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손익계산서는 아티스트에 들어간 돈을 온전히 보여주지 않는다. 전속계약금과 제작 선지급금은 지출 시점에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영업이익 흑자 이면에는 언제든 거액의 영업외비용으로 청구될 수 있는 잠재 리스크가 시한폭탄처럼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더벨은 주요 엔터사의 재무상태표와 주석 등을 통해 손익계산서에 닿지 않은 숨겨진 비용과 재무 리스크를 진단한다.
K팝 산업의 화려한 외형 이면에는 손익계산서가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숨은 비용'이 존재한다.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티스트를 확보하기 위해 지급하는 막대한 전속계약금과 미리 내어주는 선급금은 지출 시점에 바로 비용으로 처리되지 않는다.
전속계약금은 무형자산으로 분류되어 계약 기간에 걸쳐 정액법으로 상각되고 선급금 역시 자산 항목으로 재무상태표에 먼저 쌓인다. 자산으로 묶여 있는 이 돈들이 회수 불능 상태에 빠질 때 비용으로 변해 실적을 덮친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숨은 비용의 회계처리 방식이 기업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이 거대한 잠재 리스크를 가늠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대손충당금 역시 공시 기준이 제각각이다. 표면적인 재무제표만으로는 엔터 기업의 진정한 기업가치를 읽을 수 없다는 의미다.
◇무형자산과 선급금의 '착시'…시한폭탄 안고 뛰는 영업이익
엔터 기업의 재무제표는 일반적인 기업과 구조부터 다르다. 통상 기업의 핵심 자산은 공장과 설비다. 실물이 존재하는 유형자산인 만큼 가동률이나 중고 거래 가격으로 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사업이 어려워지면 설비를 처분해 현금을 회수하는 길도 열려 있다.
반면 엔터 기업의 핵심 자산은 아티스트다. 사람은 자산으로 계상할 수 없다. 대신 아티스트를 확보하고 활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자금이 재무상태표에 간접적인 형태로 남는다.
전속계약을 체결하며 지급하는 계약금과 데뷔 전 선제적 투자비용 등이 대표적이다. 전속계약금은 '무형자산'으로, 활동이 시작되기 전 미리 내어준 제작비와 선지급금은 '선급금'으로 쌓인다.
예를 들어 특정 아티스트와 5년 전속계약을 맺고 50억원을 지급했다면 이 금액은 지출 시점에 전액 영업비용으로 잡히지 않는다. 계약 기간 5년에 걸쳐 매년 무형자산상각비로 반영되며 서서히 장부금액을 덜어내는 식이다.
이렇게 잡히는 무형자산의 규모는 작지 않다. 하이브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무형자산은 1조9867억원으로 유형자산의 23배에 달한다. SM엔터 역시 올해 6월 말 무형자산 규모가 유형자산의 13배인 5861억원에 달한다.
앨범 제작이나 해외 투어를 앞두고 아티스트나 외주 제작사에 지급되는 선급금 역시 정상적으로 수익 정산이 이루어질 때까지 자산으로 묶여 있다. 뭉칫돈이 이미 회사 밖으로 빠져나갔음에도 당장의 영업이익에는 큰 타격을 주지 않는 착시 효과가 발생한다.
문제는 이 자산들이 부실화되는 순간이다. 아티스트가 돌연 활동을 중단하거나 이미지 리스크 및 계약 해지 등이 발생할 경우 상황은 급변한다. 쌓아둔 자산의 회수가능액이 장부금액보다 낮아졌을 때 그 차이가 고스란히 손상차손으로 비용 처리된다.
◇'깜깜이' 공시에 가려진 부실 리스크…엔터 4사 제각각 잣대
맹점은 이처럼 부실화 가능성이 높은 핵심 자산들에 대한 공시 방식이 기업별로 통일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산의 회수 불가능성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인 대손충당금 설정현황은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에 따라 정기보고서에 기재되어야 한다.
하지만 엔터 기업들이 이를 기재하는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같은 공시 서식의 같은 표인데도 담기는 정보량이 몇 배씩 차이 난다. 하이브, SM엔터, JYP엔터, YG엔터 등 주요 기획사 네 곳의 올해 반기보고서만 비교해도 격차가 뚜렷하다.
SM엔터 반기보고서
SM엔터는 매출채권과 미수금은 물론 선급금, 장기선급금, 단기·장기대여금, 미수수익까지 12개 계정의 채권 총액과 충당금을 모두 공개했다. JYP엔터는 매출채권·미수금·미수수익·선급금·보증금 등 6개 계정을 기재했다.
하이브는 오직 매출채권 내역만 단일 항목으로 기재했다. 선급금이나 미수금, 대여금에 충당금을 설정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YG엔터는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에 의거하여 반기보고서 내 본 항목의 기재를 생략합니다"라는 한 문장으로 정보 제공을 건너뛰었다.
YG엔터 반기보고서
네 곳 모두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선급금은 금융자산이 아니어서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상 손실충당금 주석 대상이 아니다. 반기보고서에서 해당 항목을 생략하는 것도 서식상 허용된다.
이미 나간 돈을 보여주는 방식도 갈린다. 아티스트 전속계약금을 어느 계정에 담는지가 회사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전속계약금을 무형자산 내 별도 계정으로 둔 JYP엔터와 달리 하이브는 전속계약 관련 자산을 '기타의무형자산'으로 묶어뒀다.
핵심 자산을 어디까지 공개할지가 전적으로 회사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뜻이다. 당장 영업활동을 통한 이익이 양호해 보이더라도 그 이면에 이미 지급된 자금이 얼마만큼 떼일 위기에 처했는지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결국 외형 성장에 가려진 엔터사들의 진짜 재무 리스크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공시 양식을 대조하는 1차원적 접근을 넘어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각 기업의 장부를 개별적으로 들여다봐야만 실질적인 자금 누수 위험도를 포착할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재계약 주기가 몰리고 아티스트 투자 규모가 단기간에 오르고 있는 국면"이라며 "투자자로서는 대규모 손상차손이 터지고 나서야 뒤늦게 부실을 인지하는 구조적 한계에 놓이기 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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