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를 흡수합병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을 모색했다. AA+에 달하던 높은 신용등급이 코로나를 거치면서 AA0로 낮아진 상태로 추가 하향 압력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만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에도 사업자회사들의 실적 부진이 지속되면서 등급 하향 트리거를 줄줄이 터치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 이후 5년 만에 하향 가능성…금리도 'AA-' 수준
22일 신용평가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나이스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상반기 신용등급 정기평가에서 SK이노베이션의 등급을 AA0(안정적)로 유지했다. 지난 2020~2021년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AA+에서 AA0로 1노치(notch) 낮아진 이후 같은 등급과 아웃룩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SK이노베이션은 AA0로 낮아진 지 5년 만에 또다시 등급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 2차전지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 SK온의 실적 악화가 지속되면서 중간지주회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재무부담이 전이된 탓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SK E&S와 흡수합병을 단행하면서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지만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SK이노베이션의 등급하향 검토요인으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순차입금 5배 초과’를 제시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지표에서 지난해 말 11.2배로 트리거를 터치한 뒤 올 상반기 말에는 15.7배로 급격히 치솟았다. 올 상반기 연결기준 EBITDA가 1조1100억원대에 그치면서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30% 넘게 줄었고, 순차입금은 올해 들어 31조원에서 35조원으로 불어나면서다.
한국신용평가는 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를 7배 초과, 한국기업평가는 4배 초과로 제시하고 있어 이들 신용평가사 기준으로도 하향 트리거를 충족하고 있다. 한기평은 추가로 ‘영업자산 대비 EBITDA 8% 미만’의 지표도 두고 있는데 2023년(7.1%), 2024년(3.6%)에 이어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도 3.1%로 3년째 트리거를 터치하고 있다.
회사채 시장에서도 등급 강등 시나리오를 반영 중이다. 이달 초 6000억원 규모 공모채 발행을 마친 SK이노베이션은 기관 수요예측에서 1조1000억원의 대규모 투자수요를 모았지만 금리 수준은 모든 만기에서 개별민평금리 보다 8bp(1bp=0.01%포인트) 높게 책정됐다. 최종 발행금리는 △2년물 2.84% △3년물 2.96% △5년물 3.16%로 SK이노베이션보다 1notch 낮은 AA-등급의 민평평균금리보다 높았다. 회사채 시장에선 이미 AA- 수준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9.5조 규모 자본확충 추진 불구 "영업현금창출력 제고요"
SK이노베이션이 SK E&S 흡수합병 이후에도 등급 하향 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것은 사업자회사의 실적 부진이 2차전지(SK온)를 넘어 석유화학(SK지오센트릭), 정유(SK에너지) 등으로 번지고 있어서다. 2차전지는 글로벌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 석유화학은 중국발 공급과잉, 정유는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이후 글로벌 제조업 경기 위축에 따른 유가·정제마진 하락 등 각각 불리한 산업환경이 펼쳐진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4622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정유 4300억원 △석유화학 2329억원 △배터리 3657억원 등 대규모 적자를 나타냈다. 유일한 캐시카우로 남은 SK엔무브(윤활유)가 2560억원, 흡수합병된 SK E&S가 3081억원의 흑자를 각각 기록했지만 나머지 사업자회사들의 적자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자본 확충을 통해 재무 부담을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달 7000억원 규모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한 데 이어 주가수익스와프(PRS) 계약을 통해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한 상태다. 사업자회사인 SK온도 2조원, SKIET(SK아이이테크놀로지)은 3000억원 규모로 지난달 유상증자를 마쳤다. 이와 함께 연내 3조원 규모의 추가 자본 확충에 나서고 약 1조5000억원 규모 비핵심자산 매각도 단행할 예정이다.
다만 이 같은 재무적 노력만으로는 하향 트리거를 해소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궁극적으로는 사업자회사들의 EBITDA 회복 여부가 신용등급 유지의 관건이 될 전망이다. 최주욱 한국기업평가 실장은 “다각적인 재무개선 노력이 재무안정성을 제어하는 데 일조할 것”이라면서도 “신용도 방어에 충분할 정도의 재무개선 효과를 위해서는 영업현금창출력 제고가 수반돼야 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