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시스템이 한화오션 지분 일부를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처분해 조단위 현금을 확보한다. 장부상 빚이 늘고 부채비율이 치솟는 착시를 동반하지만, 사실상 굵직한 해외투자를 소화하기 위한 징검다리성 자산 유동화 성격이 짙다.
방산사업 호황으로 수주가 크게 늘었지만 운전자본 부담으로 잉여현금이 넉넉지 않은 상황에서, 대규모 자금 집행 시기와 현금 회수 시점의 엇박자를 PRS 계약을 통해 메운 전략으로 보인다.
◇매각 아닌 담보성 조달…현금 들어와도 장부엔 '차입' 한화시스템이 최근 양도를 결의한 한화오션 주식은 보유 지분 11.57% 가운데 1392만 3011주(4.54%) 규모다. 주가수익스왑(PRS) 방식으로 처분하며 NH투자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대신증권 등 4개 증권사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들이 양수하기로 했다.
지분은 4월 6일 시간외 대량매매(블록딜)로 넘어가 이틀 뒤 대금이 들어올 예정이다. 대금은 그 직전 영업일 종가에 따라 최종 확정되지만, 이사회 결의 전일인 3월 5일 종가(12만2100원)를 적용할 경우 거래규모는 약 1조7000억원에 달한다.
관건은 회계 처리 방식이다. 통상적인 보유지분 매각은 자산을 장부에서 지우고 현금을 인식하는 구조다. 자산 구성만 바뀔 뿐 부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거래는 회계상 매각이 아니라 담보부 차입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한화시스템이 한화오션 지분을 ‘기타포괄손익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으로 분류하고 있는 데다, PRS 계약구조상 추후 SPC가 지분을 처분할 때 매각가격과 계약 당시 기준가격의 차액을 한화시스템이 정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주가 변동에 따른 경제적 위험과 보상을 여전히 한화시스템이 부담하는 만큼 실질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린 것과 다르지 않다.
이 경우 내달 8일 1조7000억원의 현금이 들어오는 동시에 같은 규모의 차입금도 부채로 잡히게 된다. 2025년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이 1조6099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순 합산했을 때 총차입금은 3조3099억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할 수 있다.
재무지표도 일시적인 악화가 불가피하다. 2025년 말 기준 106.5%인 연결 부채비율이 거래 직후엔 140% 안팎으로 오를 것으로 추산된다. 같은 기간 15.6%였던 차입금의존도 역시 27%대로 상승할 전망이다.
◇수수료율 5.1%…
'유동성 브리지' 택한 이유는 하지만 이같은 타격은 표면적 착시일 뿐이다. 우선 부채가 늘어나는 대신 지난해 말 3696억원에 불과했던 현금성 자산이 2조원 수준으로 불어나 유동성이 풍부해진다. 또 중요한 부분은 PRS가 외부 신용을 새로 일으켜 자금을 끌어오는 방식이라기보다, 이미 보유한 한화오션 지분을 사실상 선현금화하는 구조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자산 유동화와 차입의 성격이 결합된 형태다.
구체적으로 이번 PRS 계약은 만기 1년에 풋옵션 등 별도 조항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간 안에 SPC가 시장에서 한화오션 지분을 최종 매각하면 대금정산과 함께 부채로 잡히던 조단위 차입금도 장부에서 사라진다. 한화시스템은 이 과정에서 선취수수료 0.3%와 개별민평 수익률에 170bp를 더한 수준의 PRS 프리미엄을 부담해야 한다. 총 금융수수료율은 5.1% 안팎으로 추산된다.
결국 이번 PRS는 단순 차입도 완전한 지분 매각도 아닌, 보유 자산을 담보로 한 중간 단계의 자금 조달로 볼 수 있다. 회계상으로는 부채가 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화오션 지분을 담보로 현금을 당겨쓰고 지분을 실제로 매각하기 전까지 시간을 사는 징검다리성 조달이다.
한화시스템이 이런 구조를 택한 배경에는 그룹 차원의 해외 투자 일정이 있다. 한화시스템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함께 해양, 방산 밸류체인 확장을 위한 자금집행의 한 축을 맡고 있다. 2023년 한화오션 유상증자에 6563억원을 출자한 것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해외 투자를 계속해왔다.
특히 자금 부담이 집중된 시점은 2025년 12월이다. 미국 '한화 퓨처프루프' 산하의 ‘Hanwha Defense & Energy’ 지분 37.5% 인수에 4279억원을 출자했고, 필리조선소 유상증자에도 883억원을 추가 투입했다. 한 달 동안 해외 자회사 투자에만 5162억원이 나간 셈이다.
문제는 영업이 호황을 누리는 데도 아직 현금이 운전자본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한화시스템은 방산부문 수주잔고가 매출의 4배 수준을 상회할 정도로 영업이 순항 중이다. 다만 그만큼 부품 선확보 비용이 늘고 대금 회수 기간이 길어졌다. 또 생산시설 확충을 위한 자본적지출도 병행되면서 잉여현금흐름은 작년 말 마이너스(-) 2789억원을 기록했다.
시장 관계자는 “산업의 특성상 외형 성장이 운전자본과 차입 확대로 나타나는 상황”이라며 “이번 PRS는 단순히 부채를 늘린 거래라기보다, 투자집행과 현금회수 시계가 엇갈리는 국면에서 보유 지분을 활용해 단기 유동성을 메우는 재무적 브리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