBITDA 기준 손익분기점 달성으로 실제 영업 현금흐름이 도는 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라고 말했다.
◇흑자전화 현실화 여부에 주목…"매출 50% 늘리고 비용 20% 절감"
루닛을 바라보는 시장의 우려가 커진 건 그동안 경영진이 공언했던 흑자전환이 현실화되지 않은 측면이 크다. 흑자전환 목표달성이 미뤄지고 지난해 비용이 더 늘어난 탓에 손익분기점 달성에 대한 신뢰가 하락한 상태다.
결국 올해 루닛이 어떤 재무제표를 보여줄 것인지가 시장 신뢰 회복의 관건으로 꼽힌다. 서 대표는 매출 40~50% 확대와 비용 20% 절감으로 EBITDA 기준 흑자전환을 약속했다. 암 진단 소프트웨어 '루닛인사이트'와 볼파라 제품을 포함해 올해 9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예상했다. AI 기반 종양 정밀분석 '루닛스코프'는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100억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2~3배 성장을 기대했다.
서 대표는 "루닛스코프는 누적 매출액 50억원을 돌파한 고객사(제약사)가 생겼고 추가 빅파마 논의가 이어지고 있어 긍정적"이라며 "루닛인사이트는 올해 미국 매출이 100억원을 돌파하고 볼파라(루닛 인터네셔널) 역시 매출 600억원, EBITDA 흑자 100억원이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비용은 지난해 실시한 구조조정과 함께 전반적으로 강도높은 비용통제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부터 그 효과가 재무제표에 반영됨에 따라 20% 절감을 이룰 예정이다.
서 대표는 "비용을 타이트하게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체력을 키울 시기라고 생각한다"며 "올해부터 뚜렷하게 구조조정 효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며 국책 AI 과제가 늘어난 만큼 미래투자는 국책과제를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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