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는 묵직한 몸집만큼 재무적으로도 신중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빚을 함부로 늘리지 않고 부채가 확대된 상태를 오래 두지도 않는다. 최고재무책임자(CFO)들 역시 이런 방침대로 재무전략을 운용하고 있다.
◇부채비율 '100% 미만 룰' 사수 GS칼텍스는 2000년 초대 CFO를 맡았던 나완배 재무본부장 이후 총 5명의 재무책임자를 배출했다. 박흥길 재무본부장과 엄태진 재무실장, 유재영 부사장을 거쳐 지금의 최우진 전무가 선임됐다. 모두 5년 이상씩 재임해 임기가 비교적 긴 편이다.
CFO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재무전략의 핵심적인 기조는 여전히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무리한 차입을 꺼리고, 지출은 최대한 영업활동현금흐름 내에서 충당한다. 사정상 차입이 늘더라도 형편이 나아지는대로 빠르게 해소해왔다.
실제로 GS칼텍스는 2006년 이후 고도화설비 등에 약 5조원을 투입하면서 부족한 실탄을 외부차입으로 조달, 차입금 증가세가 수년간 이어졌었다. 하지만 투자가 일단락되자마자 재무구조 개선부터 나섰다. 2012년 가스·전력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 등을 GS에너지에 매각했으며 GS파워 지분 50%도 KB국민은행 컨소시엄에 추가로 팔았다.
당시 GS칼텍스가 손에 쥔 매각대금은 1조4000억원에 달한다. 덕분에 2011년 8조8000억원이었던 연결 순차입금을 이듬해 6조9000억원 수준으로 축소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매년 벌어들이는 현금으로 꾸준히 빚을 순상환하면서 2017년엔 2조원대까지 줄였다.
특히 한 차례 부채를 대거 갚은 이후론 부채비율을 100% 밑으로 유지하고 있다. 2016년부터 올해(1분기 말 기준)까지 약 10년 동안 부채비율이 100%를 넘긴 것은 2021년이 유일했다. 그 해가 유독 예년과 달랐던 이유는 올레핀 투자와 유가에 있다.
이 시기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 규모의 올레핀(MFC, Mixed Feed Cracker) 투자를 집행 중이었던 데다 유가상승으로 운전자본부담이 무거워지면서 영업현금이 마이너스(-)를 나타냈다. 투자 확대와 주춤한 현금흐름이 겹친 셈이다. GS칼텍스는 애써 축소했던 순차입금이 2021년 5조원대로 재차 늘었고 부채비율 역시 111.8%로 올랐다.
하지만 부채비율 상승은 잠시에 그쳤다. 영업현금이 플러스 전환한 2022년부터 다시 차입금 감축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GS칼텍스가 2022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상환한 빚은 리스부채를 포함해 2조1500억원에 이른다. 올해는 차환분을 제외하고도 1분기에만 5700억원을 더 갚았다. 올 3월 말 기준 연결 부채비율은 69.8%로 떨어진 상태다. 최우진 전무도 전임 CFO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자본 활용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풀이할 수 있다.
◇연간 설비투자 5000억 내외 통제…유동성 관리 집중 다른 정유사들과 비교할 경우 GS칼텍스의 보수적 재무전략은 더 뚜렷해진다. 에쓰오일을 보면 작년을 기점으로 부쩍 차입을 확대하는 움직임이다. 석유화학복합시설(RUC/ODC) 2단계 투자인 샤힌(Shaheen) 프로젝트에 9조원 넘는 돈을 쏟아붓기로 했기 때문이다. 작년까지 약 4조3000억원을 집행했으며 올해도 3조5000억원을 추가로 지출한다. 연결 부채비율은 178.9%를 나타내고 있다.
또 HD현대오일뱅크의 부채비율은 3월 말 연결 기준으로 244.8%를 기록했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4조7000억원 규모의 자본적지출(CAPEX)를 감행한 데다, SK네트웍스 주유소 사업권을 인수해 리스부채가 늘어난 것도 차입 증가에 한 몫 했다. 최근 수년간 잉여현금흐름이 자주 적자를 보이면서 차입으로 모자란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지난해엔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하기도 하는 등 조달창구를 다양하게 활용 중이다. 올 3월 말 순자산 중에 3990억원을 신종자본증권이 차지했다.
반면 GS칼텍스는 최근 CAPEX를 연 5000억원 안팎으로 제어하면서 유동성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는 순이익이 1090억원에 그쳐 2023년(1조1527억원)의 10분의 1로 줄었는데도 잉여현금(배당금 지급 후 기준)은 오히려 약 8000억원으로 3000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유가가 떨어져 운전자본 잔액이 줄면서 1조원 이상의 운전자본을 회수한 덕분이다. 2023년 1조원을 넘겼던 배당규모도 작년엔 절반 수준으로 줄였다.
일각에선 GS칼텍스가 신사업 확대를 위해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고 바라본다. 허태수 GS 회장의 취임 이후 그룹차원에서 미래사업 발굴을 매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우진 전무가 미래전략부문장 출신인 것도 이런 해석에 힘을 싣고 있다. 추후 재무적 흐름 역시 신사업 투자에 달렸다는 평이다.
재계 관계자는 “GS가 최근 신사업을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불러온 것은 모두가 아는 얘기"라며 "최근 자산 시장은 거품이 많이 빠지면서 좋은 매물을 내놔야 팔리는 분위기라 GS칼텍스처럼 부채를 줄이는 작업을 계속해온 기업이 투자할 여력은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