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KCC그룹은 1958년 설립한 금강스레트공업을 모태로 하고 있다. 현대그룹을 일군 고 정주영 창업주의 막냇동생 고 정상영 명예회장(사진)이 22세 때 설립한 회사다. 건자재 사업을 중심으로 회사의 기틀을 세웠고 1965년 건설업, 1974년 도료업 등에 진출하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한 금강고려화학이 2005년 사명을 KCC로 변경하며 지금의 재계순위 39위 KCC그룹으로 성장했다.
1974년 건축용 도료제조업체인 고려화학을 세우며 도료, 실리콘 등 유기화학부문 사업을 시작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건설)을 설립했다.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건축·자동차·선박도료)와 유리(자동차·일반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수입품을 대체했고 1987년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 2003년 실리콘원료(모노머) 등을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했다.
정 명예회장은 1936년 강원도 통천군에서 출생했다. 용산고와 동국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1958년 KCC를 창업한 이후 범현대가와 독자노선을 걸으며 60여년을 경영 일선에서 활약했다.
슬하에 장남 정몽진 회장, 차남 정몽익 회장, 삼남 정몽열 회장 등 3형제를 뒀으며 정 명예회장은 2세 승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줄이기 위해 일찍부터 이들 3형제에게 사업을 분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몽진 회장은 KCC를, 정몽익 회장은 KCC글라스를, 정몽열 회장은 KCC건설을 각각 이끌고 있다.
이 문서는 KCC그룹의 사업확대와 성장, 오너 2세 경영진의 사업 분담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 계열분리 가능성과 이에 필요한 과제 등을 조망한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맏형인 정주영 창업주와 빗대어 '리틀 정주영'이라 불렸다. 형제 중 말투, 성향, 소탈함 등에서 정 창업주와 가장 닮았고 스스로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해 지금의 KCC그룹을 일궜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21살 나이 차의 큰형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따르며 스승이자 멘토로 삼았다.
정주영 창업주는 군 복무를 마친 정상영 명예회장에게 유학을 권했으나 정 명예회장은 해당 자금을 밑천 삼아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1958년 금강스레트공업을 설립해 일찌감치 독립에 성공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1970년 현대자동차 부사장이라는 이력을 한줄 남겼으나 무보수로 일하며 위기에 빠졌던 회사를 잠시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슬레이트를 비롯한 각종 건축자재를 제조·판매한 금강스레트공업은 당시 전후 재건과 경제개발 흐름에 따라 급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 실제 1969년 영등포공장과 부산공장을 통합·확충한 수원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1965년 건설사업부, 1986년 유리사업부 등을 신설해 향후 건자재·건설·글라스로 이어지는 3대 사업 축을 구축했다.
현 종합소재 기업 KCC는 크게 두갈래로 나뉘어 성장했다. 그룹의 모태인 금강스레트공업이 사업 다각화의 역할을 맡았고 또다른 한축은 1974년 설립된 건축용 도료 제조업체 고려화학이 맡았다. 금강스레트공업은 고려화학 설립 2년 뒤인 1976년 사명을 금강으로 변경했다.
금강은 한국전쟁 이후 국가 재건에 필요한 건축자재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했다. 창호, 석고보드, 무기단열재, 천장재, 바닥재 등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며 종합건축자재회사로 자리 잡았다. 기존 건자재 외에도 도료, 유리, 건설 등 건자재에서 파생한 산업으로 뻗어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맡았다.
고려화학은 금강의 사업 확장 과정에서 도료업에 집중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다. 건축용 도료를 시작으로 자동차용, 선박용, 공업용 등으로 그 범위를 확장했고 1992년에는 첫 해외 법인인 싱가포르법인을 설립해 글로벌 현지에도 진출했다. 도료사업이 금강그룹의 중심에 서며 고려화학은 이후에도 말레이시아, 중국 등에도 현지법인을 설립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이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이 됐으며 이 회사가 5년 뒤 사명을 KCC로 바꾸며 현재의 KCC가 됐다.
스위첸이라는 아파트 브랜드로 유명한 KCC건설은 금강스레트공업의 건설사업부로 시작했다. 1965년 건설사업부를 출범한 금강스레트공업은 토목·건축공사업(1968년), 포장공사업(1970년), 일반해외공사건설업(1976년) 등 사업에 필요한 면허를 취득하며 기틀을 다졌다. 1986년부터는 3년 연속 우수시공업체로 선정되며 시공능력을 인정받았다.
