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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er Match Up영풍 vs 고려아연

'투자 시계' 멈춘 영풍, 바쁘게 돌아가는 고려아연

⑥[신사업 투자]올해 종속·관계기업 투자액, 영풍 '0원'·고려아연 '2228억원'

양도웅 기자  2023-12-06 15:33:59

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 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영풍과 고려아연은 사업형 지주사에 가깝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련업으로 자체 수익 활동을 하면서도 지분투자한 여러 기업을 통해 다른 사업도 한다. 영풍은 인쇄회로기판(PCB)과 반도체 패키징, 고려아연은 수출입과 자원순환, 신재생에너지, 이차전지 소재 사업 등을 한다.

차이가 있다면 사업 확장 면에서 영풍의 '투자 시계'는 3년 전에 멈춰선 반면 고려아연은 올해도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영풍이 3년 전 투자한 테라닉스도 기존 PCB 사업군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영풍의 투자활동은 그보다 앞서 둔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고려아연은 최근 총 5000억원이 넘는 니켈제련소 투자계획을 밝히는 등 앞으로도 적극적인 투자활동이 예상된다.


◇영풍, 3년 전 테라닉스 인수 후 계속되는 소극적 투자 행보

영풍이 올해 9월 말까지 별도기준으로 종속과 관계기업에 투자한 현금은 '0원'이다. 연결기준으로 넓혀도 50억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보유 지분이 50% 이상이거나 그 이하더라도 지배력을 갖고 있는 기업은 종속기업으로 분류한다. 지배력을 갖고 있지 않지만 지분 20% 이상을 들고 있다면 관계기업으로 분류한다.

종속과 관계기업에 투자한 현금이 없다는 건, 기존 종속·관계기업에 추가 투자하지도 새로운 기업을 종속·관계기업에 편입하기 위해 투자하지도 않았다는 의미다. 지난해는 고려아연, 포스코 등과 2010년 합작 설립한 관계회사 코리아니켈에 출자했지만, 규모가 26억원으로 크지 않았다. 더욱이 코리아니켈은 올해 초 청산절차를 밟기로 했다.

가장 최근 종속·관계기업에 투자한 대표적 사례는 2020년 테라닉스다. 503억원을 투자해 지분 약 42%를 인수하며 종속기업으로 편입시켰다. 다만 테라닉스도 종속기업인 코리아써키트와 동일하게 PCB 사업을 하는 곳이다. 신사업 진출보다는 기존 사업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투자였다.

영풍이 제련업이 아닌 신사업으로 PCB 제조를 낙점하고 최초 투자한 건 1995년 영풍전자(옛 유원전자)다. 이후 코리아써키트(2005년), 인터플렉스(2007년), 테라닉스(2020년) 등을 차례로 인수했다. 상대적으로 또 다른 신사업인 반도체 패키징에 최초 투자한 건 2000년 시그네틱스로 23년 전이다.

그로부터 추가적인 신사업 투자활동은 사실상 멈춘 상태다. 농산물 사업을 위해 2017년 에스피팜랜드를 설립했지만 지금까지 총 72억원을 출자했을 따름이다. 둔화한 투자활동이 현금 부족 때문은 아니다. 2018년부터 올해까지 2021년을 제외하면 필수 설비투자를 차감하고도 매해 최소 수백억원의 잉여현금흐름이 발생하고 있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 취임 후 매년 신사업에 수천억 투자...제련업 강화도 추진

고려아연의 신사업 투자는 활발하다. 올해 9월 말까지 종속·관계기업에 총 2228억원을 투자했다. 대표적인 곳이 켐코로 약 105억원을 추가로 출자했다. 켐코는 이차전지 소재인 황산니켈을 생산하는 곳으로 고려아연과 LG화학, 영풍 등이 2017년 설립했다. 최대주주는 고려아연으로 고려아연 관계회사로 분류된다.

종속·관계기업은 아니지만 미국 암모니아 연료전지 업체인 아모지(AMOGY)에 올해 총 391억원을 출자해 지분 5%를 취득했다. 고려아연은 호주에서 '그린 암모니아' 생산을 추진하고 있다. 그린 암모니아는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암모니아다. 아모지 투자가 신재생에너지 생태계 구축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이다.

이차전지 소재와 신재생에너지 외에 고려아연이 낙점한 또다른 신사업은 자원순환이다. 지난해 미국 전자폐기물 리사이클링 기업인 이그니오홀딩스(Igneo Holdings) 인수를 위해 약 5926억원을 출자해 현지에 페달포인트홀딩스(Pedalpoint Holdings)를 설립했다.

신사업 투자는 2019년 최윤범 회장(당시 사장)이 대표이사에 취임한 이후 본격화됐다. 취임 이듬해 종속·관계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를 전년 대비 2배 이상인 2564억원으로 늘렸고 이후에도 꾸준히 2000억원 이상의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한 지난해에는 총 투자 규모가 무려 1조2696억원이었다.


최 회장이 명명한 신사업 프로젝트명은 '트로이카 드라이브'다. 지난 8월 관련 자료에 따르면 아연과 연에 집중된 제련업을 동과 니켈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기차 수요 확대에 대응하기 위함으로 니켈제련소를 짓기 위해 올해 9월부터 2025년 5월까지 총 5063억원을 투자한다. 구체적인 투자는 켐코를 통해 집행될 전망이다.

물론 이러한 잇단 투자계획은 탄탄한 현금창출력 없이는 쉽지 않다. 고려아연은 최근 5년간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필수 설비투자를 차감하고도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의 잉여현금흐름을 창출했다. 영풍과 고려아연 모두 준수한 잉여현금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신사업 투자 면에서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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