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호반의 이름이 자주 들리고 있죠. 한진칼 이후 LS 지분까지 사들이면서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5월엔 LS와 대한항공이 호반을 견제하려고 지분 동맹까지 맺었는데요. 서로를 백기사로 세울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한겁니다
그 뿐이 아니죠. 지난달엔 LS 오너 2세대 전원이 가족회의를 열고 집단 지분 매입에 나섰습니다. 그만큼 호반이 쉽게 볼 수 없는 상대라는 건데요. 대그룹들을 이렇게 흔들 수 있는 호반의 힘은 결국 자금력에 있습니다.
#꾸준한 현금창출, 연간 최소 4000억
호반그룹에서 제일 중요한 계열사는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입니다. 작년 말 현금성자산을 보면 호반산업이 550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요. 다음은 대한전선이긴 한데, 여긴 차입으로 끌어온 현금이 많아서 우선 예외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호반건설은 4800억원 정도 들고 있어요. 2023년만 해도 7800억원대였지만 3000억원 정도를 차입 상환에 썼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적지 않은 규모죠.
13개 계열사들의 별도 기준 현금을 단순 합산해보면 작년 말 기준 단기금융상품까지 2조2000억원이 넘네요. 알부자 소리를 듣는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중견 건설사라기엔 동원할 수 있는 실탄이 엄청많은데요. 이런 유동성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우선 현금창출력부터 봐야겠죠. 2021년 말 그룹 합산 EBITDA(상각 전 영업이익)가 6000억원 수준이었고요 2022년엔 1조1000억원을 넘겨 정점을 찍었습니다. 그 다음해엔 6600억원, 작년엔 4400억원 남짓을 기록했네요. 매년 자체적으로 창출하는 현금이 적어도 4000억원은 넘는다는 이야기죠.
#운신의 폭 넓힌다…차입 줄이고 만기 장기화
외부 조달은 꺼리는 편입니다. 우선 차입구조 측면에선 방향성이 뚜렷합니다. 추세적으로 단기성차입금은 줄어드는 반면 장기성차입금은 늘고 있습니다. 만기를 장기화했다는 건데 당장 급하게 갚아야 할 돈을 줄이고 있다는 뜻이죠. 물론 현금이 부족해서 못 갚는 건 아니고요, 단기상환 부담을 덜어 현금을 비축하고 있는 겁니다.
보통 건설사들은 프로젝트 중심으로 자금 수요에 대응해야 하니까 단기 차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반대죠. 쉽게 말해 운신의 폭을 넓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만기구조와 별개로 전체적인 조달 규모를 봐도 레버리지 활동에 매우 소극적입니다. 최근 5년간 그룹 전체 총차입금이 8000억원 수준을 유지 중이거든요. 2023년 호반건설이 차입을 늘리면서 합산 차입금이 1조원을 잠깐 넘긴 적이 있긴 한데, 불과 1년 만에 바로 줄였죠. 지난해 말 다시 7500억원으로 내려왔습니다. 단순히 대출만 잘 안 하는 게 아니라 증자도 안 합니다. 애초에 상장사가 대한전선 뿐이기도 하고요.
앞서 대한전선이 유상증자를 하긴 했지만 의미가 다릅니다. 유증을 2022년 3월에 한 번, 지난해 3월에 한 번 했는데요. 총 들어온 금액이 9450억원쯤 됩니다. 그런데 이중 호반산업이 넣은 게 4100억원 정도예요. 호반산업이 대한전선 지분을 42% 갖고 있거든요. 대한전선을 2021년 인수했으니까, 호반산업이 유동성을 투입해 재무 개선을 지원하고 있는거죠.
#영업현금 족족 누적, 호반호텔앤리조트 두각
그렇다면 호반은 밖에서 돈을 빌려오지도 않고, 증자도 안 하는데 현금이 왜 많은 걸까요. 현금이 들어오는대로 쓰지 않고 계속 쌓아두기 때문입니다. 최근 5년간 계열사 현금흐름을 보면 영업활동현금흐름의 절반 이상이 잉여현금으로 누적되고 있죠. 추이를 따지면 2021년 잠깐 줄었다가 매년 확대되는 중이고요.
