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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반그룹 성장기

이돈섭 기자  2026-01-19 15:51:30

편집자주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다. THECFO가 제공하는 ‘아카이브(Archive)’는 시장에서 벌어진 이슈의 발단과 결말을 기록한다. 기업의 현재를 만든 이정표적 사건은 왜 일어났으며 어떻게 전개됐을까. 사건의 방향성을 흔들어 놓은 주요 이벤트는 뭘까. 기사 한 건이 하나의 조각이라면 아카이브는 조각이 맞춰진 퍼즐이다. 거대 사건을 구성하는 수많은 사실관계를 아카이브가 담았다.

목차

1. 개요

2. 호반건설의 탄생

2.1. 광주시 변두리 지역에서 거둔 성과

2.2. 외환위기를 기회로

2.3. 전국구 건설사로 거듭나기까지

2.4. 그룹사 성장 발판 마련한 M&A

3. 커지는 재계 내 존재감

3.1. 한진칼 지분경쟁, 이종사업 진출 관심

3.2. 자금력 뽐낸 대우건설 인수전 참여

3.3. 대한전선 인수, LS그룹과 잡음

4. 리더의 뚜렷한 경영철학

4.1. 완결성과 안정성 중시, 김상열 회장의 리더십

4.2. 탄탄한 재무구조, 막강한 현금력

4.3. 승계 작업 마무리, 계열분리 가능성에 주목

최초 문서 작성일 : 2026년 1월 19일

1. 개요접기


최근 재계에서 존재감을 확실하게 드러낸 기업 집단 중 하나는 호반건설이다. 40여년 전 전라남도 광주에서 자본금 1억원으로 출범한 호반건설은 리스크 관리에 방점을 찍은 안정적 경영 기조를 유지하면서 아시아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며 그룹 집단의 면모를 갖춰 나갔다. 최근 10년 사이에는 인수 합병을 통한 사업 다각화를 추구하며 산업 전체 지배구조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으로 변모해왔다.

2. 호반건설의 탄생접기


2.1. 광주시 변두리 지역에서 거둔 성과접기


호반그룹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남 보성 출신의 김상열 회장이 1989년 전남 광주시에서 설립한 '호반건설'이 그 시작이었다. 당시 자본금은 1억원이었고 전체 직원은 5명 정도에 불과했다. 당시의 건설업 환경은 대기업 중심으로 과점 구조가 형성돼 있었고 지방 중소 건설사가 전국 단위 기업으로 성장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고 전해진다. 수도권이 아닌 지역에서 출발한 건설사는 정보 접근과 금융 조달, 브랜드 인지도 측면의 구조적인 한계 역시 안고 있었다.

호반건설이 출범한 후 처음 분양한 아파트는 광주시 북구 삼각동 소재 140여 세대 규모의 임대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 부지는 인적이 거의 없는 변두리 지역이었고 주변 개발도 본격화되지 않은 상태였다. 수요자 시선에서 보면 입지 경쟁력이 높다고 여기기 어려운 곳이었다. 실제 분양 초기 이 아파트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고 분양 성적 조차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호반건설이 최초로 시공해 분양한 광주시 북구 삼각동에 위치한 모아호반 아파트 [이미지=사랑방부동산 홈페이지]

하지만 아파트 완공을 앞두고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사레지오고와 전남공고 등 광주시내 중심권에 위치해 있던 주요 학교들의 이전 계획이 확정되면서 이 지역 내 교육 수요 유입이 가시화됐다. 학군 이동은 곧바로 주거 수요 이동으로 이어졌다. 변두리로 평가받던 삼각동 일대는 교육 환경 개선 기대감이 반영되며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호반건설의 첫 분양 사업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 첫 경험은 호반건설의 이후 사업 전략 전반에 중요한 기준점으로 작용했다. 김 회장은 이때 부동산 입지 자체보다도 정책 변화와 인구 이동 수요 구조를 읽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절감했다고 전해진다. 겉으로 화려하지 않더라도 분양 가능성이 검증된 사업지를 선별하는 전략을 호반건설이 일관되게 유지해 온 계기가 됐다는 게 시장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2.2. 외환위기를 기회로접기


아시아 외환위기는 호반건설에게 기회로 작용했다. 외환위기 전후 다수의 기업들이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고 건설사들 역시 연쇄 부도와 구조조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현금 확보를 위해 부동산과 사업지를 헐값에 매각하는 사례도 속출했다. 호반건설은 이 시기 시장에 나온 부동산 자산을 선별적으로 매입했고 이를 활용해 기존 건설 사업을 확대해 나갔다. 임대아파트 브랜드 ‘호반리젠시빌’을 분양해 성공을 거둔 것도 이 때다.

