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SK그룹 주요 계열사들은 잉여현금흐름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는 추세를 보였다. 슈퍼사이클을 누리는 SK하이닉스 덕분에 전체 잉여현금 규모가 대폭 급등했고, 나머지만 따로 봐도 현금유출 폭이 적잖이 감소했다.
다만 비반도체 부문의 잉여현금 개선은 수익성 회복보다 투자 긴축의 성격이 짙었다. SK이노베이션과 SK온은 대규모 투자 축소에 힘입어 잉여현금 적자 폭을 줄였고 SKC는 투자를 줄이고도 소폭 개선에 그쳤다.
◇'투자 긴축'으로 5조 아낀 SK이노 지난해 SK그룹의 전체 잉여현금흐름(배당 지급 후)은 17조5862억원을 나타냈다. 지주사 SK의 연결 실적과 SK하이닉스의 연결 실적을 합산한 수치로, 1년 만에 6.6배가 급증했다. 2022~2023년 15조원대 순유출이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반등이다.
이 숫자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봐도 잉여현금은 개선된 흐름을 보였다. 지난해 마이너스(-) 5조5264억원을 기록했는데, 2024년 -9조6321억원에서 적자규모가 4조원 넘게 개선됐다.
하지만 적자가 줄어든 이유를 뜯어보면 유동성 유입보다는 투자를 줄인 영향이 더 컸다. 지주사 SK의 연결 CAPEX(유·무형 자산취득) 규모는 2023년 19조4565억원으로 정점을 찍었다가 2024년 15조9275억원, 2025년 10조809억원으로 2년 사이 48.2% 급감했다. 영업현금 유입 자체는 6조원 수준으로 25% 줄었지만 투자 축소가 일부를 방어한 그림이다.
대표적으로 SK온은 1년 새 잉여현금 적자가 9조4949억원에서 2조7831억원으로 감소했다. 다만 개선분의 대부분인 5조8000억원 정도는 CAPEX가 위축된 효과다. 미국·유럽·헝가리 등 해외 공장 건설이 주요 투자 구간을 지나갔고, 포드와의 합작법인 블루오벌SK 구조 재편으로 북미 투자 부담도 낮아졌다.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의 잉여현금 적자 축소는 SK온보다 더 CAPEX 기여가 컸다. 지난해 SK이노베이션은 영업현금이 사실상 2조2000억원대에서 제자리걸음했는데, 배당금 지급액마저 3137억원에서 6815억원으로 두 배 이상 늘면서 현금유출 부담을 키웠다. 2024년 SK E&S 합병에 따른 배당 확대 탓이다.
하지만 CAPEX가 10조2102억원에서 5조6506억원으로 대폭 줄어들면서 잉여현금 유출 규모(-4조490억원)전년 대비 절반 수준에 그쳤다. 2026년 CAPEX 계획도 3조5000억원 수준이어서 당분간 투자 긴축 기조는 이어질 전망이다.
SKC는 투자 축소의 효과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지난해 CAPEX는 2893억원으로 전년(6772억원) 대비 57.3% 줄였고 배당금 지급도 88억원에 불과했다. 하지만 잉여현금 적자폭은 -8796억원에서 -8658억원으로 138억원 개선되는 데 그쳤다. 이 기간 영업현금 마이너스 폭이 3700억원 가까이 늘면서 투자로 아낀 현금을 대부분 삼켰기 때문이다. 결국 현금흐름 개선을 위해선 본업의 현금창출력 회복이 관건으로 보인다.
◇SK에너지, CAPEX 줄여도 '역부족' 반면 SK이노베이션 자회사인 SK에너지, 지주사 SK(별도) 등은 CAPEX가 낮은 수준인데도 잉여현금이 마이너스로 돌아선 계열사다. 공통점은 운전자본 유출이 영업현금을 잠식했다는 데 있다.
SK에너지의 잉여현금흐름은 2024년 4564억원에서 2025년 -6641억원으로 급감했다. 이 기간 CAPEX가 2949억원에서 2772억원으로 소폭 줄어든 데다 배당은 5년째 없었지만, 영업현금흐름이 마이너스 전환한 타격을 상쇄하긴 역부족이었다. 국제 정유마진 하락이 현금창출력을 약화시켰고 매입채무가 8700억원 넘게 줄어 운전자본 부담을 보탰다.
SK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해 잉여현금이 -5896억원으로 전년(3570억원) 대비 적자로 돌아섰다. 지주사 특성상 CAPEX(1107억원)는 유지보수 수준이었으나 배당수익으로 유입되는 현금이 줄어든 영향을 피하지 못했다.
SK텔레콤은 SK그룹 주요 계열사 가운데 유일하게 2020년 이후 6년 연속 잉여현금 흑자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2025년에는 플러스 규모가 크게 줄었다. 2024년 1조7238억원이었는데 1년 만에 9722억원으로 43.6% 감소했다.
CAPEX(2조3233억원)와 배당(6284억원)을 모두 줄였는데도 잉여현금이 축소된 것은 유심정보 유출 사태 여파로 영업현금이 1조1700억원 가까이 위축됐기 때문이다. 다만 감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견고한 현금창출력 덕분에 잉여현금 플러스 기조를 지켜낼 수 있었다. 또 유심사태는 일회성이고 안정적 가입자 기반이 훼손되진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단위 잉여현금을 다시 회복할 수 있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