금강은 도료업에 집중하기 위해 고려화학을 설립했던 것과 같이 건설업에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1989년 별도의 전문법인을 출범했다. 1989년 설립된 금강종합건설로 이 회사는 후에 2005년 사명을 KCC건설로 변경한다.
1970년대 인프라 시설 건축이나 철도·지하철 토목 분야에 집중하던 금강종합건설은 자체적인 아파트 브랜딩을 강화하며 주택분야에도 힘을 쏟고 있다. 주상복합 오피스텔 외에도 스위첸이라는 자체적인 아파트 브랜드를 보유 중이다.
금강의 유리사업은 앞선 도료, 건설업 진출에 비교적 늦었다. 1986년 금강은 사업목적에 유리 제조·가공·판매업을 추가하고 프랑스 생고뱅그룹으로부터 판유리 제조기술을 도입해 유리산업에 진출했다. 당초 1988년 첫 제품 생산을 목표로 했으나 회사는 1987년 자동차 안전유리공장, 1988년 판유리공장 등을 각각 준공해 계획보다 속도를 냈다.
건자재 시장의 높은 점유율을 바탕으로 금강은 빠르게 유리사업 영업력을 확대했고 기존에 시장을 지배하던 한국유리공업(현 LX글라스)과 양강 체제를 이뤘다. 한국유리공업 50 대 금강 40으로 이어지던 점유율 싸움은 중국산 저가 제품 침투에도 시장지배력을 지킨 금강이 앞서기 시작하며 2003년 처음으로 한국유리공업을 제치고 점유율 1위에 올랐다.
금강은 고려화학과 통합법인을 출범한 뒤인 2000년 자동차용 안전유리 사업을 별도의 법인인 코리아오토글라스(KAC)로 분할했다. 이후 KCC는 2020년에 유리·바닥재·인테리어 사업부문을 분할해 KCC글라스를 설립했고 KCC글라스가 KAC를 합병하며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정상영 명예회장은 60여년간 경영 현장을 지킨 기업인으로 평가받는다. 건자재부터 도료, 유리, 건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며 2000년 현 KCC그룹을 일군 뒤부터는 정 명예회장은 아들 3형제에게 하나둘 사업을 맡기며 경영권 분쟁 없이 사업을 이양했다. 그 배경에는 2000년대 현대그룹에서 일어난 왕자의 난이 반면교사로 꼽힌다.
정주영 창업주의 차남이었던 정몽구 회장은 형 정몽필 전 사장이 사고로 작고한 뒤 집안의 장남이 된다. 하지만 정주영 창업주는 정몽구 회장과 5남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을 두고 후계자를 고심했다. 1997년 정몽헌 회장이 공동회장으로 승격되며 두 사람간 패권 다툼이 촉발됐다.
2000년 정몽구 회장이 이익치 현대차증권 회장 등 정몽헌 회장의 측근을 한직에 기습 전보하며 분쟁이 시작됐다. 정몽헌 회장은 정주영 창업주를 만난 해당 전보조치를 없던 일로 하고 '정몽헌 회장 체제'를 꾸렸다. 이후 정몽구 회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을 받아 현대기아자동차그룹으로 독립했다.
또 다른 분쟁의 축에는 현대엘리베이터가 있다. 이 분쟁에는 정상영 명예회장이 직접 뛰어들었다. 2003년 정몽헌 회장 사후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취임하자 정상영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를 되찾아오겠다며 경영권 분쟁을 제기했다.
당시 정 명예회장은 "현대그룹 경영권은 정씨 일가의 것"이라 밝히며 사모펀드와 뮤추얼펀드 등을 이용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대거 매입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가 KCC의 주식 대량 보유·변동 보고 의무(5% 규정) 위반을 지적하며 지분 처분을 명령했고 이듬해 주주총회에서 현 회장 측이 이기며 경영권 분쟁이 종료됐다.
