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I의 총차입금이 올해 2분기 12조원을 넘어섰다. 투자 확대와 함께 차입 규모도 커진 결과다. 그런데 이 돈은 자본시장에서 오지 않았다. 삼성SDI가 마지막으로 공모 회사채 시장에 나선 건 8년 전이다.
회사채 대신 곳간을 채워준 건 한국과 미국, 두 나라 정부다. 삼성SDI의 최대 차입처는 미국 에너지부고 그다음이 한국수출입은행이다. 지난해 말 부임한 오재균 부사장(CFO)은 이 구조를 물려받아 창구를 하나 더 열었다. 올해 들어 수출입은행에서 원화를 처음 빌렸고 한국산업은행에서도 운영자금을 처음 끌어왔다. 시중은행이나 회사채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의 정책금융을 활용해 투자에 필요한 자금의 조달 비용을 낮췄다.
◇ 최대 차입처는 미국 정부…정책금융이 62.9% 이상 삼성SDI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총차입금은 11조6537억원이다. 가장 최근 발간된 1분기 보고서의 차입금 주석을 열면 이 돈의 출처가 드러난다.
가장 큰 차입처는 미국 에너지부다. 3조8320억원으로 전체 차입금의 32.9%를 차지한다.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합작법인 스타플러스에너지가 첨단기술차량제조(ATVM) 프로그램을 통해 받은 대출이다. 두 번째로 큰 정책금융 조달처는 한국수출입은행이다. 관련 차입금은 약 3조4615억원으로 전체의 29.7%에 달한다. 국내 본사를 비롯해 헝가리 법인, 미국 법인 등이 한국수출입은행 관련 자금을 활용했다. 미국 에너지부와 한국수출입은행 관련 차입금만 합쳐도 전체 차입금의 약 62.9%다.
오 부사장은 부임 직후부터 자금 조달을 주요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올해 초 진행된 지난해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투자 규모가 축소되더라도 영업현금흐름만으로는 전체를 커버하기 어렵다"며 "투자 규모와 시기를 고려해 보유자산 활용 등을 포함한 여러 방안으로 자금을 조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후 실제 조달에서 그는 기존 금융기관을 유지하면서 정책금융 활용을 확대했따. 삼성SDI는 올해 들어 한국수출입은행에서 원화 자금을 새로 조달한 데 이어 한국산업은행에서도 운영자금을 확보했다.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한 정책금융을 추가 조달 창구로 활용한 것이다.
삼성SDI의 재무라인이 정책금융을 적극 활용한 것은 대규모 배터리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장기간 확보하면서 조달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1분기 말 기준 한국수출입은행의 원화 장기차입금 금리는 3.02%, 단기차입금은 3.12% 수준이다. 국내 시중은행 차입금도 3%대 후반에서 4%대 초반 수준이다. 특히 헝가리 법인이 국민은행에서 조달한 유로화 장기차입금의 금리는 0.63%로 매우 낮다.
삼성SDI가 속한 신용등급 AA등급의 3년물 회사채 금리는 최근 4%를 웃돌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같은 돈을 회사채로 조달하는 것보다 기존 차입 구조를 유지하는 편이 비용 측면에서 유리한 셈이다.
◇재무라인의 끝나지 않은 고민… ‘얼마나 싸게, 얼마나 오래’ 금리가 낮다고 해서 이자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입금 증가 규모에 비하면 이자 부담은 상대적으로 완만하게 증가했다. 빌린 돈이 두 배 가까이 불어나는 동안 이자는 그 절반 남짓한 속도로 늘었다.
총차입금은 2023년 말 5조7178억원에서 2025년 말 10조8839억원으로 90.4% 확대됐다. 같은 기간 연결기준 이자 지급액은 2213억원에서 3499억원으로 58.1% 느는 데 그쳤다. 낮은 금리의 정책금융과 은행 차입을 활용하는 조달 구조는 대규모 투자 국면에서 삼성SDI의 이자 부담을 낮춰주는 든든한 울타리 역할을 해줬다.
이자 부담을 낮추는 데는 성공했지만 재무라인의 고민은 끝이 아니다. 차입금 자체가 빠르게 늘어난 만큼 앞으로는 조달 비용뿐 아니라 만기와 차입 규모까지 함께 관리해야 한다. 1분기 말 단기차입금 5조9141억원 가운데 4조6447억원이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온다. 매년 약 4조6000억원을 다시 빌려야 한다는 뜻이다. 특히 삼성SDI는 올해도 미국 ESS 생산 확대와 헝가리 공장 증설 등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계획이다.
저금리 정책금융으로 시간은 벌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 부사장에게는 기존 차입금의 만기를 분산하고 향후 필요한 투자 자금을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삼성SDI 관계자는 향후 자금 조달 계획에 대해 “자금 조달 방법은 다양하게 검토 중인 상황이고 필요에 따라서 하는 것”이라며 “자금 조달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