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투자증권은 6번 이름이 바뀌었다. 1969년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출자해 세운 한보증권으로 출발한 뒤 대보증권·럭키증권·LG증권·LG투자증권·우리투자증권을 거쳐 지금의 이름에 이르렀다. 사명이 바뀐 것이 여섯 번, 대주주가 바뀐 것이 세 번이다.
주인이 바뀐 계기는 매번 달랐다. 1983년에는 럭키금성그룹이 증권업에 진출하려 했고 2004년에는 LG그룹이 카드 사태로 금융업에서 철수해야 했다. 2014년에는 우리금융지주가 공적자금을 갚기 위해 계열사를 내놔야 했다. 회사가 잘못해서 팔린 적은 없다. 늘 대주주 쪽 사정이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계보가 겹친다. 농협은 2014년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기 전에 이미 증권사를 갖고 있었다. 2006년 세종증권을 인수해 NH투자증권이라 이름 붙인 회사다. 이 회사는 1982년 동아그룹의 고려투자금융으로 출발해 동아증권·세종증권을 거쳤고, 농협에 팔리는 과정에서 대통령 형이 연루된 로비 사건의 무대가 됐다. 2014년 말 두 계보가 합쳐지면서 현재의 NH투자증권이 만들어졌다. 법인은 하나지만 뿌리는 둘이다.
이 문서는 1969년부터 2026년까지 NH투자증권의 성장 스토리와 지배구조 변화를 추적한다.
2.1. 1969년 한보증권 : 손해보험사들이 세운 회사펼쳐보기 접기
NH투자증권의 법인 설립일은 1969년 1월 16일이다. 최초 사명은 한보증권주식회사였다. 국내 손해보험사들이 공동출자해 만든 증권사로, 설립과 함께 한국증권거래소 거래원으로 등록했다.
1971년 11월 증권 매매 신용공여 업무를 시작했고, 1975년 7월 생보증권을 흡수합병하면서 상호를 대보증권으로 바꾸고 기업공개를 마쳤다. 손해보험사가 세운 회사가 생명보험 계열 증권사를 합친 셈이다.
3.1. 국제증권과 대보증권의 통합펼쳐보기 접기
럭키금성그룹은 1973년 국제증권주식회사를 세워 증권업에 발을 들였다. 1982년 7월 상호를 럭키증권으로 바꿨다. 이듬해인 1983년 11월 그룹은 대보증권을 인수해 럭키증권과 통합하고 통합 법인의 상호를 럭키증권으로 정했다.
이 통합에서 법적으로 살아남은 것은 대보증권이다. 브랜드는 럭키증권이 이어받았지만 법인은 1969년 한보증권에서 시작한 쪽이 남았다. 이후 벌어질 두 차례 합병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사명은 인수하는 쪽 것을 쓰고 법인은 인수당하는 쪽이 존속하는 구조다.
3.3. LG카드 사태와 금융업 철수펼쳐보기 접기
2002년부터 터진 카드대란이 회사의 운명을 결정했다. LG카드가 유동성 위기에 빠지자 그룹은 계열 금융사를 동원해 지원에 나섰다. LG카드는 LG투자증권 지분 18.2%를 들고 있었다. 지원은 부실만 키웠다.
2003년 11월 LG투자증권은 산업은행과 함께 다중채무 신용불량자의 채무를 공동으로 조정하는 '상록수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카드 사태의 후속 처리였다.
결국 2004년 1월 LG그룹은 LG카드와 LG투자증권 지분을 채권단에 넘겼다. 그룹의 금융업 철수 결정이었다. LG투자신탁운용과 LG선물도 함께 매각 대상이 됐다.
4.1. 2975억원의 인수펼쳐보기 접기
우리금융지주는 2004년 3월 25일 LG증권·한국투자증권·대한투자증권 중 한 곳을 인수하겠다고 공식화했다. 4월 6일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에 인수의향서를 냈다.
5월 7일 입찰제안서 접수에는 우리금융, 미래에셋컨소시엄, 대만 유안타증권 등이 참여했다. 5월 14일 산업은행은 우리금융과 유안타증권을 복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뽑았다. 7월 7일 우리금융이 인수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7월 23일 유안타증권이 인수를 포기해 단독 협상 구도가 됐다.
9월 11일 가격과 경영권 보장 방안에 합의했고 9월 15일 우리금융 이사회가 LG투자증권 주식 2587만7487주 취득을 결의했다. 11월 26일 금융감독위원회가 자회사 편입을 승인했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 LG카드 보유분 18.2%를 추가 매입해 지분율을 30% 이상으로 올리고 향후 우리증권과 합병하라는 것이었다.
2004년 12월 24일 우리금융은 2975억9110만원을 지급하고 주식 취득을 마쳤다. 첫 번째 손바뀜에서 21년이 지난 뒤였다.
4.3. 자기자본 1위 증권사펼쳐보기 접기
우리투자증권은 업계 선두권 자리를 차지했다. 2008년 2분기에는 분기 순이익이 삼성증권을 넘어 업계 1위를 기록했다. 2013년 3월 말 기준 자기자본은 3조4783억원으로 대우증권에 이어 업계 2위였다.
