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솔케미칼이 지난해 두 자릿수 매출 성장에도 불구 운전자본을 전년 수준에 묶어두면서 2000억원대 영업현금을 창출했다. 채권 회수 속도를 높이고 재고를 축소한 덕분이다. 운전자본 관리가 현금 유입으로 이어져 투자 여력을 떠받치고 있다.
한솔케미칼은 2025년 연결 기준 매출이 8840억원으로 전년보다 14% 점프했다. 글로벌 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늘고 메모리업황이 좋아지면서 반도체용 과산화수소와 전구체가 실적을 이끈 영향이 컸다.
눈에 띄는 점은 운전자본이 거의 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지난해 한솔케미칼의 운전자본 규모는 1830억원을 나타냈다. 매출채권 951억원, 재고자산 1238억원에 매입채무 360억원이 감해진 수치다. 전년 말 1800억원 수준이었는데 1.7% 증가에 그쳤다.
통상 제조업에서 매출 확대는 운전자본 증가로 이어진다. 제품을 팔아도 대금이 바로 현금으로 들어오지 않고 일정 기간 매출채권으로 장부에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 한솔케미칼은 매출채권 회수 속도를 높이고 재고를 줄이면서 운전자본 증가폭이 사실상 제자리걸음했다. 운전자본이 불어날 경우 매출채권 대손 발생이나 재고 보유 비용 등이 수익성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매출채권 추이가 두드러진다. 한솔케미칼의 매출채권은 2024년 말 904억원이었는데 작년 말 951억원으로 5.2% 늘었다. 증가율이 매출 증가율(13.9%)을 크게 밑돈다는 것은 외형 성장 속에서도 채권 회수가 비교적 빠르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지난해 한솔케미칼의 매출채권 회전율은 9.3회로 전년 말(8.6회)보다 상승했다.
채권 건전성 역시 안정적이다. 지난해 말 매출채권 951억원과 관련해 쌓은 대손충당금은 5500만원, 설정률은 0.1% 수준으로 계산된다. 추가로 단기미수금 84억원에 대한 충당금 5000만원을 합쳐도 전체 채권 대비 대손충당금 규모는 약 1억원에 그친다.
경과기간별로 보면 지난해 말 매출채권 대부분이 발생 후 3개월 이내에 집중돼 있었다. 반면 2년을 초과한 장기 채권은 5400만원 수준에 불과했다. 외상 매출이 장기 채권으로 쌓이는 규모가 크지 않다는 의미다.
여기엔 사업구조가 한몫하고 있다. 한솔케미칼은 캡티브 매출 비중이 상당한 편이다. 지난해 별도 기준의 특수관계자 매출은 2117억원으로 전체 매출에서 31% 수준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반도체용 과산화수소를 전량 매입해 2차 정제를 하는 관계기업 삼영순화 관련 매출 비중이 1505억원으로 가장 컸다. 거래 안정성이 높은 고객 비중이 큰 만큼 대금 회수가 늦어질 리스크도 낮은 구조다.
한솔케미칼은 재고도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말 재고자산 장부금액(1238억원)은 전년 말보다 21억원 남짓 감소했다. 매출이 늘었는데도 재고를 오히려 줄인 셈이다. 원재료의 가격 변동 리스크 때문으로 짐작된다.
한솔케미칼 제조원가에서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40% 남짓이다. 주력 제품인 과산화수소와 라텍스 생산에는 나프타, 부타디엔(BD), 스티렌모노머(SM) 등 국제 유가와 거시 지표에 민감한 석유화학 원재료가 투입된다.
따라서 재고를 지나치게 쌓아둘수록 원재료 가격이 떨어질 때 손해를 볼 위험이 커진다. 실제 한솔케미칼의 지난해 영업비용으로 인식한 재고자산 평가손실은 약 19억원으로 전년보다 늘었다. 재고 관리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의미다.
운전자본 통제는 현금흐름 증가로 이어졌다. 손익계산서상 이익이 재고나 외상값에 묶이지 않고 실제 현금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한솔케미칼의 지난해 연결 영업활동현금흐름은 2004억원으로 전년(약 1624억원) 대비 23.4% 증가했다. 영업이익 증가세를 웃도는 유입이다.
이 현금은 대규모 투자를 떠받치는 재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솔케미칼은 2025년 반도체와 이차전지 소재 생산설비 확충 등을 위해 1084억원 규모의 유형자산을 취득했다. 2024년(835억원)보다 250억원가량 늘었다. 앞으로도 박막재료 증설, 이차전지 고체전해질과 실리콘 음극재 개발 등에 연평균 1000억~1500억원 안팎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연간 2000억원 수준의 영업현금 규모를 유지할 경우 외부 차입 없이도 투자지출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