이 시기를 지나면서 확립된 것이 무차입·무어음 경영 원칙이다. 김 회장은 공사비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단 한 장의 어음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세웠다. 외환위기 당시 어음 결제 구조가 무너질 경우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위기에 빠질 수 있는지를 직접 목격한 경험이 반영된 결과였다.

시행과 시공을 동시에 수행하는 구조를 선택한 것도 호반건설의 독특한 전략으로 꼽힌다. 외부 시행사에 의존하지 않고 사업 기획부터 분양, 시공, 자금 회수까지 전 과정을 내부에서 관리하는 구조를 구축했다. 분양 리스크를 스스로 떠안는 대신 사업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할 수 있다. 외부 차입 의존도도 의도적으로 낮췄다.

대형 건설사들이 외형 경쟁과 브랜드 경쟁에 몰두하던 시기 호반은 현금 회수 구조와 리스크 관리를 우선했다. 무리한 수주 경쟁에 뛰어들기보다 하나의 사업을 안정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집중했다. '미분양을 남기지 않는 것이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인식이 내부적으로 자리 잡았다.

2.3. 전국구 건설사로 거듭나기까지접기


2000년 호반건설은 호반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사업 무대를 전국으로 확대했다. 광주를 시작으로 울산과 대전 천안 전주 등지에서 사업을 전개했다. 핵심 키워드는 가성비였다. 지역별 수요 특성을 분석해 유사한 설계를 반복 적용했고 이는 원가 절감과 공사 기간 단축으로 이어졌다. 과도한 마감재 경쟁이나 설계 차별화보다는, 실수요자가 체감하는 가격 경쟁력과 안정적인 품질을 중시했다. 이는 분양 속도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분양 성과는 현금 회수로 이어졌다.

당시 호반건설은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택지 공급을 적극 활용했다. 경기도 용인 구성지구를 시작으로 용인 흥덕, 인천 청라, 청주 강서 등지에서 시행과 시공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몸집을 불렸다. 공공택지 기반 사업은 분양 리스크가 상대적으로 낮았고 호반건설의 사업 구조와도 잘 맞아떨어졌다.

고급 아파트 브랜드 ‘호반 베르디움’을 론칭하며 브랜드 전략도 병행했다. 중저가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고 일정 수준 이상의 브랜드 가치를 확보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이와 함께 본사를 서울 역삼동으로 이전했다. 수도권 사업 확대와 금융·정책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선택이었다.
경기 광교신도시 내 호반베르디움 조감도 [이미지=호반건설]
그러던 중 호반건설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주택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자 대형 건설사들은 해외 토목·플랜트 사업으로 눈을 돌리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았다. 하지만 호반건설은 기존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유지했다. 무리한 해외 진출은 오히려 리스크를 키울 수 있다고 봤다.

2010년 들어 정부가 주도해 온 세종시 및 혁신도시 개발은 호반건설 성장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됐다. 공공기관 이전과 함께 주택 수요가 빠르게 형성됐고 공공택지 중심 공급 구조는 분양 리스크를 상쇄하면서 주택 건설 사업에 주력해 온 호반건설이 상당한 성과를 거두게 됐다.

2.4. 그룹사 성장 발판 마련한 M&A접기


적극적인 인수 합병도 호반그룹의 중요한 성장 전략이었다. 2006년 호반건설산업은 건설사업을 김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현대여신금융 측에 넘겼고 현대여신금융은 지금의 호반건설로 탈바꿈했다. 건설사업을 넘겨준 호반건설산업은 호반산업으로 재편했다. 지금의 호반그룹은 호반건설과 호반산업과 2003년 설립돼 부동산 임대업을 전담하는 호반프라퍼티 등을 세 축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현재의 기업 거버넌스가 당시 구축됐다.

