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효성첨단소재가 베트남 계열사 지분을 전량 확보하면서 효성그룹이 계열분리 작업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이번 거래가 만들어낸 2600억원 규모의 현금에 쏠린다.
매각대금이 흘러 들어가는 종착지가 효성화학을 부양해야 하는 지주사 효성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효성은 벌써 2년째 효성화학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면서 재무적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매각대금 2643억, 효성으로 흐를까 HS효성첨단소재는 이달 해외 계열사 'HS효성베트남(HS Hyosung Vietnam)’의 지분 28.57%를 사들였다. 그간 효성투자개발이 보유하고 있던 지분으로 매입대금은 2643억원이다. 거래에 따라 HS효성첨단소재는 HS효성베트남 지분 100%를 확보하게 됐다.
이번 지분 매매는 계열분리 작업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앞서 효성그룹은 2024년 7월 효성첨단소재를 핵심으로 6개 계열사를 떼어내 별도 지주사인 HS효성을 출범시켰다. 조현준 회장의 효성, 동생 조현상 부회장의 HS효성을 양대 지주사 체제로 운영 중이다. HS효성베트남 지분을 넘긴 효성투자개발은 효성의 종속 자회사에 속한다.
다만 효성 입장에서 이번 거래는 더 복잡한 의미가 있다. 효성은 효성투자개발 지분 58.8%를 보유 중이다. HS효성첨단소재 곳간에서 나온 현금 2643억원이 효성투자개발로 들어가면, 이 자금이 다시 배당이나 대여 등의 방식으로 효성에 흘러갈 수 있다. 최근 재무적 부담이 가중된 상황에서 우회적 수혈 통로가 열렸다는 뜻이다.
◇효성, 무차입 경영 '옛말'…효성화학 돕느라 빚 늘었다 효성에 유동성 조달이 필요해진 이유는 뭘까. 올 9월 말 기준으로 효성의 별도 순차입금은 2445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사실상의 무차입 기조였지만 지난해 순현금 상태가 깨지더니 올해는 차입규모가 더 확대됐다. 빚이 급증한 것은 효성화학에 대한 계열 지원이 부쩍 확대됐기 때문이다.
효성화학은 최근 효성의 전방위적 지원 사격을 받고 있다. 올 10월 효성화학은 1000억원어치 영구CB(전환사채) 발행을 의결했으며 전량 효성이 인수했다. 이 신종자본증권의 표면이자율은 4.0%, 발행 3년 뒤부터 금리가 매년 큰 폭으로 뛰는 스텝업 조항이 포함돼 있다. 2028년 12월부터 이자율이 7.0%로 뛰고 2030년 12월부터는 매년 1%포인트씩 더 가산, 최대 19%까지 상승하는 구조다. 사실상 투자자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니 지주사가 떠안았다고 볼 수 있다.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날 효성화학은 울산 용연공장에서 촉매로 사용하는 백금 약 7만7157온스(toz)를 효성에 매각한 뒤 다시 빌려 쓰는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back)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올 12월부터 내년 4월까지 5개월에 걸쳐 백금 2000억원 규모를 효성이 매입한다.
효성은 이미 2023년부터 수년째 효성화학에 대한 재무적 지원을 진행해 왔다. 그 해 효성화학 유상증자에 참여해 500억원을 출자했고 2024년 효성화학이 찍어낸 신종자본증권을 2000억원어치 사들였다. 2025년 4월엔 효성화학으로부터 온산 탱크터미널 사업부를 1500억원 주고 양수하기도 했다. 이번 영구채 인수와 백금 세일 앤 리스백까지 합치면 2년 동안 제공한 지원만 7000억원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 효성화학을 위해 지고 있는 우발채무도 있다. 효성화학은 올 5월 베트남법인 '효성비나케미칼(Hyosung Vina Chemicals)' 지분 49%를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처분했는데 효성이 3800억원의 자금보충 약정을 체결해 뒤를 받쳤다. 또 효성화학이 올 8월 차입한 1700억원, 12월 추가로 빌린 2000억원에 대해서도 효성이 자금보충 약정을 서 신용을 보강해줬다. 이렇게 부담한 우발채무가 7500억원이니 직접적인 재무 지원과 합치면 1조4500억원에 이른다.
◇효성화학 '버티기' 돌입… 업황 회복 변수 효성화학이 계열사 지원을 받아 자산을 줄줄이 유동화 중인 이유는 독자적 조달창구가 사실상 막힌 탓으로 보인다. 효성화학은 지난해 말 순자산이 마이너스(-)680억원을 기록, 완전자본잠식에 빠지면서 주식거래가 정지됐었다.
위기에 몰리자 회사 측은 알짜 특수가스사업(NF3)을 효성티앤씨에 매각하는 고육지책을 감행했다. 덕분에 올 초 바로 잠식을 벗어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내년 4월을 데드라인으로 개선기간을 부여받았다. 이때까지 재무와 수익구조를 개선하지 않으면 상장폐지 심사 대상이 된다.
특수가스사업을 넘긴 대가로 사업 포트폴리오도 단촐해졌다. 주력사업인 폴리프로필렌(PP) 의존도가 80% 수준으로 올랐다. PP 시황 회복이 지연되는 상황에서 부진을 지탱할 체력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S&P Global 등시장 분석 기관들은 2028년까지는 PP 스프레드의 저마진 기조가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재무전략은 자력 생존이 가능해질 때까지, 효성을 필두로 그룹 가용자원을 동원해 버티는 지구전 양상으로 보인다. 효성 입장에서 다행인 부분은 효성화학을 제외한 효성중공업, 효성티앤씨 등 주요 계열사들이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업황 회복이라는 외부 변수가 호전되지 않으면 효성화학에 대한 지원 부담을 떨치긴 어렵다.
효성화학은 12월 8일 효성비나케미칼이 차입한 736억원(5000만달러)에 대해 채무보증을 결정했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이로써 효성화학이 제공한 채무보증 총잔액은 9355억원까지 늘었다. 베트남 현지 법인의 자금난이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9월 말 기준 효성비나케미칼은 147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