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지배구조 개편이 임박한 CJ그룹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상법 개정으로 이선호 CJ미래기획그룹장의 승계가 탄력을 받고 있거든요. 어떤 전략인지 궁금해지는데요.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죠. 그룹 어디에서 현금이 말라가고, 또 어디서 솟아나는지를 추적해보면 개편의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대중들한테 CJ 하면 아직도 비비고 만두나 영화, 드라마 같은 이미지가 대표적이거든요. 전통적으로 CJ제일제당과 CJ ENM이 그룹의 양대 산맥이었고요. 그런데 최근엔 CJ의 심장이 더 이상 쌍림동이나 상암동이 아니라 용산에서 뛴다는 말이 나와요. 올리브영 본사가 있는 곳이죠. 이제 우리가 알던 그 CJ가 아니라는 겁니다.
◇용산으로 옮겨간 CJ의 심장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지난 6년간 재무 데이터를 뜯어봤는데요. 짧다면 짧은 시간인데 그동안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현금창출의 핵심축이 원래 제조와 미디어였지만 지금은 헬스앤뷰티 플랫폼으로 넘어갔거든요. 원래 CJ를 지탱해왔던 제일제당, ENM이 주춤한 상태고요. 그 사이 올리브영이 무섭게 크고 있습니다.
누가 돈을 잘버나 하는 이야기가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승계라는 게 결국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작업이기 때문이죠. 지분을 사든 상속세를 내든 현금이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룹에서 어딘가는 확실하게 캐시카우 역할을 해줘야 하니까요. 그게 지금 올리브영이라는 겁니다.
물론 덩치는 여전히 제일제당이 제일 크죠. 비교가 안됩니다. 그룹 모태기도 하고요. 하지만 2022년 이후로 성장이 계속 정체된 상태에요. 현금흐름도 원활하진 않은데요. 2024년부터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미국 사우스다코타나 헝가리 공장 짓는 데만 총 8000억 정도 쓰거든요. 요즘 바이오사업부문도 경쟁이 심해서 시원치않고요.
작년 3분기 말 제일제당은 잉여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전환했습니다. 정확히 2469억원이 순유출됐고요. 배당금 지급 후 기준이긴 한데 지급 전 기준으로 봐도 여전히 잉여현금은 적잡니다. 2020년까지만 해도 연간 잉여현금이 6000억원 수준이었고 2024년에도 5000억은 넘겼는데 지금은 엄청 줄었죠.
올리브영은 그 반대에요. 2020년 2000억원대였다가 2024년 말 4400억원으로 불었습니다. 작년엔 9월 말 기준 700억 정도로 줄긴 했는데요. 이건 사옥 매입 영향이 있을 겁니다. 거의 7000억을 주고 사옥을 샀으니까요. 아무튼 잉여현금 규모로 따지면 제일제당보다 훨씬 많다는 거에요.
물린 지금은 제일제당의 투자 확대 구간이라 자금이 나갈 수밖에 없는 거고, 투자가 마무리되면 다시 달라질 수 있겠죠. 하지만 지금 그룹에서 만들어내는 잉여현금 대부분을 올리브영이 지탱 중인 건 사실이에요. 무엇보다 올리브영은 성장세가 엄청납니다.
2020년만 해도 올리브영 매출이 1조8000억원대였다가, 2024년엔 4조8000억원까지 뛰었습니다. 작년엔 3분기 만에 4조2000억원을 넘겼고요. 연매출 5조원 시대를 연 거죠. 그리고 유통업인데도 영업이익률이 13%를 넘잖아요. 그룹 실적에서 올리브영이 차지하는 비중도 예전이랑은 차이가 큽니다.
◇'퀀텀 점프' 올리브영, 제일제당 순이익 역전
CJ그룹은 제일제당, CENM, CGV, 올리브영, 이렇게 4개 계열사를 합산하면 전체 재무지표를 대충 그려볼 수 있습니다. 대한통운을 포함해서 다른 계열사 대부분이 이 회사들 종속회사라서요. 이렇게 합쳐서 비중을 따져 보면 그룹에서 올리브영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한 눈에 들어옵니다.