거버넌스 재편 이후 호반건설은 2015년 시행·개발 역량 강화 차원에서 우방이앤씨 지분 99.4%를 취득하며 호반자산개발으로 재출범시켰고 그 이듬해 토목사업에 주력하는 중견건설사 울트라건설을 인수하며 시공 포트폴리오도 전면 확대했다. 2017년 당시 호반건설 산하 호반건설주택은 제주 퍼시픽랜드 지분 전량을 인수한 데 이어 2018년 리솜리조트 인수로 레저·관광 사업에 진출했다. 호반건설주택은 2018년 호반건설에 흡수 합병돼 소멸됐다.

호반건설은 2019년에는 덕평CC와 서서울CC를 인수하며 골프장 운영 사업도 본격화했다. 건설 경기 변동성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분산 전략이었다. 호반건설은 2021년 포스코가 보유하던 서울신문 지분을 인수하면서 미디어 분야에도 발을 들였다. 현재 호반건설은 산하에 완전 자회사인 서울미디어홀딩스를 구축하고 산하에 서울신문을 두고 있다.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은 김 회장이 맡고 있다.

호반프라퍼티는 2019년 가락시장 농산물 유통법인 대아청과를 인수하면서 유통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같은 해 호반건설과 함께 삼성금거래소 지분 삼성금거래소는 최근 금값 상승 등에 힘입어 매출이 크게 불어났고 호반그룹 계열사는 삼성금거래소 측에 상당 규모의 자금 대출도 지원했다. 이 뿐만 아니라 2021년에는 호반산업이 대한전선을 인수하면서 건설업에서 전통 제조업으로 영역을 확대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호반그룹 각 계열사들의 M&A 시장 노크는 계속 이어졌다.
한화갤러리아 압구정 명품관 내 삼성금거래소 팝업 스토어 전경 [이미지=삼성금거래소]

공정거래위원회는 2017년 호반그룹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한 데 이어 2021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으로도 선정하기도 했다.

3. 커지는 재계 내 존재감접기


3.1. 한진칼 지분경쟁, 이종사업 진출 관심접기


호반그룹이 시장의 주목을 본격적으로 받기 시작한 것은 한진칼 지분 경쟁이었다. 건설업을 영위하는 호반건설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호반그룹이 항공·물류 대기업 지주회사 지분을 확보해 가면서 경영권 분쟁 구도의 한 축으로 등장하자 시장의 시선은 호반으로 집중됐다. 업종 간 연관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중견 그룹이 대기업 지배구조 이슈의 한복판에 들어온 장면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호반그룹이 한진칼 지분을 처음 취득한 것은 2021년이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경영권을 놓고 갈등 관계를 빚어왔던 KCGI(강성부 펀드)가 보유하고 있던 한진칼 지분 중 상당량을 호반건설이 인수하면서 단숨에 주요 주주로 부상했다. 이후 계열사들을 통해 지분을 꾸준히 매집하며 영향력을 확대했다. 지난해 6월 말 현재 호반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한진칼 지분은 18.5%수준. 최대주주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과 지분 격차는 1.6%포인트 남짓까지 좁혀졌다.
한진칼 2025년 상반기 반기보고서 상 주식 소유현황.
호반그룹 측은 현대차와 기아 합병 이후 국내 자동차 산업이 사실상 현대차 1강 구도로 좁혀졌고 현대차 기업가치가 크게 커진 사례를 언급하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을 계기로 대한항공 기업가치가 중장기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본 행보라는 설명이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는 항공 산업 진출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투자라는 해석도 제기됐다. 다양한 인수합병을 통해 다각화해 온 사업 포트폴리오를 항공 분야로까지 진출시키겠다는 복안이라는 주장이다.

3.2. 자금력 뽐낸 대우건설 인수전 참여접기


과거 호반건설이 대우건설 인수를 시도한 것도 호반건설의 부상을 나타낸 한 장면으로 기억돼 있다. 호반건설은 2018년 초 산업은행 측이 보유한 대우건설 지분(50.8%) 인수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해당 지분의 40%가량을 먼저 인수한 뒤 2년 뒤 나머지를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매각가격은 주당 7700원씩 총 1조6000억원이었다. 대우건설 인수를 통해 주택 중심 사업 구조에서 종합 인프라·글로벌 건설사로의 전환까지 염두에 둔 전략적 판단이었다.

