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의 배터리 밸류체인 기업들인 SK온·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SK넥실리스가 악화하는 재무 상황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설 투자를 위한 자금 조달로 자기자본과 타인자본을 모두 동원했지만 실적이 나와줘야 할 때 찾아온 시장 위축으로 재무구조가 큰 타격을 받고 있다.
◇SK온 순차입금 어느새 25조 눈앞…감당 가능할까 3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온의 올해 1분기 말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3조4659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 말(12조9511억원) 대비 81.9% 증가했고, 작년 말 20조2726억원보다는 15.8% 늘어났다. SKIET는 2023년 말 8614억원, 작년 말 1조4071억원에서 1분기 말 1조4742억원까지 증가했다. SK넥실리스는 2023년 말 9698억원에서 작년 말 1조4883억원을 기록했다. SK넥실리스는 비상장사로 1분기 말 순차입금을 공시하지 않는다.
SK온은 전기차 배터리 셀을 제조하고, SKIET는 배터리 소재 중 하나인 분리막을 생산한다. SK넥실리스는 이차전지에서 음극집전체로 작용하는 핵심 소재인 '전지박'을 생산한다. SK온과 SKIET의 모회사는 SK이노베이션, SK넥실리스의 모회사는 SKC다.
3사의 자기자본 대비 순차입금의 비중은 통상적인 제조업 대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통상 기업의 순차입금비율(순차입금/자본)이 30~50% 이상일 경우 차입금 비중이 높다고 여겨진다. SK온의 경우 1분기 말 순차입금비율이 163.7%다. 자기자본보다 순차입금이 더 많다는 의미다. SKIET의 1분기 말 순차입금비율은 61.3%다. SK넥실리스의 작년 말 순차입금비율은 85.3%였다.
동종업계 소속 배터리 셀 기업인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경우 순차입금비율이 낮은 편은 아니지만 SK온보다는 훨씬 낮다. LG에너지솔루션의 경우 1분기 말 순차입금비율이 44.4%다. 삼성SDI는 48.2%를 기록 중이다. 두 기업은 최근 재무구조 안정화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는 기업이다. 삼성SDI는 조단위 유상증자까지 추진 중이다.
물론 SK온은 상장사인 두 기업과는 달리 기업공개(IPO)라는 카드가 남아있다. 다만 전기차 시장 업황이 언제 다시 회복할 지 모른다는 것이 답답한 점이다. 또 프리IPO로 입성한 재무적 투자자(FI)들에게 지급할 자금이 워낙 많고, 순차입금이 과도하게 쌓여 있어 상장 후에도 재무구조 개선의 필요성이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전체 자산 중에서 순차입금의 비율 역시 SK그룹 3사가 독보적으로 높다. 올해 1분기 말 SK온의 순차입금/자산은 46.5%다. 전체 자산총계의 절반 가량이 순차입금이라는 뜻이다. SKIET의 순차입금/자산은 34.7%다. SK넥실리스의 작년 말 순차입금/자산은 39.2%다.
1분기 말 SK온의 자산총계는 약 50조원, 이중 배터리 공장 등 유형자산의 장부가액은 약 32조원이다. 다시 말해 SK온은 현재의 자산을 구축하기 위해 자기자본보다는 부채, 특히 차입금에 크게 의존했다는 뜻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순차입금/자산은 작년 말 기준 각각 22.3%, 25.5%다. SK온보다 약 20%포인트 이상 낮다.
◇SK온 누적 잉여현금흐름 -30조, SKIET·넥실리스도 적자 행진 재무구조 악화의 요인은 현금흐름에서 찾을 수 있다. SK온의 경우 2021년 10월 독립 창사 이후 연간 기준으로 매 해 영업손실과 순손실을 기록 중이다. 올해 1분기도 마찬가지다. 영업에서 돈을 못 버는 상황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2022년과 2023년 SK온의 잉여현금흐름은 각각 -6조9933억원, -11조3631억원이다. 작년에도 -9조4949억원을 기록했다. 3년간 기록한 누적 잉여현금흐름이 -27조8513억원이다. 올해 1분기에도 -1조3024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이래로 누적된 잉여현금흐름이 -30조8455억원이다.
SKIET와 SK넥실리스도 잉여현금 플러스(+)를 낸 적이 없다. SKIET의 2021~2025년 1분기 누적 잉여현금흐름은 -2조782억원이다. SK넥실리스의 2021~2024년 누적 잉여현금흐름은 -2조2998억원이다.
올해 1분기도 여전히 회복이 요원하다. 3사 모두 1분기 영업손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SK온의 1분기 영업손실은 1633억원이다.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세액공제 혜택을 제외하면 3341억원의 적자다. SKIET와 SK넥실리스는 각각 696억원, 388억원을 영업손실로 기록했다.
◇IRA 축소·폐지 리스크까지, '현금 63조' 中 CATL은 '훨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RA 축소와 연비 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는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했다. 이달 미국 하원은 캘리포니아주 자체 차량 배출가스 규제를 무효화 하려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큰 폭으로 축소하는 IRA 개정안을 입안했으나 부결됐다. 이번에는 부결됐으나 트럼프 정부의 특성상 전기차 산업에 비우호적인 정책이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 신용평가사들도 우려하고 있다. NICE신용평가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미국에서의 불리한 정책 변화 기조는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에 부정적 요소"라면서 "중국 기업들의 경쟁적 증설로 중국 내 2차전지 공급 과잉이 심화하고 있고 글로벌 시장 진출을 확대하면서 중국 시장 밖에서도 경쟁 심화를 유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나신평은 "2024년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률은 20%를 상회하는 등 여전히 높은 수준이나,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는 북미 시장의 성장률은 9%, 유럽은 -0.6%로 크게 둔화했다"라면서 "주력 시장의 낮은 성장성을 감안하면 국내 이차전지 기업들의 단기간 내 유의적인 실적 개선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와중에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주력 경쟁사인 중국 닝더스다이(CATL)는 막대한 현금력으로 글로벌 진출에 기지개를 켜고 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CATL이 보유한 현금성자산은 63조983억원이다. SK온(4조5896억원), LG에너지솔루션(3조7540억원)과는 수준이 다르다.
업계는 정부 차원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한국배터리산업협회는 정치권 등에 △한국판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도입을 위한 '배터리산업 기본법(가칭)' 제정 △공급망 독립 △차세대 배터리 초격차 경쟁력 확보 등 3대 공약과 11대 시책(△배터리 산업 기본법 제정 △정책금융 확충 및 지원대상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건의서를 전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이미 글로벌 단위에서 배터리 사업은 중국이 압도적으로 선두 체계를 갖춰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재무적 위기 해결과 이를 넘어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