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제는 하림그룹과 팬오션입니다. 최근 하림지주는 계열사들을 지원하느라 재무 부담이 만만치 않은 상황인데요. 이 와중에 그룹 캐시카우인 팬오션가 최근 초대형 유조선을 10척이나 사들였습니다. 이란 전쟁 사태로 유조선 운임이 폭등 중인데 시점이 절묘했죠. 팬오션의 베팅이 하림그룹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분석해보겠습니다.
◇1조짜리 유조선 10척, 잭팟일까?
지난달 11일 팬오션이 SK해운으로부터 초대형 원유운반선, 그러니까 VLCC 10척을 인수한다고 밝혔습니다. 무려 9737억원을 들였는데요. 중동 리스크가 커지면서 이미 유조선 스팟 운임이 상승세를 타고 있었죠.
그리고 인수를 결정하고 불과 보름만에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이 터졌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유조선 운임이 더 폭등했는데요. 봉쇄 이전 VLCC 평균 운임이 20만 달러 밑이었는데 최근 40만 달러선을 훌쩍 넘었습니다. 역대 최고 스팟 운임이죠.
팬오션 입장에선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VLCC를 대거 사들이자마자 전쟁이 나서 운임이 폭등했으니까요. 하지만 사실 이번에 인수한 10척은 지금 폭등하고 있는 운임 수혜를 당장 직접적으로 보지는 못할 겁니다.
이번 거래는 단순히 배만 사는 구조가 아닙니다. SK에너지 같은 기존 화주들과 장기화물운송계약(CVC)을 맺은 채로 넘어왔거든요. 남은 계약 기간이 짧게는 2년, 길게는 4년쯤 되는데요. 게다가 인도가 시작되는 시점이 올해 5월부터구요, 한 척씩 차례차례 완료가 끝나는 건 내년입니다. 그래서 시장 운임이 아무리 폭등해도 팬오션이 얻는 마진은 제한적인거죠.
또 장기계약상 화주가 사실상 선박 사용을 통제하는 구조라 회계상 금융리스로 분류됩니다. 그래서 수익도 해운 매출이나 영업이익으로 바로 잡히는게 아니라 리스채권에서 발생하는 금융수익으로 잡히게 되고요. 오히려 호르무즈 해협 통항이 어려워져서 선적 자체가 힘들어지면 리스크가 될 수도 있죠.
◇당장 대박도 아닌데... 1조 태운 이유는
바로 운임 수혜를 보는 것도 아니고 회계상 영업이익에 바로 잡히는 구조도 아닌데, 왜 굳이 수익이 고정된 배를 거금 주고 인수한 걸까요.
우선 그룹 차원의 자름흐름을 좀 봐야 합니다. 팬오션 모회사인 하림지주가 최근 자금 소요가 늘어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하림지주를 떠받치는 가장 큰 기둥이 팬오션이에요. 팬오션 입장에선 변동성이 큰 스팟 영업보다, 매년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자산이 필요했던거죠. 이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필요한 건 지주 입장에서도 마찬가집니다.
하림지주의 자금 부담이라면 역시 하림산업 때문이겠죠. 지금 계열사들 중에서 하림이나 선진 같은 기존 사료, 육계 회사들은 이익을 잘 내고 있는데, 신사업을 하는 하림산업은 매년 적자가 늘어나고 있으니까요. 2024년엔 무려 127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습니다.
고정비 부담을 감당하지 못해서인데요. 그뿐 아니라 서울 양재동에 대규모 물류단지 개발사업도 추진하고 있습니다. 투자규모가 7조원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죠. 그래서 하림지주가 하림산업에 돈을 계속 밀어주고 있는 겁니다. 2023년에 1000억 원, 2024년엔 300억원, 그리고 작년 4월에도 500억원을 지원해줬어요. 계열사들을 지원해주느라 하림지주 차입금도 꽤 많이 늘었죠.
하림지주의 별도 기준 총차입금을 보면 2021년 6600억원 수준에서 작년 9월 말 1조2700억원 규모로 거의 2배가 급증했습니다. 작년 9월엔 자사주를 교환대상으로 교환사채(EB)를 발행해서 1432억원을 수혈받기도 했죠.
이자 비용만 1년에 600억원씩 나가고 있는 상황인데요. 하림지주는 경상수익 대부분이 배당금수익이고, 이 배당금수익 절반 안팎을 팬오션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팬오션이 안정적으로 고배당을 하는건 하림지주 입장에서 생존 문제라고 봐야겠죠.
◇하림지주 지탱하는 팬오션 배당
사실 하림그룹 전체가 팬오션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팬오션은 배당을 많이, 안정적으로 줘야하는 부담이 있고요. 이번 배당도 꽤 늘렸는데요. 2025년 결산 배당금을 주당 150원으로 정했습니다. 전년보다 30원 올랐어요.
하림지주가 팬오션 지분을 54.7% 가지고 있으니까 이 배당으로 440억원을 수취하게 됩니다. 현금흐름에 상당한 도움이 되겠죠.