하지만 당시 시장에서는 호반건설의 부상을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새우가 고개를 삼키려고 한다는 평가도 제기되곤 했다. 2017년 기준 대우건설 매출은 11조원에 달했는데 호반건설은 그 절반 수준인 6조원 정도였다. 당시 호반건설의 국내 시공능력평가는 13위였지만 대우건설은 3위 수준이었다.

시장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호반건설의 대우건설 인수 의지는 상당했다. 하지만 대우건설 실사 과정에서 3000억원 규모 해외사업 부실 내용이 드러나면서 호반건설은 우협으로 선정된지 불과 9일 만에 인수 계획을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대우건설 인수 시도는 불발로 끝났지만 이 시도를 기점으로 호반은 더 이상 지방의 중견 건설사로 통하지 않게 됐다. 호반건설이 준대형 그룹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호반건설은 2021년 대우건설 매각 본입찰에 재도전했지만 결국 성사되진 못했다. 현재 호반건설이 인수하지 못했던 대우건설은 중흥건설이 인수해 경영하고 있다.

3.3. 대한전선 인수, LS그룹과 잡음접기


대우건설 인수를 포기한 호반그룹의 눈길이 향한 곳은 전선 케이블 제조사 대한전선이었다. 대우건설 인수 재도전이 무산된 직후인 2021년 4월 대한전선 최대주주였던 IMM프라이빗에쿼티가 경영권 매각을 공식화했고 호반그룹이 유력 후보로 급부상했다. 호반그룹은 그해 6월 말 대한전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한 달여 뒤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컨소시엄이 가진 구주를 인수하는 한편 유상증자에 참여해 신주도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호반건설 인수 당시 대한전선은 같은 업계 경쟁사인 LS전선과 특허 소송에 휘말려 있었다. LS전선이 '부스덕트용 조인트 키트'의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대한전선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게 2019년이다. 해당 소송 원심은 2022년 9월 LS전선 승소로 판결났고 이어진 상고에서도 LS전선 승리로 끝났다. 두 기업은 상고를 포기했다.
대한전선 생산기지 이미지 [이미지=호반그룹 브로슈어]

하지만 두 기업 간 잡음은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LS전선 측은 헤저케이블 공장 설계를 맡았던 건축사무소가 대한전선 프로젝트에도 참여하자 LS전선 측은 핵심 기술 자료가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2024년 경찰이 대한전선 관련 직원을 피의자 전환하고 본사 공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했고 두 기업 간 분쟁은 장기화 조짐을 보였다.

두 기업 간 분쟁이 그롭 대 그룹 갈등 양상을 띄기 시작한 건 지난해 5월부터다. 지난해 5월 호반그룹이 LS그룹 지주사 LS 지분을 3%까지 매집했다. 상법상 지분 3% 이상을 갖게 되면 임시주총 소집을 비롯해 감사·이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 등의 권한이 생긴다. 공식적으로는 단순 투자 목적이라는 설명이지만 업계에서는 전선업계 분쟁이 확장해 가는 국면에서 호반그룹이 LS그룹을 압박할 수 있는 카드로 자금력을 동원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LS 측은 호반건설 측과 지분 확보 경쟁에 한창인 대한항공 상대로 자사주 기반의 교환사채를 발행하는 한편 오너 일가 계열사 지분을 매각해 현금을 마련하는 등 경영권 방어에 나서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LS와 대한항공이 호반건설을 상대로 연합전선을 펼치고 있다는 해석이 제기되면서 이목을 끌기도 했다. 현재 호반그룹은 LS 지분을 매각해 3% 미만으로 낮춘 상태다.

4. 리더의 뚜렷한 경영철학접기


4.1. 완결성과 안정성 중시, 김상열 회장의 리더십접기


호반그룹의 성장 과정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김상열 회장의 의사결정 방식과 그에 기반한 조직 문화다. 호반건설의 경영 전략은 겉으로 보기엔 보수적으로 보이지만 실제 내부에서는 선택과 포기가 분명한 구조로 작동해 왔다는 분석이다. 그래서 김상열 회장은 성장 속도보다 사업의 완결성과 안정성을 중시하는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호반건설이 외형 확장 국면에서도 상대적으로 큰 위기를 겪지 않고 성장해온 배경으로 꼽힌다.