2000년대 초 현대그룹에서 일어난 오너일가간 경영권 분쟁을 지켜본 정상영 명예회장은 아들 3형제가 맡을 사업을 일찌감치 나눠주기로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남인 정몽진 회장이 그룹 본체이자 종합소재 사업을 영위하는 KCC를, 차남 정몽익 회장이 유리사업의 KCC글라스를, 정몽열 회장은 KCC건설을 각각 맡아 독자적인 사업 의사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2000년 금강과 고려화학의 통합법인 금강고려화학을 출범한 정상영 명예회장은 KCC의 지휘봉을 장남인 정몽진 부회장에게 맡겼다. 정 부회장은 금강고려화학을 맡으며 회장으로 승진해 3형제 중 가장 먼저 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부친이 건자재부터 도료, 건설에 이르기까지 산업 밸류체인을 구축한 가운데 정몽진 회장은 미래 신사업으로 실리콘을 선택했다. 실리콘의 기초원료인 모노머 제조 기술을 국산화에 나서며 2003년 전주3공장을 구축·가동했다. 투입 자금은 총 1280억원 규모였으며 초기 생산능력은 연산 2만5000톤 수준이었다. 다만 관련 매출 자체가 아직 크지 않아 해당 사업은 별도 부문이 아닌 기존 도료 사업부문으로 분류됐다.
KCC는 이후에도 지속해서 생산능력 확대에 투자했다. 2007년 2800억원을 들여 충남 서산에 연간 5만톤 규모의 모노머 공장을 완공한 데 이어 태양광 핵심소재인 폴리실리콘 시장에 진출해 추가로 3200억원을 투입했다. 2011년에는 영국 유기실리콘 생산업체 바실돈을 346억원에 인수해 글로벌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20년 가까이 실리콘 사업에 공들인 KCC는 미국 모멘티브 인수로 그 마침표를 찍었다. 모멘티브는 글로벌 실리콘 시장에서 미국 다우듀폰, 독일 바커와 함께 3대 사업자로 평가받던 곳으로 KCC는 2019년 재무적투자자(FI)와 함께 30억달러(약 3조5000억원)를 들여 모멘티브를 인수했다.
KCC는 곧바로 실리콘 사업의 수직계열화 작업에 돌입하며 자체 보유하던 실리콘 사업부문을 KCC실리콘으로 분할했다. KCC실리콘과 KCC바실돈을 모멘티브에 매각해 모멘티브 중심의 운영체제를 꾸렸다.
KCC의 모멘티브 인수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모멘티브 인수 전까지 연간 3000억원 내외 수준이던 실리콘 부문 매출은 인수 직후인 2020년 2조7000억원 규모로 급증했고 현재는 연 3조원 이상의 매출을 창출하고 있다. KCC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50%를 웃돌고 있다.
정상영 명예회장의 차남 정몽익 회장도 2000년대 중반 자신의 독자적인 사업체를 꾸려갔다. KCC가 자동차용 유리 사업 확대를 목표로 설립한 KAC가 그 회사로 정 회장은 KAC 출범 5년 만에 회사 지분을 매입하며 유리 부문을 자신의 사업으로 가져갔다.
설립 당시 코리아오토글라스 지분은 KCC가 60%, 아사히글라스가 40%를 각각 소유했다. KCC 총괄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정몽익 회장은 2003년 KCC로부터 KAC 지분 20%를 인수하며 주요 주주로 올라섰다. 이후 형인 정몽진 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한 2006년 정몽익 회장도 사장으로 승진했다. 이 시기 정몽익 회장은 KAC의 사내이사로 진입한다.
KAC를 통해 유리부문에서 독자 사업을 운영하던 정몽익 회장은 KCC 본사에서 사장직을 유지하면서 KAC 내에서는 별도로 회장 직함을 달기도 했다. 2015년 KAC가 상장을 추진하며 해당 사실이 외부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이후 KCC에서 유리·바닥재·인테리어 사업부문이 분할한 KCC글라스를 맡으며 공식적인 그룹 회장직에 올랐다.
KCC글라스는 정몽익 회장이 이끄는 별도 회사로 분할한 뒤 KAC를 흡수합병했다. KAC는 정 회장이 최대주주(25%)이고 KCC글라스가 2대주주(19.9%)였던 회사로 KCC글라스의 KAC 합병으로 정몽익 회장은 형인 정몽진 회장을 제치고 KCC글라스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정몽익 회장의 지배력 확대를 위한 작업이었지만 KCC글라스 자체적으로는 KAC 합병으로 자동차용 안전유리 사업을 흡수해 전체 유리사업을 일원화할 수 있었다. 설립 첫해 7000억원 규모였던 KCC글라스 매출은 KAC 흡수합병 후 1조2000억원 규모로 증가했다. 현대·기아차, KG모빌리티, 제너럴모터스(GM) 등 완성차 업체로부터 수주한 물량을 받은 덕분이다.