그런데 팬오션이 든든하게 배당을 챙겨주려면 결국 본업에서 돈을 잘 벌어야 하잖아요. 작년 4분기 실적을 좀 봐야겠죠. 평균 벌크선 운임지수(BDI)가 급등하긴 했는데 정작 스팟 영업에선 레버리지가 크지 않았다는 분석도 있었거든요.
결론적으로 시황의 한계는 분명 있었지만 좋은 실적을 냈습니다. 4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9% 증가한 1304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중요한 건 숫자 자체보다 이익 구조가 달라졌다는 점이죠. 벌크선 부문도 610억원으로 선방했지만, 실적을 끌어올린 핵심은 다른 부문이었습니다.
4분기 LNG선 영업이익이 396억원으로 전년 대비 159% 늘었고요, 탱커선도 211억원을 기록했는데요. 연간 기준으로 봐도 LNG선이 전체 영업이익 30%를 차지했고요. 탱커까지 합친 웻벌크 실적이 건화물선, 그러니까 벌크선 이익을 처음으로 역전했습니다. 팬오션이 그전엔 BDI 등락에 따라서 실적이 크게 흔들렸는데 이제는 체질이 확실히 달라진 것 같네요.
◇'3가지' 투자포인트
웻 벌크로 돈을 안정적으로 벌기 시작하니까 자신감이 붙었을 겁니다. 거기에 지주사의 현금 갈증까지 맞물리면서, VLCC 인수에 과감하게 나설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요. 이 거래로 당장 대단한 수혜는 못 보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선 괜찮은 투자라고 봐야겠죠.
특히 이란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변수가 이번 거래를 하방은 방어하면서 상방은 어느정도 확보한 구조로 만들어줬는데요. 크게 세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첫 번째는 비용인데요. 전쟁이 나면 연료비나 보험료가 뛸 수밖에 없어요. 스팟 선사들은 운임이 올라도 이런 원가 상승 때문에 실제 마진이 깎이게 되고요.
그런데 팬오션이 사들인 10척 장기계약에는 유류할증료(BAF) 조항이 아주 잘 걸려있습니다. 연료비 같은 제반 비용이 오르면 화주가 보전해주거든요. 팬오션이 이번에 배를 사면서 9700억원을 어떻게 지급하냐면, 기존 선박금융 잔액을 4300억원 이전받고고 나머지 5400억원 정도를 현금으로 줍니다. 이 승계받은 선박대출을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갚아갈 수 있는거죠.
두 번째로 자산가치가 얼마나 오를지도 짚어봐야 합니다. 팬오션이 15년 선령 선박을 척당 약 6680만달러에 샀는데, 시세가 7500만달러였거든요. 800만달러를 싸게 산 겁니다. 업황도 우호적으로 흐르고 있죠. 지금 전쟁 때문에 배들이 우회하느라 항해 거리가 늘었거든요.
미국 제재로 불법 원유를 나르던 '그림자 선단'들까지 시장에서 줄줄이 퇴출당해서 합법적인 VLCC는 공급이 부족하고요. 배 값이 자고 일어나면 뛰고 있는 상황이라 나중에 다시 배를 매각할 때 차익을 기대할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인데요. 이 선박들에 붙어 있는 장기계약은 2028년부터 2030년 사이에 순차적으로 종료됩니다. 그런데 지금 글로벌 조선소들은 컨테이너선이나 LNG선을 만드느라 도크가 꽉 차 있어요. VLCC 신조 발주는 거의 멈춰있는 상태거든요. 계약이 끝날 때쯤이면 VLCC 시장은 품귀 상태일 가능성이 아주 높습니다.
그때는 감가상각이 웬만큼 다 진행된 이 배들을 스팟 시장에 직접 투입해 고운임 효과를 누릴 수도 있고, 배가 급한 화주를 상대로 유리하게 재계약을 할 수도 있겠죠. 나중에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선택지를 미리 사둔 셈입니다.
이번 VLCC 매입의 본질은 당장 운임 급등에 연연하는게 아니라, 리스크를 낮춘 상태에서 자산과 현금흐름을 함께 확보한 데 있다고 해야겠죠.
단기 수혜도 없진 않은데요. 다만 그 수혜의 주체가 이번에 인수한 VLCC 10척이 아닐 뿐입니다. 팬오션이 기존에 스팟 시장에서 굴리고 있던 MR탱커(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들이 운임 강세 효과를 볼 수 있을 거예요. 물론 해상 보험료도 오르고 있기 때문에 이 이슈도 따로 감안을 해야겠지만요.
결국 정리해보면 하림지주의 재무 부담이 팬오션에는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확보해야 한다는 숙제가 됐고, 그 결과가 VLCC 10척 인수와 포트폴리오 다각화, 배당 확대로 이어진 겁니다. 팬오션이 벌크선사라는 한계를 넘어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기회로 바꾸면서 진화하고 있는 듯한데요. 위기를 뚫고 순항 중인 팬오션의 향후 행보, 그리고 하림그룹 전체의 재무 흐름까지 앞으로도 꼼꼼히 주목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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