김상열 회장의 의사결정 스타일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기준은 '분양률'이다. 누적 분양률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신규 사업에 착수하지 않는 원칙이다. 미분양 물량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사업을 벌일 경우 재무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조직의 집중력이 분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원칙은 단순한 재무 기준을 넘어 조직 운영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사업부별로 무리한 확장을 시도하기보다 맡은 사업을 끝까지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의사결정 과정 역시 비교적 단순한 구조를 유지해왔다. 김상열 회장은 복잡한 보고 체계나 장시간의 의사결정 회의를 선호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 검토 단계에서는 수익 구조와 분양 가능성, 자금 회수 시점이 핵심 판단 기준으로 작용했다. 사업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보류하거나 철회하는 선택을 내렸고 이는 조직 전반에 '될 사업만 한다'는 메시지로 전달됐다.
2018년 호반그룹 신년 전략회의에서 발언하는 김상열 회장 [이미지=호반건설 홈페이지]
이 같은 스타일은 대우건설 인수 시도 과정에서도 분명히 드러났다. 당시 호반건설은 우협으로 선정되며 도약을 앞둔 듯 보였지만 실사 과정에서 해외 사업 부실이 확인되자 며칠 만에 인수 철회를 결정했다. 내부적으로 무리한 확장을 경계하는 기존 원칙을 재확인한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김상열 회장의 판단 기준이 '규모'가 아니라 '통제 가능성'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해석된다.

김상열 회장의 보수적 의사결정은 재무 운영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무차입·무어음 경영 원칙은 단순한 재무 전략을 넘어 조직 문화로 정착됐다. 공사비를 현금으로 지급하고 어음을 사용하지 않는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자금 운용의 부담을 키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거래 관계의 신뢰를 높이고 위기 대응력을 키운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다.

4.2. 탄탄한 재무구조, 막강한 현금력접기


2024년 말 별도 기준 호반건설의 부채비율은 약 18.7% 수준이다. 이는 같은 기간 국내 건설사 상위 20개사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으로 업계 평균이 수십 퍼센트대에서 수백 퍼센트대인 것과 비교하면 안정적인 구조다. 더구나 이 부채비율은 2023년 말 대비 약 7.6%포인트 낮아진 수치로 그간 순상환 기조가 이어져왔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금성 자산 측면에서도 호반건설은 현금 및 현금성자산 약 4835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프로젝트 파이낸싱 우발부채 대응 여력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며, 유동자산 기준으로도 호반그룹이 단기 유동성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충분한 현금을 확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실제로 2024년 말 별도 기준 유동자산은 약 2조3708억원에 달했으며, 유동부채는 약 4718억원에 불과해 유동비율이 높게 유지되고 있다.

연결 기준으로 보면 부채비율과 차입금 의존도 역시 우수한 수준이다. 2024년 말 연결 기준 호반건설의 부채비율은 53.5%로 나타나며 차입금 의존도는 8.8%에 불과하다.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오히려 순현금 상태(-0.6조원)로 평가되며 일부 비유동 지분가치를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더 안정적인 재무 여력을 확보하고 있다.

4.3. 승계 작업 마무리, 계열분리 가능성에 주목접기


현재 호반그룹은 사실상 승계를 마친 상태다. 호반그룹은 김상열 회장의 세 자녀가 각각 호반건설과 호반산업, 호반프라퍼티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 3개의 사업 지주회사를 두고 각 영역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셈이다. 김상열 회장의 장남인 김대헌 호반그룹 사장이 호반건설을, 차남인 김민성 전무가 호반산업을 맡고 있다. 장녀인 김윤혜 사장이 호반프라퍼티를 경영하고 있다.

