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온 편입 이후 리가켐바이오의 사업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인수 전에는 개별 파이프라인의 대형 기술이전(라이선스아웃) 계약이 실적의 변수였다면, 2024년 3월 오리온 인수 이후에는 여기에 신규 항체 기술도입(라이선스인) 계약이 잇따라 더해지며 파이프라인 포트폴리오 자체를 넓히는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갔다. 이에 발맞춰 대표이사 교체와 대규모 자금 조달, 조직 정비 등을 단행하며성장성을 대폭 끌어올리는 모습이다.
◇기술이전과 도입 병행, 성장 동력 확보 속도 리가켐바이오의 대표적 기술이전은 존슨앤존슨의 자회사인 얀센과 2023년 12월22일 체결한 항체약물접합체(ADC) 신약 후보물질 LCB84(Trop2-ADC)의 계약(2조2458억원)이다. ADC는 암세포를 찾아가는 항체에 세포독성 약물을 링커로 연결해 암세포를 선택적으로 공격하도록 만든 치료제다.
오리온으로 주인이 변경된 2024년에도 라이선스아웃 실적을 꾸준히 추가했다. 그해 10월 10일 일본 오노약품공업 대상 LCB97(L1CAM-ADC) 기술이전계약(총 계약금 9435억원)과 ADC 멀티타겟 대상 공동연구·원천기술 기술이전계약을 각각 공시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달 7일에는 LNCB74(B7H4-ADC)의 단독 개발 및 기술이전 권리를 확보했다고 공시하며, 라이선스아웃형 파이프라인 관리를 이어갔다.
마일스톤 기술료 수령 공시도 이어졌다. LCB97 관련 마일스톤 수령 공시만 2024년 11월부터 2026년 7월까지 다섯 차례 나왔다. LCB97을 포함해 기술이전에 따른 매출은 2023년 128억원에서 2024년 1054억원, 2025년 1212억원으로 늘었다. 그간의 투자가 오리온 인수 이후 결실을 맺는 모양새다.
오리온 체제 아래 새롭게 두드러진 변화는 라이선스인, 즉 기술도입 계약이 잦아졌다는 점이다. 리가켐바이오는 2025년 다안바이오테라퓨틱스, 와이바이오로직스, 노바락 바이오테라퓨틱스, 고테라퓨틱스, 2026년 노바락 바이오테라퓨틱스(2차)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항체·ADC 연구개발을 위한 항체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올 4월에는 파이안바이오테크놀로지로부터 항체를 대체하는 신규 기전 약물 기술까지 도입해 총 6차례 기술도입에 나섰다. 자금력 탄탄한 오리온그룹 편입 이후에는 기술이전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수 기술을 도입해 파이프라인을 넓히는 쪽으로 성장 전략이 바뀐 모습이다.
◇'LCB 2.0' 본격화…연구조직도 다시 짰다 사업 전략 이동은 조직 개편으로도 이어졌다. 리가켐바이오는 올해 초 기존 IR/BD팀을 COO·CFO 직속 기술사업전략센터로 확대 개편하고 산하에 BD팀·IP팀·Business Intelligence팀을 뒀다. 플랫폼 기술이전 중심이던 사업개발 기능이 자체 에셋 개발과 오픈이노베이션까지 아우르는 조직으로 커진 셈이다.
연구개발(R&D) 조직도 ADC 이외 영역으로 넓어졌다. 올해 1월 미국 머크(MSD) 출신 한진환 박사를 신약연구소장으로 영입하며 기존 ADC연구소(정철웅 소장)와 신약연구소(한진환 소장)로 연구조직을 이원화했다. 신약연구소는 ADC를 제외한 혁신 신약과 신규 플랫폼 개발을 전담한다.
임상 파이프라인 구성도 다양해졌다. 올해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임상 단계 ADC 자산은 지난해 말 5개(LCB14와 LCB73, LCB71, LCB84, LCB41A)에서 올해 상반기 LCB97과 LCB02A, LCB93이 추가돼 총 8개로 늘었다.
신규 자산 가운데 LCB97·LCB93은 파트너사들이 개발을 맡는 반면, LCB02A는 리가켐바이오가 직접 글로벌 임상을 수행하는 자체개발 자산이다. 기술이전 자산의 임상 진전과 자체개발 확대가 동시에 이뤄지며 회사가 추진하는 'LCB 2.0' 전략이 구체화하고 있다. LCB 2.0는 조기 기술이전 중심의 사업모델에 일부 핵심 자산을 직접 임상까지 끌고 가는 전략으로, 올해 2개 안팎의 자체 임상에 돌입해 내년엔 3~5개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ADC 관련 특허 출원 건수도 지난해 말 100건에서 올해 상반기 말 132건으로 늘었다.
◇박세진 대표 체제로 전환, 세대교체 신호탄 올 상반기 경영진이 교체됐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리가켐바이오는 2026년 4월 29일 대표이사를 김용주에서 박세진으로 교체했다. 창립 20주년을 맞아 창업자인 김 전 대표가 회장으로 추대됐지만, 동시에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세대교체성 인사였다. 창업 세대의 경영 노하우를 그룹 차원의 자산으로 승화시키는 동시에 실무 중심의 젊은 리더십을 전면에 내세우려는 차원이다.
김 회장은 서울대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유기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LG화학 기술연구원과 LG생명과학 신약연구소장을 거친 인물로, 2006년 리가켐바이오를 창업해 지금까지 이끌어 왔다. 회장 승진 후에는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집중하면서 오리온그룹 바이오 사업의 자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리가켐바이오는 올 6월 정부의 민관 합동 정책금융 프로그램인 국민성장펀드 투자처로 선정돼 5000억원을 수혈받았는데, 이 과정에서도 김 회장이 자문으로 참여했다.
공동창업자인 박세진 신임 대표는 LG화학에서 전략기획팀장·OLED사업팀장 등을 거쳐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에 창립 초기부터 합류해 COO·CFO·사장을 지낸 내부 인사다. 김 회장이 R&D에 전념하도록 경영 전반을 뒷받침해 온 파트너다.
박 대표 승진과 함께 CTO와 보스턴 임상 법인장을 겸임해온 채제욱 수석부사장은 R&D 전체를 총괄하게 됐다. 박 대표가 전략, 기획 등 기업 운영 전반의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력을 강화하고, 채제욱 수석부사장이 핵심 경쟁력인 연구 개발 혁신을 주도함으로써 연속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새로운 리더십 체제를 구축한 셈이다.
오리온 편입 이후 리가켐바이오는 대형 인수형 성장 대신 라이선스아웃과 라이선스인을 오가는 파이프라인 재편, 조직 재편, 자체 개발 자산의 임상 진전, 경영진 승계와 대규모 정책자금 조달까지 겹치며 사업 구성 자체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새 체제에서 이 파이프라인들이 실제 마일스톤과 신규 기술이전으로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지에 업계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