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너지의 프리IPO(상장 전 지분투자)가 진행되면서 수십년간 이어져 온 승계작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단순한 자금조달을 넘어 3세 경영의 완성, 그리고 형제간 계열 분리를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애초 자본금 30억원으로 시작한 한화에너지가 승계의 자금줄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엔 그동안 이어진 치밀한 자본 흐름에 있다. 분할과 합병을 반복하면서 24년만에 5조원대 회사로 덩치를 키웠다.
◇지분율 변화가 암시하는 '각자도생' 한화에너지 프리IPO의 핵심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사장과 삼남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거액의 현금을 확보했다는 점이다. 두 형제는 보유한 한화에너지 지분 중 20%를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등 재무적 투자자(FI)에게 매각하기로 했다. 매각대금만 약 1조1000억원에 달한다.
이번 매각으로 한화에너지의 지분 구조는 김동관 부회장 50%, 김동원 사장 20%, 김동선 부사장 10%, 그리고 FI 20%로 재편됐다. 기존에는 삼형제가 지분 100%를 보유한 가족회사였으나, 차남은 5%, 삼남은 15%의 지분을 털어냈다.
거래는 신주 발행 없는 100% 구주 매출 방식이다. 따라서 매각 대금은 전부 두 형제의 개인 계좌로 고스란히 입금된다. 단순 계산하면 김동원 사장은 약 2800억 원, 김동선 부사장은 약 8200억 원의 현금을 쥘 수 있다. 통상 프리IPO의 경우 신주를 찍어 유입된 자금을 설비 투자나 부채 상환에 쓰는 것과 달리, 회사의 재무구조 개선이 아니라 오너일가의 현금 확보를 위한 딜인 셈이다.
주목할 부분은 김동관 부회장이 지분을 단 한 주도 팔지 않고 50%의 지배력을 그대로 유지했다는 점에 있다. 반면 동생들은 지분을 현금으로 바꿔서 나가는, 이른바 '캐시 아웃(Cash out)'을 택했다. 한화그룹의 승계구도가 김동관 부회장 중심으로 굳어졌고, 김동원 사장과 김동선 부사장은 살림을 차려 나가는 계열 분리 수순에 돌입했다는 뜻이다.
◇30억에서 5.5조로…승계 '시드머니'의 역사 독립 자금의 기반이 된 한화에너지는 이번 거래에서 약 5조50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애초 미약했던 규모를 생각하면 엄청난 성장이다. 한화에너지의 모태는 2001년 한화그룹 전산사업부문을 떼어내 설립한 SI(시스템통합) 업체 '한화S&C'다. 당시 김승연 회장과 한화가 각각 10억 원, 20억 원씩 출자했으니 겨우 자본금 30억원으로 세워졌다.
SI 계열사는 계열간 거래가 쉬운 만큼 재벌가 승계 자금 마련의 단골 손님이다. 한화S&C 역시 계열사 매출이 많았지만 2004년 이례적 이벤트가 생긴다. 당시 매출 1268억원 중 계열사 매출이 580억원을 차지했는데도 매출원가가 1200억원으로 치솟으면서 4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 자본잠식 상태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인 2005년 지분거래가 있었다. 김승연 회장은 보유 지분을 장남 김동관에게, 한화는 차남과 삼남에게 지분을 전량 팔았다. 김 회장은 주당 5000원, 한화는 주당 5100원을 받았으니 거의 액면가 수준에 매각했다. 세 형제가 지분 100%를 확보하는 데 든 돈이 30억원 수준에 그쳤다. .
이후 삼형제는 2007년까지 세 번에 걸친 유상증자에 1312억원을 투입했다. 당시 각각 25세, 23세, 19세에 불과했던 만큼 김승연 회장의 지원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돈을 종잣돈 삼아 한화S&C는 단순 전산 용역을 넘어 에너지 회사로 변모했다.