지난해 차남 김 전무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호반산업 안에서 거버넌스 변화가 관측되기도 했다. 호반산업이 물적분할을 통해 존속법인 HB호반지주와 신설법인 호반산업으로 나뉘었다. 기존 법인은 지주회사로 전환됐고 신설 법인은 사업을 담당하는 구조다. HB호반지주 산하에는 호반산업과 대한전선을 비롯해 호반티비엠, 티에스써밋, 티에스자산개발, 티에스리빙, 호반써밋 등이 자리잡고 있다.
호반산업은 대한전선의 지분 가치 상승에 따라 이번 지주사 전환을 결정했다.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자산총액이 5000억원 이상이면서 소유하는 자회사 주식가액 합계액이 자산총액의 50% 이상일 경우 지주회사 요건을 갖추게 된다. 호반산업의 경우 대한전선의 주식 가치 상승에 따라 호반산업 자산총계 가운데 자회사 주식가액 비중이 43.9%에 다다랐다. 작년 말 기준 호반산업의 자산총계(별도 기준)는 2조2816억원이다.
시장에서는 호반건설과 호반프라퍼티 역시 호반산업과 같이 장기적 계열분리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다만 일각에서는 삼남매 간 계열분리가 쉽게 이뤄지긴 쉽지않을 것이란 의견도 제기된다. 호반산업 지분을 호반건설과 호반프라퍼티 등도 가지고 있기 대문에 복잡한 지분 구조를 단번에 정리하기는 힘들 것이란 전망이다.
  • [1] 호반건설은 향후 호반건설산업으로 사명을 바꾼 뒤 팩토리 금융와 단기자금 지원을 위해 설립된 현대여신금융에 건설 사업 부문을 양도해 지금의 호반산업으로 재출범했다. 현대여신금융은 건설 사업 양도 이후 현재 호반건설로 운영하고 있다.
  • [2] 1961년생인 김상열 회장은 전남 광주시 출신으로 조선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했다. 현재 호반장학재단 이사장과 서울미디어홀딩스 회장직을 맡고 있다.
  • [3] 현대건설의 경우 국내 주택 토목 발주가 급감하면서 사우디아라이바와 UAE 등으로 진출해 산업단지 플랜트와 석유화학 플랜트 건설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삼성엔지니어링과 GS건설 등도 중동과 동남아시아 시장으로 플랜트 수주 영역을 확대했다.
  • [4] 과거 참여정부 행정수도 이전 구상에서 출발한 세종시 건설 사업은 2012년 공식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세종시 건설 사업은 정부청사 중심의 공공 주거 복합 신도시 성격을 띄고 있다.
  • [5] 1996년 8월 설립 당시 사명은 현대파이낸스. 매출채권 할인과 팩토리 금융, 할부 금융 등에 주력했다. 현대파이낸스 설립 당시 김상열 회장의 나이는 34세였다.
  • [6] 호반그룹은 대아청과 지분 전량(50만주)을 주당 11만2800원씩 총 564억원에 매입했다. 호반프라퍼티가 지분 51%, 호반건설이 49%를 취득했다.
  • [7] 호반프라퍼티는 호반건설과 함께 2020년 1월 삼성금거래소 지분 43.1%를 223억원에 인수한 데 이어 2021년 10월 박내춘 삼성금거래소 회장 비분 21.13%를 추가 매수했다. 같은해 12월에는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385억원을 투입했다. 현재 호반프라퍼티가 지분의 50.7%, 호반건설이 48.7%를 갖고 있다.
  • [8] 공정위는 호반건설이 2023년 6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위반했다며 608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호반건설이 김상열 회장의 자녀 회사에 부당 지원을 했다는 이유다.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호반건설이 공정위 제재를 취소해 달라는 소송의 상고심에서 과징금 중 일부를 취소하라는 내용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 [9] 당시 IMM PE는 2015년 은행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을 인수한 뒤 계열사 정리와 수익성 개선을 통해 엑시트를 추진하던 상황이었다.
  • [10] 당시 LS 측이 발행하기로 한 교환사채는 650억원 규모였다. 교환대상은 LS가 보유한 자사주 38만7365주로 전체 발행주식의 1.2%에 해당하는 물량이었다. LS 측은 산업은행 차입금 일부를 상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11] 한국신용평가는 자체 보고서 상에서 올해 호반건설 자금집행 규모가 커지면서 순차입이 일시적으로 증가했으나 실질적인 순현금 상태는 계속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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