평균 잉여현금은 연간 3800억원 정도, 특히 작년엔 거의 5000억원에 육박했습니다. 건설업황이 썩 좋지도 않은데 현금흐름이 개선된 이유는 호반호텔앤리조트 덕이 큽니다. 원래 호반그룹은 잉여현금 대부분을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이 책임졌거든요. 2023년을 예로 들면 그룹 잉여현금이 4000억원. 그중 호반건설 몫이 대략 2400억원이고 호반산업은 2700억원 정도 됩니다. 두 회사의 합산 잉여현금이 그룹 전체 잉여현금보다 많았는데요. 다른 계열사에서 순유출이 생겼기 때문이죠.
작년 지표를 보면 호반건설과 호반산업은 잉여현금이 나란히 1000억원대로 줄었네요, 대신 호반호텔앤리조트가 2145억원으로 뛰었고요. 2023년 500억원을 겨우 넘겼는데 1년 만에 4배로 급증했습니다. 호반호텔앤리조트는 리솜리조트를 운영하는 회사죠? 주택 분양사업도 하고 있고요. 갑자기 현금흐름이 개선된 이유가 뭡니까?
사실 호반호텔앤리조트도 작년에 매출이 크게 감소한 건 마찬가집니다. 2023년 5000억원대였던 매출이 2000억원대로 급감했고 순이익도 쪼그라들었죠. 그런데 반대로 이 기간 영업현금은 급증합니다. 이유는 간단한데요. 과거에 이미 매출채권으로 잡혔던 분양대금이 뒤늦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분양미수금을 보면 2023년 1341억원이었다가 2024년 5억원으로 줄었거든요. 무려 1336억원을 회수한거죠.
쉽게 말해 외상채권을 회수하면서 그만큼 현금 유입이 늘었습니다. 유동성이 늘어나면서 그룹에서 존재감도 달라졌죠. 사실 이미 2023년부터 호반호텔앤리조트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어요. 호반그룹이 처음 한진칼 주주로 이름을 올린 게 2022년이잖아요. 당시엔 호반건설과 호반만 지분매입에 동원됐죠.
그러다 2023년, 호반호텔앤리조트가 팬오션의 한진칼 지분을 사들이면서 계열사 중에 세 번째로 나섰고요. 이후 계속 분할 매수해서 지분율을 끌어올렸기 때문에 지금 호반 측이 가진 지분율은 18.46%까지 올랐습니다. 이중 호반건설이 11.5%, 호반이 0.15%, 그리고 호반호텔앤리조트가 6.81%를 들고 있죠.
#순현금만 1.5조, 저력 충분
한진이나 LS 측으로선 경계를 안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앞으로도 지분을 더 매입할 여력이 있는데요. 호반그룹이 무서운 건 대한전선을 빼곤 차입이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계열사 13개 중에서 9곳은 차입금보다 현금이 많으니까요. 차입을 제외한 순현금만 따져도 그룹 합산 1조5000억원에 달합니다. 마음만 먹으면 빚을 대규모로 끌어쓸 수 있다는 뜻이죠. 계열사 자금을 동원하고 레버리지를 일으키면 조단위 지출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물론 호반이 한진칼이나 LS의 주가 상승을 기회로 지분을 팔고 나갈 수도 있습니다. 자금력만큼 신중한 성향으로도 유명하잖아요. 대형 M&A 매물이 있을 때마다 후보로 떠올랐지만 인수한 건 사실상 대한전선 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호반그룹이 지금까지 한진칼 지분 매입에 쓴 돈이 거의 8700억원인데요. 경영권에 전혀 염두를 두지 않고 투입할 만한 규모는 아니죠. 그리고 최근 호반건설을 보면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작년 8월 이후론 새 아파트 분양을 안하고 있거든요.
사실 호반은 지금까지 공공택지를 낙찰 받고 개발사업을 하면서 사세를 키운 곳이잖아요.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어렵죠. 그동안 모아둔 실탄을 무기로 다른 한 방을 노릴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얘깁니다. 호반이 아직 저력을 다 내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분명하고요. 준비된 다크호스라는 거죠.
결국 호반그룹이 주택 중심 건설사에서 벗어나 새로운 국면을 그린다는 건데, 다음 선택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수를 두느냐에 파문이 상당할 수도 있겠는데요. 당분간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곳입니다. 더벨도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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