사고도 있었다. 2011년 부산 수영지점 등 두 개 지점에서 지점장이 고객 증권카드를 이용해 여덟 차례에 걸쳐 13억9000만원을 횡령한 사실이 2013년 4월 금융감독원 검사에서 드러났다.
금감원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간 이 회사에서 일곱 건의 금융사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2008년 코스닥 종목 '루보' 미수거래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증권사 책임이 일부 인정됐고, 파워인컴펀드와 LIG건설 기업어음 불완전판매를 둘러싼 소송도 이어졌다.
4.4. 민영화가 부른 세 번째 손바뀜펼쳐보기 접기
2013년 6월 26일 정부는 우리금융 민영화 방안을 확정했다. 은행·지방은행·증권 세 그룹으로 나눠 파는 분리매각이었다. 당시 우리금융이 보유한 지분은 우리투자증권 37.85%, 우리파이낸셜 52.02%, 우리아비바생명 51.58%, 우리자산운용과 우리금융저축은행 각 100%였다.
8월 16일 증권 계열 패키지 매각 공고가 났다. 우리투자증권에 우리아비바생명·우리자산운용·우리금융저축은행을 묶은 구성이었다. 10월 21일 예비입찰에 KB금융지주, NH농협금융지주, 사모펀드 파인스트리트가 참여해 3파전이 됐다. 12월 16일 본입찰을 거쳐 12월 24일 NH농협금융지주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이 과정에서 우리자산운용은 패키지에서 빠져 별도로 키움증권에 넘어갔다.
가격 협상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4년 4월 우리투자증권이 프랑스 프로젝트파이낸싱 투자 관련 소송 1심에서 패소해 500억원 규모의 우발채무가 생겼다. 패소가 확정되면 우리금융이 사후에 손실을 공제해 주는 조건으로 절충이 이뤄졌다.
2014년 4월 11일 주식매매계약이 체결됐다. 우리투자증권·우리아비바생명·우리금융저축은행 3사에 대한 총 인수금액은 1조385억원이었다. 6월 3일 금융위원회가 자회사 편입을 승인하고 6월 27일 편입이 완료됐다.
5.3. NH투자증권에서 NH농협증권으로펼쳐보기 접기
2011년 농협법이 개정돼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할 근거가 마련됐다. 2012년 1월 31일 NH투자증권 이사회는 사명을 NH농협증권으로 바꾸기로 결의하고 공시했다. 사유는 NH농협금융지주 출범이었다. 3월 2일 신경분리로 NH농협금융지주가 출범하면서 증권사는 신설 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고 3월 정기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이 반영돼 상호가 NH농협증권으로 확정됐다.
여기서 흔한 오해를 짚어둘 필요가 있다. NH투자증권이라는 이름을 내려놓은 것은 우리투자증권 인수와 무관하다. 개칭은 2012년 3월, 우리투자증권 매각 공고는 2013년 8월이다. 1년 반의 시차가 있다. 지주사 출범에 맞춘 브랜드 정비였고 그 결과 'NH투자증권'이라는 이름이 비어 있었기에 2년 뒤 통합 법인이 그 이름을 다시 쓸 수 있었다.
8.1. 법인은 하나, 뿌리는 둘펼쳐보기 접기
세 차례의 손바뀜에서 일관된 패턴이 하나 있다. 사명은 사는 쪽 것을 쓰고 법인은 팔리는 쪽이 존속했다. 1983년 럭키금성이 대보증권을 사서 럭키증권이라 이름 붙였을 때, 2005년 우리금융이 LG투자증권을 우리투자증권으로 바꿨을 때, 2014년 농협이 우리투자증권에 NH투자증권 이름을 붙였을 때 모두 그랬다. 그래서 이 회사의 법인 설립일은 57년 동안 1969년 1월 16일로 고정돼 있다.
인수당한 쪽이 소멸한 계보도 둘이다. 1973년 국제증권(럭키증권)과 1954년 대도증권(우리증권), 그리고 1982년 고려투자금융(NH농협증권)이다. 특히 세종증권 계보는 농협이 직접 8년간 키운 회사였는데도 법인이 사라졌다. 농협이 자기가 갖고 있던 증권사를 소멸시키고 새로 산 회사를 살린 것이다. 규모 차이가 그만큼 컸다.
8.3. 남은 과제펼쳐보기 접기
내부통제가 당면 과제다. 역대 최대 실적을 낸 대표가 연임하지 못한 이유가 성과가 아니라 통제 실패였다. 미공개정보 이용 사건은 2026년 9월 현재도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행정제재가 대법원에서 취소된 것은 회사에 유리한 결과지만, 그 사건으로 6년 재임한 대표가 물러났고 2780억원을 지급했으며 발행어음 이후 다음 단계 인가가 늦어졌다는 사실은 남는다.
자기자본 업계 3위라는 위치도 애매하다. 통합 당시 1위였던 자리를 미래에셋대우에 내준 뒤 한국투자증권까지 앞서 나갔다. 2026년 IMA 인가로 자본 확충의 명분은 생겼지만 최대주주가 농협금융지주 한 곳뿐인 구조에서 증자는 결국 지주의 결정에 달려 있다. 세 번의 손바뀜을 거쳐 정착한 회사가 네 번째 주인을 만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자본 조달의 속도는 여전히 주주에게 묶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