올리브영이 그룹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7%에 불과했지만, 작년 3분기 기준으론 거의 14%까지 늘었습니다. 더 극적으로 바뀐건 순이익 비중이에요. 6년 전 연간 순이익을 보면 올리브영이 590억, 제일제당이 7900억 정도라서 제일제당 13배 이상 많았거든요.
그런데 지난해를 보시면, 9월 말 기준 올리브영이 4100억, 제일제당이 3800억 수준입니다. 이 기간 그룹 전체 순이익이 8000억이니까 올리브영이 절반은 기여한거죠. 2024년부터 이미 순이익 역전이 일어난 상태에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다행입니다. 기존 주력 계열사였던 CJ ENM이나 제일제당은 투자 부담 때문에 현금을 못 가져오고 있고, CGV는 지금 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극장산업 생존부터 걱정해야 하잖아요. 사실상 올리브영이 구세주나 다름없어 보이거든요. 지금으로선 거의 유일하게 그룹에서 안정적인 캐시카우니까요. 승계 측면에서도 이런 판도 변화는 의미가 큽니다.
◇승계의 핵심 지렛대 '올리브영 몸값'
이선호 그룹장은 지주사 지분은 미미한데 올리브영 지분은 많습니다. CJ 지분이 3.2%에 불과한 반면, 현금 창출의 핵심인 올리브영 지분은 11.04%나 돼서 개인 최대주주입니다. 이 불일치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올리브영의 현금 창출력이 활용될 수 있겠죠.
원래 시장에서는 올리브영을 상장시켜서 확보한 자금으로 지주사 지분을 살 것이라 예상했었는데요. 양도세 문제, 그리고 쪼개기 상장 이슈가 불거지면서 그 시나리오는 이제 물 건너갔죠.
대신 급부상한 게 CJ와 올리브영의 포괄적 주식 교환, 즉 합병입니다. 지금 올리브영이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벌어들이고, 가장 높은 성장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기입니다.
합병을 한다면 결국 비율 싸움이죠. 올리브영 가치를 높게 받을수록 이선호 그룹장에게 유리합니다. 지금 시장에서 올리브영 기업가치는 10조원대까지 이야기 되고요. 지주사 CJ 시가총액은 지금 5.8조원 남짓입니다. 자회사가 모회사보다 거의 2배 더 비싼 건데요. 이 가치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하면 대략 1대 2의 교환비가 나옵니다. 올리브영 주식 1주를 내놓으면 지주사 주식 2주를 받아올 수 있다는 뜻이죠.
이 시나리오대로만 된다면 이선호 그룹장은 별다른 자금 투입 없이도 지주사 지분율을 단숨에 2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올리브영의 압도적인 성장이 지배력 확대의 지렛대가 되는 셈이죠
◇상법 개정 나비효과... '승계 골든타임' 왔다
이렇게 보면 올리브영의 독주가 승계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퍼즐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최근 입법 예고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도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3차 상법 개정안은 연내 입법이 유력한데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마침 올리브영은 전체 발행 주식의 22.6%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한 상태에요.
예전에 2대 주주였던 사모펀드의 지분을 회사가 현금으로 사주면서 생긴 물량인데요. 이 자사주를 법안에 따라 전부 소각하게 되면 전체 주식의 모수가 줄겠죠.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상승하는 결과가 됩니다. 실제로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이선호 그룹장의 올리브영 지분율은 11%대에서 14.3%로 수직 상승하네요.
이렇게 높아진 지분율을 들고 지주사와 합병 협상 테이블에 앉게 되면, 교환받을 수 있는 지주사 신주 물량이 또 대폭 늘어나겠죠. CJ그룹 입장에서는 규제 변화를 명분 삼아 자사주를 소각하고, 이렇게 4세 지배력을 극대화한 뒤 합병을 추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승계의 골든타임'을 맞이한 겁니다.
정리를 해보죠. 기존 주력 계열사들은 투자가 급해 현금이 없고, 유일하게 올리브영만 막대한 잉여현금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올리브영의 가치가 커질수록, 또 자사주를 소각할수록 이선호 그룹장의 지배력은 완성됩니다.
이 모든 정황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합병' 하나뿐인 것 같은데요. 과연 시장은 CJ가 제시할 이 합병의 방정식에 동의해 줄지, 앞으로 전개될 상황을 예의주시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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