이외에도 KCC글라스는 인도네시아 현지에 유리공장 구축에 나서며 해외 진출에 성공했다. 동남아시아 현지 생산·판매 역량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3400억원을 투입해 2024년 10월 생산시설을 준공, 상업생산에 돌입했다.
KCC그룹은 2021년 정상영 명예회장의 타계 이후 계열분리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이미 3형제가 사업부문별로 독자경영 체제를 꾸려 윤곽은 드러난 상태다. 다만 완전한 계열분리를 위해선 해결할 과제도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상호 지분 관계다. 계열분리를 위해서는 상장사 기준 상호 지분율을 3% 미만으로 낮춰야 하지만 여전히 오너 경영진간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2025년 3분기 말 기준 KCC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총 35.61%다.
KCC를 이끌고 있는 정몽진 회장이 20% 지분으로 최대주주지만 동생들인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과 정몽열 KCC건설 회장도 각각 3.34%와 6.31%의 적지 않은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향후 정몽익 회장과 정몽열 회장이 계열분리를 통한 독자 경영에 나서려면 보유 중인 KCC 지분을 3% 미만으로 낮춰야 한다는 의미다.
KCC글라스와 KCC 건설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KCC글라스의 특수관계인 지분율은 43.68%이며 정몽익 회장이 지분율 27.15%로 최대주주다. 다만 정몽익 회장 외에도 정몽진 회장(5.78%), 정몽열 회장(2.76%) 등도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KCC글라스가 인적분할 방식을 택해 KCC에서 분할하면서 오너 3세 경영진이 당시 보유하던 KCC 지분 만큼 그대로 KCC글라스 지분을 가졌다. 정몽익 회장이 KAC와 KCC글라스를 합병하며 지배력을 끌어올렸지만 향후 계열분리를 위해선 정몽진·몽열 회장의 적지 않은 지분을 해결해야 한다.
KCC건설에는 정몽열 회장(29.99%) 외에 형제 경영인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으나 KCC(36.03%)가 최대주주로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선 정몽익 회장의 KCC글라스가 가장 먼저 계열분리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하고 있다. 정몽익 회장은 KCC글라스 지분을 장내매수 등의 방식으로 꾸준히 끌어올린 반면 KCC 지분을 정몽진 회장의 자녀들인 정재림 상무와 정명선씨 등에게 증여했다. 두 사람에게 나란히 0.4%씩을 증여해 정몽익 회장의 KCC 지분율은 4.14%에서 3.34%로 떨어졌다.
반대로 정몽진 KCC 회장은 KCC글라스 지분을 정몽익 회장 측에 증여하고 있다. 2024년 11월 정몽진 회장은 정몽익 회장의 배우자 곽지은 씨와 자녀들(정제선·한선·연선씨)에게 KCC글라스 총 지분 2.78%에 해당하는 주식 44만4170주를 증여한 바 있다. 정몽진 회장의 KCC글라스 지분율은 8.56%에서 5.78%로 크게 떨어졌다. 정몽진 회장의 선제적인 증여 이후 약 6개월 만에 정몽익 회장도 조카들에게 지분을 넘긴 것이 된다.
KCC그룹은 당장의 계열분리에는 선을 긋고 있지만 물밑에선 오너가간 지분을 하나둘 정리하며 교통정리를 하는 셈이다. 재계는 향후 정몽진 KCC 회장과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상대방 회사의 보유 지분을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지분 정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
2026년 1월22일 종가 기준 정몽진 회장의 KCC글라스 보유 지분(5.78%) 가치는 247억원 규모다. 정몽익 회장의 KCC 보유 지분(3.34%) 가치는 1315억원이다. 지분 맞교환 방식의 지분정리가 이뤄지려면 KCC글라스의 주가 부양이 필요하다.
