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의 혁신신약 개발 구심점인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차입 전략의 변곡점을 맞았다. 지난 4년 연속 차입금을 줄여오던 기조를 끊었고 약정 한도 또한 출범 후 처음으로 1조원대로 끌어올렸다.
배경에는 신약 개발 투자 확대가 있다. 항체약물접합체(ADC) 등 신규 파이프라인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임상과 R&D에 필요한 자금 수요가 커질 것을 대비한 선제 조처다. 기존 차입 리파이낸싱과 함께 신약 개발에 필요한 유동성을 미리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000억 한도약정…기존 차입 갈아타고 유동성도 확보 삼성에피스홀딩스는 지난달 27일 이사회에서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의 2000억원 규모 단기차입 한도대출 신규 약정을 결의했다. 이로써 삼성바이오에피스의 금융기관 단기차입 한도는 기존 8555억원에서 1조555억원으로 늘어났다. 한도 확대 목적은 기존 차입금 상환과 운영자금 확보다.
실제 차입 실행 여부는 별도로 결정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가 필요한 시점에 한도 내에서 탄력적으로 자금을 꺼내 쓸 수 있단 뜻이다. 실제 자금 수요와 조달 시점을 분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층 더 유연한 재무 전략을 수립할 수 있게 된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차입금은 2021년 9940억원에서 지난해 말 3770억원으로 4년 연속 줄었다. 올해 1분기 단기차입금이 2370억원에서 6020억원으로 늘어나며 전체 차입 잔액이 7420억원으로 불어났다. 감소 기조가 꺾인 데 이어 이번 약정 한도 확대로 확실한 조달 기조 전환이 확인됐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1분기 매출은 4549억원, 영업이익은 144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4%, 13% 늘었다. EBITDA도 1664억원으로 같은 기간 15% 증가했다. 차입금이 늘었지만 부채비율은 84.6%, 유동비율은 147.2%다. 여전히 재무건전성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필요시 추가 차입 여력도 남아 있다.
약정 조건에서 주목할 부분은 '저금리'다. 기존 차입 대비 낮은 금리 조건을 내세운 리파이낸싱 성격을 띤다. 상환 대상으로는 수출입은행 등 2개 기관에서 빌린 유동성장기차입금 1400억원 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900억원이 우선 거론된다. 이를 저금리 단기 한도대출로 갈아타면 이자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유동성도 확보할 수 있다.
단기차입금 6020억원도 CD 3개월물 연동 변동금리 구조다.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 8개 금융기관과의 약정에서 가산금리 범위는 연 0.65~1.10%포인트다. 이번 신규 약정이 실행되면 기존 단기차입 일부의 금리 조건도 개선될 여지가 있다.
한도를 먼저 확보해두면 자금 수요 발생 시점과 조달 시점을 분리할 수 있다. 임상 진행 속도나 물질 도입 시점에 따라 실제 자금 집행 규모가 유동적인 신약 개발 특성상 한도 약정 방식이 유리하다. 금리나 시장 환경에 따라 실행 규모와 시점을 조율할 수 있어 재무적 유연성도 확보된다.
◇ADC·비만치료제·중국 거점까지…다양해진 자금 수요 대비 삼성바이오에피스는 ADC 신약 후보물질 SBE303의 FDA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달 AACR 2026에서 기존 치료제 대비 개선된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한 전임상 결과를 발표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EGFR과 HER3를 동시에 타깃하는 이중항체 ADC 'SBE313'도 전임상 단계를 밟고 있어 임상 진입 시 비용 수요가 추가로 발생한다.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파이프라인 확장도 자금 수요를 키우는 요인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올해 3월 지투지바이오에 20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단행하며 장기지속형 비만 치료제 물질을 도입했다. 산도스와는 SB36 등 최대 5종 파이프라인에 대한 조기 협력 계약을 체결해 개발 초기 단계부터 연구개발비를 분담하는 구조를 갖췄다.
조직 차원의 확장도 맞물렸다. 삼성에피스홀딩스는 6월 중국 R&D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 차이나'를 개소한다. ADC 임상 선도 국가인 중국 현지에서 후속 물질을 발굴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수행한다. 삼성바이오에피스 차이나가 물질을 발굴하면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임상을 맡는 구조다. 에피스넥스랩까지 포함하면 삼성에피스홀딩스 산하 자회사는 총 3곳으로 늘어난다.
자회사 3곳이 동시에 가동되면 인력 세팅·물질 도입·임상 운영 비용이 중첩된다. 바이오시밀러로 수익 기반을 다진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신약 개발 기업으로 체질을 넓히면서 자금 조달 전략도 함께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삼성바이오에피스 관계자는 "차입을 통해 조달한 자금들은 혁신신약 연구·개발(R&D)을 포함한 전체 운영 자금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