군장열병합발전을 설립해 100% 자회사로 편입하고, 2년 뒤 여수열병합발전을 손자회사로 만들었다. 2012년에는 이들을 합쳐 한화에너지를 설립하고 한화S&C가 지분 100%를 가진 구조를 만들었다. 여수 사업장에서 만든 전기를 한화케미칼에 공급하는 확실한 수익 모델이 덩치 키우기에 한몫했다. 이렇게 한화에너지의 폭발적인 성장은 한화S&C 자산 증식의 지렛대가 됐다.
그러다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강화되자 한화그룹은 2017년 한화S&C를 투자회사인 '에이치솔루션'과 SI사업을 하는 '한화S&C'로 물적분할한다. 또 한화S&C 지분 44.6%를 스틱인베스트먼트에 매각해 약 2500억 원을 현금화했다. 규제를 피하면서 유동성을 확보한 묘수였다. 2021년엔 에이치솔루션이 자회사였던 한화에너지를 역으로 흡수합병하고 사명을 바꿔 지금의 한화에너지가 만들어졌다.
◇'옥상옥' 지배구조 완성 2024년 7월 승계의 판도가 또 한 번 뒤집힌다. 한화에너지가 그룹 지주사인 한화 지분 공개매수에 나섰다. 당시 5.2%를 확보하고, 3개월 뒤 고려아연이 가지고 있던 한화 지분 7.25%까지 블록딜로 더 사들이면서 한화에너지의 한화 지분율은 9.7%에서 22.2%로 올랐다. 아들 회사인 한화에너지가 아버지 회사 한화를 지배하는 옥상옥(屋上屋) 구조다.
그리고 2025년 4월 김승연 회장이 다시 쐐기를 박았다. 보유하고 있던 한화 지분 22.65%의 절반인 11.32%를 세 아들에게 증여했다. 김동관 부회장이 4.86%, 나머지 두 형제가 각각 3.23%씩 받아갔다. 결과적으로 3형제가 직접 가진 지분과 한화에너지를 통해 보유한 지분은 합쳐서 42.67%가 됐다.
한화에너지 지분을 한화 지분으로 환산해서 김동관 부회장 지분율만 계산하면 20.85%로 부친 지분율을 앞지른다. 경영권 승계가 실질적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다.
◇1조 현금 용처는…'세금 납부'와 '홀로서기' 그렇다면 김동원, 김동선 형제가 굳이 지금 알짜 지분을 넘긴 이유는 뭘까. 우선 세금 문제가 있다. 김승연 회장의 지분 증여로 형제들이 내야 할 세금만 약 2200억원 규모에 달한다. 연부연납을 한다고 해도 매년 수백억 원이 필요한데, 이번 매각 대금으로 깔끔히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계열 분리 자금이다. 현재 세 형제는 김동관 부회장이 방산, 에너지 등 그룹의 핵심을 이끌고, 김동원 사장은 한화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 김동선 부사장은 유통 부분을 맡고 있다.
특히 김동선 사장의 행보가 공격적이다. 최근 한화갤러리아 주식을 장내에서 꾸준히 사들이고 있고 얼마 전 아워홈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번 딜에서도 가장 많은 자금을 손에 쥐었다. 독자 노선을 걷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뜻이다.
한화에너지 지분 매각대금 역시 갤러리아 지배력을 더 높이고 로봇, 푸드테크 등 신사업 투자 실탄으로 쓸 것으로 짐작된다. 결국 형제들이 챙긴 이번 거래대금은 그룹을 셋으로 쪼개 갖기 위한 '이별 자금'이었던 셈이다.
시장은 승계의 ‘엔드게임’으로 한화에너지와 한화의 합병을 보고 있다. 김동관 부회장이 그룹을 완벽하게 장악하려면 지주사인 한화의 지분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다. 현재 김동관 부회장이 가진 한화 지분은 9.76%에 그치지만, 한화에너지가 한화와 합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합병은 한화에너지의 상장 이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FI들의 엑시트를 감안하면 적어도 5년 내 상장이 예상된다. 다만 기업공개 과정에서 중복상장 이슈 등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주주권익 침해 논란을 어떻게 잠재울지가 김동관 체제를 여는 과제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