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그룹의 재무 지형도가 급변하고 있다. 주축이었던 CJ제일제당이 정체기에 진입한 반면, CJ올리브영은 연매출 5조 원 시대를 열며 무섭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매출로는 CJ올리브영이 CJ제일제당의 6분의 1 수준이지만 순이익과 잉여현금흐름으로 따지면 이미 CJ제일제당을 역전했다.
올리브영의 도약은 단순한 실적 성장을 넘어 CJ그룹 4세 승계의 핵심 열쇠가 될 전망이다. 지주사 지분이 미미한 이선호 CJ미래기획그룹장에게 CJ올리브영은 지배력을 확대할 가장 강력한 카드로 꼽힌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 규제 변화까지 맞물리면서 승계작업이 최적기에 진입했다는 평이다.
◇정체한 CJ그룹, 올리브영은 '퀀텀 점프' 2020년부터 2025년 9월까지 6년간 CJ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을 집계해보면 CJ올리브영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간 몰라보게 달라졌다.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뿐 아니라 잉여현금흐름 등 모든 부분에서 기여도가 상승했다.
CJ그룹은 CJ제일제당과 CJ ENM, CJ CGV, CJ올리브영 등 4개 계열사들의 연결 재무지표를 합산하면 전체 재무지표를 대략 추산해볼 수 있다. CJ제일제당 자회사인 CJ대한통운을 포함해 다른 계열사 대부분이 이 회사들의 종속회사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셈한 계열사들의 합산 매출은 현재 정체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약 39조원으로 전년 대비 19% 오른 이후론 크게 변화가 없었다. 2024년과 지난해 매출 증가세를 유지하긴 했지만 성장률이 4~6%대로 소폭에 그쳤다.
원인은 외형 대부분을 지탱하는 CJ제일제당 매출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데 있다. 연간 29조원 남짓을 3년째 맴도는 중이다. 반면 CJ올리브영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면서 위상이 급격히 오르고 있다.
CJ올리브영은 2020년 연매출이 1조원대에 불과했지만 2024년 4조8000억원 수준까지 급증했다. 지난해의 경우 9월 말에 이미 4조2619억원을 기록, 연매출 5조원 시대를 열었다. 이 기간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6% 수준에서 약 14%로 점프했다.
더 주목할 점은 순이익의 역전이다. 6년 전 연간 순이익은 CJ올리브영이 590억원, CJ제일제당이 7900억원으로 13배 이상 격차가 났다. 하지만 지난해를 보면 9월 말 기준 CJ올리브영이 4100억원, CJ제일제당이 3800억원으로 순서가 완전히 뒤집혔다. 같은 기간 그룹 전체 순이익이 약 8000억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올리브영이 그 절반을 책임진 셈이다. 이미 2024년부터 제일제당보다 많은 순이익을 내고 있다.
현금흐름도 비슷한 모습을 그리는 중이다. CJ제일제당은 2024년부터 미국 사우스다코타와 헝가리 공장 건설 등 약 8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면서 현금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3분기 말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2469억원으로 순유출 전환했다. 2020년 연간 6000억원 수준이던 잉여현금이 투자에 묶여 적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반면 CJ올리브영은 정반대의 그래프를 나타낸다. 2020년 2000억원대였던 잉여현금이 2024년 말 4400억원으로 불어났다. 지난해의 경우 9월 말 700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다만 여기엔 약 7000억원을 들인 사옥 매입 영향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근본적인 현금창출능력 자체는 다른 계열사들을 압도하고 있다. CJ그룹의 전통적 기둥인 CJ제일제당, CJ ENM이 투자 부담으로 현금을 못 가져오는 사이 CJ올리브영이 그룹 캐시카우로 부상한 그림이다.
◇승계의 핵심 지렛대, 올리브영 '몸값' CJ올리브영의 독주는 이선호 CJ미래기획그룹장의 승계와도 직결된다. 이 그룹장의 지주사 CJ 지분은 3.2%로 미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CJ올리브영은 개인 최대주주로 11.04%를 보유하고 있다.
당초 시장에선 CJ올리브영을 상장시켜 확보한 자금을 지주사 지분을 사들이는 방법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하지만 양도세 문제, 중복 상장 이슈가 불거지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대신 급부상한 시나리오는 CJ와 올리브영의 포괄적 주식 교환, 즉 합병 가능성이다.
합병은 비율이 핵심이기 때문에 CJ올리브영 가치를 높게 받을수록 이선호 그룹장에게 유리한 결과가 된다. 올리브영이 그룹 내에서 가장 많은 현금을 벌어들이고, 가장 높은 성장성을 가지고 있는 지금이 기업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기라는 뜻이다.
현재 CJ올리브영의 기업가치는 10조원대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반면 지주사 CJ 시가총액은 5조8000억원 남짓이다. 이 가치를 기준으로 합병 비율을 산정하면 대략 1대 2의 교환비가 나온다. 올리브영 주식 1주를 내놓으면 지주사 주식 2주를 받아올 수 있는 셈이다. 이 시나리오대로만 된다면 이선호 그룹장은 별다른 자금 투입 없이도 지주사 지분율을 단숨에 20%대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올리브영의 압도적인 성장이 지배력 확대의 지렛대가 되는 구조다.
입법 예고된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도 변수로 꼽힌다. 연내 입법이 유력한 3차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CJ올리브영은 전체 발행 주식의 22.6%에 달하는 자사주를 보유한 상태다. 과거 2대 주주였던 사모펀드의 지분을 회사가 현금으로 사주면서 생긴 물량이다.
이 자사주를 법안에 따라 전부 소각하면 전체 주식의 모수가 줄고,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자동으로 오르는 결과가 된다. 실제로 자사주를 소각할 경우 이선호 그룹장의 올리브영 지분율은 11%대에서 14.3%로 수직 상승한다. 그만큼 CJ와 합병에서 교환받을 수 있는 지주사 주식 수도 대폭 늘어날 수 있다. CJ그룹 입장에선 규제 변화를 명분 삼아 자사주를 소각하고 4세 지배력을 극대화한 뒤 합병을 추진할 수 있는, 그야말로 '승계의 골든타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