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최근 캐피탈 업권이 혼전의 국면에 접어들었다. 부동산PF 부실이 시장 전반에 충격을 남긴 이후 판도가 재편되고 있다. 대형사의 자본력과 영업 기반은 여전히 시장을 주도하며 우위가 강화되는 추세다. 이 가운데 국책은행 계열인 산은캐피탈과 IBK캐피탈이 시장 재편의 중심에 서고 있다.
두 캐피탈사는 기업금융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점에서 궤를 같이한다. 특히 투자금융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 두드러진다. 세부 전략과 투자 방식에서는 차이를 보이며 각자만의 강점을 살리고 있다. IBK캐피탈은 위탁운용사(GP) 펀드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산은캐피탈은 유가증권 투자 비중을 늘리며 선도적 지위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자산 10조 시대 열어, 성장 주도 포트폴리오는 산은캐피탈과 IBK캐피탈은 다양한 공통 분모를 갖추고 있다. 두 캐피탈사 모두 국책은행 계열사로서 설립 목적부터 공적 역할 수행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산은캐피탈은 국내 벤처투자 선구자로서 '투자 명가'로 불린다. IBK캐피탈의 경우 IBK기업은행의 자회사로서 중소기업에 대한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설립됐다.
먼저 산은캐피탈은 1972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리스사다.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산업설비 등을 취급해 왔다. 1999년 한국기술금융과 합병하면서 주력 사업을 리스에서 기업금융과 투자금융으로 전환했다. 2010년대에는 할부금융 시장에도 진출해 기존 오토리스와 함께 자동차금융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하고 있다.
IBK캐피탈은 1986년 기은개발금융으로 설립돼 신기술 부문 위주로 영업을 개시했다. 1999년 기은할부금융과 합병하면서 팩토링 취급에도 나섰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할부금융업을 등록하며 여전사로서의 정체성을 갖춰 나갔다. 이후 사업자대출과 리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이에 따라 사업 포트폴리오도 기업금융 중심으로 형성됐다. 기업대출과 투자금융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하고 있다. 산은캐피탈은 전체 영업자산의 절반 가까이 기업금융으로 운영하고 있다. 투자금융은 30% 수준이다. IBK캐피탈은 기업금융의 비중이 70% 이상으로 더 크고 투자금융은 20% 정도를 차지한다.
비슷한 사업 구조 속에서도 성장세가 먼저 두드러진 쪽은 IBK캐피탈이다. IBK캐피탈은 2017년부터 산은캐피탈보다 꾸준히 더 많은 자산을 확보해 왔다. 자산 규모가 먼저 5조원을 돌파한 건 산은캐피탈이지만 10조원 시대를 연 쪽은 IBK캐피탈이다. IBK캐피탈은 두 자릿수 자산 성장률을 지속하며 2022년에 총자산이 10조원을 넘어섰다.
최근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지난해부터 산은캐피탈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다시 우위를 점했다. 6월말 기준으로 양사 모두 총자산이 11조7000억원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산은캐피탈이 약 450억원 차이로 근소하게 앞서 있는 모습이다. IBK캐피탈이 부동산PF 리스크 정리로 주춤한 사이 산은캐피탈은 투자금융 위주로 성장을 지속했다.
◇산은 '2년 연속' 순익 2000억, 최대 실적 경신한 IBK 경영 실적 측면에선 산은캐피탈이 비교적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양사 모두 전반적으로 변동성이 크지 않고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유지하는 점이 특징이다. 2019년과 2022년을 제외하면 IBK캐피탈보다 높은 순이익을 기록했다. 최근 3년간 실적 추이에서는 격차가 점차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산은캐피탈이 2년 연속 2000억원대의 순이익을 거두며 현대캐피탈의 뒤를 이었다. IBK캐피탈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IBK캐피탈이 업계 내에서 실적이 부진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별도 기준 순이익 2142억원으로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상위권 지위를 공고히 했다. 특히 IB투자 부문에서 꾸준히 수익성을 개선하며 실적 성장을 견인했다. 이 흐름은 올해 상반기에도 이어지면서 산은캐피탈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각사의 성장 동력 일부가 차이를 보이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산은캐피탈은 투자금융을 중심으로 벤처투자와 인수금융 등에서 선도적 지위를 강화하고 있다. IBK캐피탈은 GP펀드 결성을 확대하며 운용 수익성과 그룹 시너지를 높이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세부적인 전략적 차이가 향후 시장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