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이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로 간판을 바꿔 단 지 3년이 지났다. 롯데케미칼은 2023년 3월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지분 53.3%를 2조7000억원에 취득하며 최대주주에 올랐다.
인수 첫해는 공교롭게도 이 회사 실적의 변곡점이기도 했다.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급감했다. 이후 2년간 순자산가치를 훌쩍 웃돈 인수가는 영업권 손상이라는 형태로 절반 이상 장부에서 되돌려졌다. 매출이 늘어도 이익은 사라지는 역설이 이어졌고, 지난해에는 매출까지 꺾였다. 다만 올해 들어 가동률과 수익성이 모두 반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1.6조 영업권, 3년 만에 반토막 롯데케미칼이 지급한 2조7000억원에는 영업권으로 인식한 1조6583억원이 포함돼 있다. 전체 거래금액의 절반 이상이 경영권 프리미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영업권은 이후 3년간 절반 이상 감소했다. 롯데케미칼 연결재무제표 주석(현금창출단위별 영업권·손상차손 공시)을 보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에 배분된 영업권은 2024년 1조2925억원, 지난해 8010억원으로 반토막 났다. 손상차손으로 인식한 금액은 2024년 4703억원, 지난해 4856억원에 달한다. 자산의 장부가치가 그만큼 크게 하락한 것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22년 7294억원에서 인수 원년인 2023년 8090억원, 2024년 9023억원까지 늘었다. 반면 영업이익은 2022년 848억원에서 2023년 118억원으로 급감했고, 2024년에는 644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적자로 전환했다. 2023년에는 생산량 확대에 힘입어 매출은 증가했지만 전기차 업황 부진과 제품 공급 과잉에 따른 판매단가 하락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2024년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소재사업과 무관한 건설부문 매출이 2031억원에서 2243억원으로 증가했고, 소재 제품의 북미 판매처 확대에 힘입어 매출은 늘었지만 영업이익은 적자 구간에 진입했다. 고객사의 재고 조정으로 가동률이 하락하면서 고정비 부담이 커졌고, 해외 자회사의 환율 변동에 따른 재고평가손실까지 겹친 결과다. 주요 제품인 전지박 생산량은 2022년 3만5012톤에서 2023년 3만7834톤으로 늘었다가 2024년 3만1961톤으로 감소해 이러한 실적 흐름을 그대로 보여줬다.
지난해에는 외형과 수익성 모두 하락세로 돌아섰다. 매출액은 6775억원으로 전년 대비 25% 감소했고, 영업손실은 2024년 644억원에서 2025년 1452억원으로 적자 폭이 확대됐다. EBIT(영업이익)/매출액 비율은 2022년 11.6%에서 2023년 1.5%, 2024년 -7.1%, 2025년 -21.4%로 매년 악화됐다. 전지박 생산량도 2024년 3만1961톤에서 2025년 2만2584톤으로 다시 줄면서 매출과 물량, 수익성이 동시에 꺾이는 국면에 접어들었다.
캐즘의 영향은 생산량과 가동률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익산공장 가동률은 2023년 76.9%에서 2024년 64.7%, 2025년 47.4%까지 떨어졌다. 회사의 주력 제품인 전지박은 2차전지 음극집전체에 쓰이는 핵심 소재인 만큼 전방산업인 전기차 시장의 성장 둔화가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금흐름과 재무지표를 보면 회사가 처한 상황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2022년 1374억원이던 EBITDA는 2023년 888억원, 2024년 217억원으로 감소한 데 이어 지난해에는 -52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영업현금흐름에서 자본적지출(CAPEX)을 차감한 잉여현금흐름(FCF)은 2023년 -3284억원, 2024년 -329억원, 2025년 -846억원을 기록했다. 벌어들이는 현금보다 투자와 운영에 필요한 현금 유출이 더 많았던 셈이다.
이는 올 상반기에만 대기업 기준으로는 높은 수준인 5%대 금리로 1200억원을 조달한 배경으로도 꼽힌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는 지난 5월 300억원(표면이율 5.3%), 6월 700억원(5.5%), 이달 200억원(5.8%) 규모의 사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재무건전성은 유지, 올 실적 반등 성공할까 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부채비율은 2021년 30.0%에서 2023년 21.7%, 2025년 23.2%로 최근 3년간 20%대 초중반을 유지했다. 올해 1분기 실적 역시 반등의 실마리를 보여줬다는 평가다. 매출액은 1598억원, 영업손실은 50억원, EBIT/매출액은 -3.1%를 기록했다. 지난해 EBIT/매출액(-21.4%)과 비교하면 수익성이 눈에 띄게 개선됐다.
순이익도 39억원(지배주주 몫 16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익산공장 가동률 역시 2025년 47.4%에서 2026년 1분기 66.6%로 뚜렷하게 반등했다. 단순한 일회성 수치가 아니라 실제 생산 정상화를 동반한 개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회사가 그리고 있는 반등 시나리오는 단순한 외형 확대가 아니라 수익성 중심의 질적 성장이다. 2025년 실적 발표 자료에 따르면 회사는 익산공장을 AI 시장 확대에 대응하기 위해 2027년까지 회로박(배터리용 전지박이 아닌 AI 서버·PCB용 고부가 소재) 생산라인으로 100% 전환할 계획이다.
말레이시아 공장은 ESS·모바일용 등 하이엔드 전지박 중심으로 제품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한다. 하이엔드 전지박 분야에서는 삼성SDI와 스텔란티스의 미국 배터리 합작법인인 스타플러스에너지의 공급사 검증도 통과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일부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롯데케미칼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를 인수한 지 3년이 지난 현재, 비싼 값을 치른 베팅은 아직 기대만큼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다. 다만 올해 1분기 나타난 긍정적인 신호를 감안하면 연말에는 캐즘의 터널을 벗어나 본격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