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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풍향계

재계 흔드는 호반, 그룹 '순현금'만 2조 웃돈다

계열사 합산 잉여현금, 5년간 1.9조…MMT 등 단기투자 5700억

고진영 기자  2025-09-09 08:24:52

편집자주

유동성은 기업 재무 전략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다. 유동성 진단 없이 투자·조달·상환 전략을 설명할 수 없다. 재무 전략에 맞춰 현금 유출과 유입을 조절해 유동성을 늘리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THE CFO가 유동성과 현금흐름을 중심으로 기업의 전략을 살펴본다.
호반그룹이 재계에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한진칼에 이어 LS 지분까지 사들이면서 경영권을 위협 중이다. 대한항공과 LS가 지분동맹까지 맺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계가 가볍지 않아 보인다. 전통의 대그룹들을 흔들 수 있는 호반의 힘은 결국 자금력에 있다.

◇외부조달보다 사내유보, 영업현금 꾸준히 축적

호반그룹에서 가장 중요한 계열사는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이다. 작년 말 단기금융상품을 포함한 현금성자산은 호반산업이 별도 기준 5500억원으로 그룹에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론 5200억원을 보유한 대한전선이지만 차입으로 가져온 규모가 많아 현금부자로 보긴 어렵다. 또 호반건설이 4800억원 정도를 들고 있다.

이름 포함해 주요 계열사 13곳의 현금을 단순 합산하면 작년 말 기준 2조2000억원이 넘는다. 중견 건설사라기엔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실탄이 상당한 셈이다. 매년 그룹에서 4000억원 이상의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를 창출하면서 안정적 재무상태를 보이고 있다.


조달엔 소극적인 편이다. 최근 5년간 그룹의 합산 총차입금이 8000억원 안팎을 꽤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2023년 호반건설이 차입을 늘리면서 합산 차입금이 1조원을 잠깐 넘기긴 했으나 불과 1년 만에 다시 7500억원으로 줄었다.

대출뿐 아니라 증자도 하지 않는다. 유일한 상장사 대한전선이 2022년과 지난해 유증을 진행했지만 외부자금의 적극 유치라기 보단 계열 유동성을 활용한 재무개선의 성격이 컸다. 실제로 유증을 통해 대한전선이 확충한 9450억원의 자본 중 호반산업(42%)이 4100억원을 밀어줬다.


돈을 빌려오지도 않고 시장에서 끌어오지도 않는데 현금이 많은 이유는 뭘까. 현금이 들어오는 족족 계속 쌓아둔 덕분이다. 최근 5년간 주요 계열사들의 합산 현금흐름을 추적해보면 영업활동현금흐름의 절반 이상이 잉여현금으로 누적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5년간 잉여현금은 총 1조9000어억원, 연평균 3800억원 수준이다. 2021년 이후 매년 늘어나는 중인데 특히 지난해엔 5000억원에 육박했다. 분양수익이 주춤하면서 호반건설, 호반산업 등 간판 계열사 매출이 꺾이고 있는데도 2024년 잉여현금이 증가한 데는 호반호텔앤리조트 영향이 컸다.

◇존재감 커진 호반호텔앤리조트

애초 호반그룹은 잉여현금 대부분을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이 책임지고 있었다. 2023년의 경우 그룹의 합산 잉여현금이 4000억원이고 그중 호반건설이 2400억원, 호반산업은 2700억원 남짓을 차지했다. 두 회사의 합산 잉여현금이 그룹 전체보다 많았던 이유는 다른 계열사에서 순유출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해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의 잉여현금은 나란히 1000억원대로 줄어든 반면 호반호텔앤리조트는 2145억원으로 뛰었다. 2023년 500억원을 겨우 넘겼는데 1년 만에 4배로 급증한 수치다.

호반호텔앤리조트도 지난해 매출이 감소한 건 마찬가지지만 반대로 영업현금은 급증하면서 현금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과거에 이미 매출채권으로 잡혔던 분양대금이 뒤늦게 들어왔기 때문이다. 분양미수금을 보면 2023년 1341억원이었다가 2024년 5억원으로 줄었요. 무려 1336억원을 회수했다는 뜻이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한진칼 지분매입에도 활발히 나서왔다. 호반그룹이 처음 한진칼 주주로 이름을 올린 것은 2022년이다. 당시엔 호반건설과 호반만 지분매입에 동원됐지만 2023년 호반호텔앤리조트가 팬오션의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면서 계열사 가운데 세 번째로 등장했다. 그 뒤 분할 매수를 계속했기 때문에 현재 호반 측이 가진 지분율은 18.46%까지 올랐다. 이중 호반건설이 11.5%, 호반이 0.15%, 그리고 호반호텔앤리조트가 6.81%를 보유하고 있다.

◇잠재 여력 충분, 남은 카드는

추가 매입 여력도 충분하다. 호반그룹의 저력은 대한전선을 빼곤 차입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계열사 13개 중에서 9곳은 현금이 차입금을 웃돈다. 차입을 제외한 순현금만 따져도 그룹 합산 1조5000억원 수준이다. 마음만 먹으면 빚을 대규모로 당겨쓸 수 있는 데다 기업공개로 자본을 확충할 수도 있다.

게다가 호반의 주요 계열사들은 단기금융상품과 별개로 MMT(특정금전신탁)나 MMW(머니마켓랩) 등을 ‘당기손익-공정가치측정금융자산’에 계상해뒀다. 작년 말 기준 호반건설이 3800억원, 호반산업 1290억원, 호반호텔앤리조트가 590억원 등 5700억원 수준이다.

사실상 바로 동원할 수 있는 유동성인 만큼 현금성자산과 다름없다. 이를 현금성자산으로 추가 분류할 경우 호반그룹의 순현금은 2조원을 넘는다. 자금력의 공격 대상이 된 한진, LS그룹이 견제를 늦추기 어려운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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