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SK그룹은 비반도체 계열사들의 현금흐름이 전반적으로 약해진 모습을 보였다. 이익 감소와 운전자본 부담이 겹친 탓이다. 전체 현금유입은 급증했지만, 반도체 독주와 나머지 계열사의 부진이 더 뚜렷해졌다.
다만 손익과 현금이 따로 움직인 케이스도 있었다. SK이노베이션, 자회사 SK온의 경우 작년 역대급 순손실에도 불구 현금흐름은 지켜냈다. 장부상 손실이 큰 만큼 실제 현금 유출론 이어지지 않은 덕이다.
◇SK이노·SK온, 대규모 손상차손에도 현금흐름 개선 2025년 말 SK그룹의 전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59조4719억원으로 집계됐다. SK 연결과 SK하이닉스 연결 현금흐름을 단순합산한 수치다. 2024년 37조9062억원과 비교해 56.9% 늘었는데 증가분 대부분은 SK하이닉스에서 나왔다.
SK하이닉스를 제외할 경우 영업현금이 2024년 8조1103억원에서 지난해 6조988억원으로 24.8% 줄었다. 그룹의 현금창출력이 반도체 한 축에 크게 의존하는 동시에, 비반도체 부문은 고전하고 있다는 뜻이다.
먼저 SK하이닉스를 보면 2025년 연결 영업현금이 53조3731억원으로 전년 29조7959억원 대비 79.1% 급증했다. 업황이 침체했던 2023년과 비교하면 12배 넘게 불어났다.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61조원대로 전년보다 70% 가까이 확대됐지만 운전자본 부담이 줄어든 덕분도 있다. 2024년 5조6000억원에 달했던 운전자본투자가 2조8800억원에 그치면서 영업에서 벌어들인 현금이 거의 그대로 유입됐다.
반면 비반도체 계열사들을 보면 이익과 현금흐름이 엇갈리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눈에 띄는 곳은 SK이노베이션과 자회사 SK온이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5조원대 대규모 순손실을 냈지만 영업현금은 2조2831억원으로 전년(2조2325억원)보다 소폭 늘었다. 순손실과 현금 유입 사이에 7조원 넘는 격차가 벌어졌다.
이 차이의 원인은 순손실의 원인이었던 손상차손이 비현금성 비용이라는 데 있다. 장부상 자산가치를 깎아 비용으로 반영한 것일 뿐 현금이 빠져나가진 않았다. SK온에서도 비슷한 괴리가 더 크게 나타났다.
작년 SK온의 당기순손실은 5조3600억원을 넘었는데 영업현금은 8687억원 플러스(+)로 돌아섰다. SK이노베이션 연결에 반영된 유형자산손상차손 가운데 약 96%인 4조7280억원이 SK온 몫이었던 데다, 분사 이후 EBITDA가 첫 연간 흑자를 냈기 때문이다. 매출채권 감소 등에 따른 2600억원의 운전자본 유입도 한몫했다. 두 회사 모두 역대 최대 순손실을 내긴 했으나 현금흐름은 방어한 셈이다.
◇운전자본이 가른 명암…SK에너지, EBITDA 흑자에도 현금유출 운전자본이 현금흐름의 방향을 뒤집은 사례도 있었다. SK에너지(SK이노베이션 연결에 포함)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영업현금은 전년 7513억원에서 -3869억원으로 적자 전환했고, EBITDA는 5052억원에서 2923억원으로 42.1% 줄었다. 실적 둔화 자체도 부담이었지만, 적자 전환의 가장 큰 이유는 운전자본에서 나왔다.
SK에너지의 운전자본은 전년 6291억원 유입에서 지난해 5498억원 유출로 방향이 바뀌었다. 1조1789억원 규모가 늘어난 셈이다. 매출채권에서는 5782억원이 유입됐지만, 매입채무가 8745억원 줄어들면서 현금 지급 부담이 더 크게 나타났다.
SKC는 현금창출력과 운전자본이 동시에 흔들린 곳이다. 지난해 연결 영업현금은 -5676억원을 나타냈다. 2022년 -1472억원을 기록한 이후 4년 연속 마이너스가 이어지고 있으며 작년엔 마이너스 폭이 더 확대됐다.
원인을 살피면 EBITDA가 -1183억원으로 2023년부터 적자가 계속되는 중인데, 운전자본 역시 2024년 837억원 유입에서 2025년 2237억원 유출로 전환됐다. 본업에서 현금이 잘 들어오지 않는 상태에서 운전자본까지 빠져나가는 이중 부담 구조다.
마찬가지로 SK텔레콤도 본업 부진에 운전자본 부담이 겹쳤다. 지난해 영업현금은 3조9238억원으로 전년 5조873억원 대비 22.9% 감소했다. 2020년 이후 5조원 안팎을 쭉 유지했는데 4조원 아래로 떨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당기순이익도 1조3871억원에서 3751억원으로 73% 급감했다.
작년 4월 발생한 유심 정보 유출사고 여파로 매출 감소에 유심 무상교체 비용, 대리점 보상, 과징금 등 일회성 현금 지출이 더해졌다. 감가상각비 등 비현금 비용 덕분에 이익이 흔들려도 현금은 버텨주던 통신사 특유의 방어막이 지난해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배경이다. 운전자본 유출도 1088억원에서 1442억원으로 증가했다.
반면 SK네트웍스의 경우 운전자본이 완충 역할을 했다. 지난해 연결 영업현금이 2223억원으로 전년(2764억원) 대비 19.6% 감소했다. 이 기간 EBITDA가 6655억원에서 2467억원으로 62.9% 급감한 것을 감안하면 현금 감소 폭이 의외로 크지 않았다. 운전자본이 전년 3691억원 유출에서 354억원 유입으로 전환된 덕이다.
다만 이는 사업 매각에 따른 일시적 효과로 읽힌다. 업계 관계자는 “SK렌터카 매각, SK매직 주방가전사업 영업양도 등으로 사업규모 자체가 줄어든 게, 운전자본 유입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며 “본질적인 체력 개선과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