KCC그룹 상장 3사는 비교적 꾸준하게 현금배당 기반의 주주환원을 실행하고 있다. KCC는 금강이 고려화학을 흡수합병한 2000년 이후 25년 연속 배당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2026년부터는 중간배당도 도입해 2025년까지 꾸준히 상반기 말 중간배당을 집행 중이다.
2023년 주당 8000원(배당총액 588억원, 중간배당 포함)이던 배당금을 2024년 1만원(배당총액 735억원, 중간배당 포함)으로 올린 KCC는 2025년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발표하며 최소배당금 기반의 주주환원 가이드라인을 공개했다.
최소배당금을 주당 6000원으로 고정하되 이익 성과에 따라 추가배당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추가배당금 여부는 별도 영업이익 1000억원 달성이 기준이며 별도 영업이익이 1000억원을 넘을 경우 별도 영업이익의 10%를 추가 지급할 계획이다. 별도 영업이익이 1000억원 미만이면 최소배당금만 지급한다.[2025년 3분기 말 기준 KCC의 별도 영업이익은 1448억원이다.]
KCC글라스도 KCC를 따라 2021년 출범 첫해부터 중간배당과 결산배당을 병행하고 있다. 배당금은 2021~2022년 주당 2400원(배당총액 383억원, 중간배당 포함)으로 정점을 찍고 이후 수익성 감소에 따라 2024년 주당 1800원(배당총액 287억원, 중간배당 포함)까지 내려간 상태다. 회사는 구체적인 배당 정책을 공개하고 있진 않으나 연 2회 현금배당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KCC건설의 경우 분기 중간배당을 실시하고 있지 않으나 9년 연속 결산배당을 시행하며 그룹의 현금배당 기반 주주환원을 따르고 있다. 배당액은 2020~2021년 2년 연속 주당 180원(배당총액 36억원)으로 최고치를 찍고 2024년 기준 주당 160원(배당총액 32억원)으로 내려온 상태다.
오너 2세를 아래의 3세 중에 KCC그룹 경영에 뛰어든 이는 많지 않다. 정몽진 회장의 장녀인 정재림 KCC 경영전략부문장(상무) 정도만이 그룹 경영에 참여 중인 오너 3세로 꼽을 수 있다. 정 상무는 KCC의 모멘티브 인수 당시에 실무 작업을 맡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정 상무의 2019년 0.24%에 불과하던 KCC 지분을 꾸준히 장내 매수하며 0.62%까지 끌어올렸다. 2025년 7월에는 작은아버지인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으로부터 지분율 0.4%에 해당하는 주식을 받아 지분율이 처음으로 1%를 넘어섰다. 정몽익 회장은 앞서 같은해 5월에도 정 상무의 남동생 정명선씨에게 0.4%에 해당하는 주식을 증여한 바 있다. 정 상무와 정명선씨의 KCC 지분율은 나란히 1.03%다.
이외에 경영에 참여하고 있진 않으나 정몽익 회장의 아들 정한선씨가 KCC글라스 지분 2.05%를 보유하며 주요 특수관계인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KCC건설의 정몽열 회장의 두 자녀 정도선, 정다인씨의 KCC건설 지분율도 1%가 넘는다.
[1] 첫째동생 정인영 HL그룹 창업회장, 둘째동생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 셋째동생 정희영 여사, 넷째동생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다섯째동생 정신영씨는 독일 유학 중 1962년 작고
[2] 정주영 창업주의 별명이 '왕회장'이라 아들들의 경영권 승계 다툼을 놓고 '왕자의 난'이라 명명하기도 한다.
[3] 2016년 현대상선(현 HMM)이 계열분리한 이후 현대엘리베이터는 현대그룹 최대 계열사로 자리잡았다. 현재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 HD현대그룹 등 범현대가와 별도로 운영되고 있다.
[4] 모멘티브 인수 당시 인수 주체였던 KCC컨소시엄의 특수목적법인(SPC) MOM Holding Company를 통해 모멘티브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KCC→MOM Holding Company→모멘티브 및 종속회사로 이어지는 구조다.
[5] KCC글라스가 인적분할 방식으로 신설되며 당시 최대주주는 KCC의 최대주주인 정몽진 회장(18.4%)이었다. 정몽익 회장의 지분율은 8.8%에 불과했다.
[6] KCC 종가 44만3500원, KCC글라스 종가 2만6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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