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양극재 3사의 총차입금이 올 상반기 8조8000억원에 육박했다.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인 현금만으로 투자 지출을 감당하지 못하면서 반년 동안 차입금이 7000억원 넘게 증가한 결과다. 선제적으로 늘린 생산능력이 현금으로 돌아오기까지 차입부담을 견뎌야 하는 상황이다.
회사별 위험은 달랐다. 에코프로비엠은 차입금이 가장 빠르게 늘었고 엘앤에프는 단기 상환 부담과 높은 부채비율이 겹쳤다. 포스코퓨처엠은 차입 규모가 가장 컸지만 현금을 확보해 순차입금을 줄였다.
◇에코프로비엠, 차입 증가에 현금 감소까지 2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엘앤에프·포스코퓨처엠·에코프로비엠의 올 6월 말 합산 총차입금은 8조7648억원으로 집계됐다. 단기차입금과 유동성·비유동성 장기차입금 및 사채, 전환·교환·신주인수권부사채의 장부금액을 합산한 수치다.
지난해 말보다 7028억원(8.7%) 증가했다. 회사별로는 포스코퓨처엠이 4조757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에코프로비엠 2조8901억원, 엘앤에프 1조7990억원 순이었다.
양극재 3사의 차입금 부담이 커진 이유는 전기차 수요 확대를 예상해 생산능력을 늘렸지만 신규 설비의 가동과 판매를 통한 현금 회수가 투자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집행한 투자비가 현금으로 돌아오는 시점이 늦어지면서 부족한 자금을 차입으로 메우는 기간도 길어졌다.
현금및현금성자산을 차감한 3사의 합산 순차입금은 지난해 말 6조8408억원에서 올 6월 말 7조3249억원으로 4841억원 늘었다. 총차입금보다 순차입금 증가 폭이 작았던 것은 포스코퓨처엠이 현금을 쌓은 영향이다. 세 회사 모두 차입을 늘렸지만 실제 상환 부담이 움직인 방향은 달랐다는 의미다.
부담이 가장 빠르게 커진 곳은 에코프로비엠이다.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2조4508억원에서 올 6월 말 2조8901억원으로 4393억원 증가했다. 3사 전체 증가액의 62.5%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현금및현금성자산은 5185억원에서 4671억원으로 514억원 감소했다. 이에 따라 순차입금은 1조9322억원에서 2조4230억원으로 4908억원 늘었다. 차입을 늘리는 동시에 보유 현금도 사용하면서 실질적인 채무 부담이 총차입금보다 빠르게 확대됐다.
차입금 가운데 단기차입금은 2179억원, 장기차입금은 2058억원 증가했다. 나머지 증가분은 사채와 전환사채에서 발생했다. 만기가 단기에만 몰린 것은 아니지만 상반기 영업현금과 잉여현금이 모두 마이너스였던 만큼 자체적으로 차입금을 줄일 여력은 약해졌다.
신규 공장의 가동과 매출 전환이 계획대로 이뤄지면 현재의 차입은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선투자로 볼 수 있다. 반대로 가동률 상승이나 고객사 물량 확보가 늦어지면 매출보다 이자비용이 먼저 반영될 수 있다. 에코프로비엠은 차입금 규모보다 신규 설비에서 발생하는 현금이 순차입금 증가 속도를 따라잡을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포스코퓨처엠은 다른 흐름을 보였다. 총차입금은 3조8670억원에서 4조757억원으로 2087억원 증가했지만 순차입금은 3조5471억원에서 3조4634억원으로 837억원 감소했다. 현금및현금성자산이 같은 기간 3198억원에서 6123억원으로 2924억원 늘어난 덕분이다.
대규모 투자를 앞두고 현금을 확보하면서 단기적인 지급 여력은 개선됐다. 공사비와 설비대금 지급 시점에 급하게 추가 자금을 조달할 위험도 줄었다. 총차입금이 늘었는데도 순차입금이 감소한 건 차입금 증가액보다 현금 증가액이 컸기 때문이다.
다만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구조가 개선된 것은 아니다. 총차입금은 3사 중 가장 많고 건설중인자산에 대한 후속 지출도 남아 있다. 확보한 현금이 투자에 사용되면 순차입금은 다시 늘 수 있다. 현재의 현금 완충력을 유지하면서 신규 설비에서 영업현금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중요해졌다.
◇엘앤에프, 차입 규모보다 만기 구조가 부담 엘앤에프의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1조7443억원에서 올 6월 말 1조7990억원으로 547억원 증가했다. 증가 폭은 3사 중 가장 작았다. 그러나 현금및현금성자산이 3829억원에서 3605억원으로 줄면서 순차입금은 770억원 늘어난 1조4384억원을 기록했다.
절대적인 차입 규모는 가장 작지만 재무구조는 취약했다. 6월 말 연결 부채비율은 372.7%로 에코프로비엠 159.1%, 포스코퓨처엠 103.8%를 크게 웃돌았다. 차입금과 매입채무 등 전체 부채를 뒷받침할 자기자본이 상대적으로 얇다는 의미다.
부채비율이 높은 기업은 손실로 자본이 감소하면 차입금이 그대로여도 지표가 더 악화할 수 있다. 재무비율 악화는 신규 차입과 회사채 발행 과정에서 금리와 한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자금 조달의 선택지도 좁아진다.
만기 구조도 부담이다. 단기차입금과 유동성 장기차입금·사채는 1조3684억원으로 총차입금의 76.1%를 차지했다. 에코프로비엠은 59.5%, 포스코퓨처엠은 16.7%였다. 전체 차입금의 4분의 3 이상을 1년 안에 상환하거나 다시 조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단기성 차입금이 많다고 곧바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차환이 원활하면 만기를 연장할 수 있다. 다만 금리와 신용도, 금융시장의 위험 선호도에 따라 조달 조건이 달라지고 시장 상황이 나빠지면 장기 차입보다 대응할 시간이 짧다.
상반기 이자비용이 611억원에 이르렀다는 점도 부담이다. 영업현금이 회복되지 않으면 투자와 이자를 감당하기 위해 다시 차입하는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 차입금 증가 폭이 작더라도 금융비용이 현금 회복을 늦출 수 있는 셈이다.
엘앤에프에는 차입금 총액을 줄이는 것만큼 만기 구조를 바꾸는 작업이 중요하다. 단기성 차입금을 장기로 전환하면 특정 시점에 집중되는 상환 부담을 분산할 수 있다. 영업현금 개선과 자본 확충이 뒤따라야 부채비율과 금융비용도 함께 낮출 수 있다.
결국 관건은 늘린 설비가 현금을 벌어들이는 시점이다. 에코프로비엠과 포스코퓨처엠은 증설 효과를 실적으로 연결해야 하고, 엘앤에프는 그때까지 단기 만기와 이자 부담을 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