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붐을 타고 반도체 시장이 역사적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의 체감 온도는 엇갈리고 있다. HBM 투자가 확대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고객사 투자 지연과 재고조정, 중국향 매출 둔화 등 복합적인 영향에 기업별로 극과 극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더벨은 국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해 반도체 생태계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봤다.
반도체 활황기에 따른 HBM 투자 확대 기대감은 장비뿐 아니라 소재·부품·후공정 기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만 HBM 투자 사이클 속에서도 기업별 2026년 1분기 실적은 엇갈렸다.
실리콘(Si) 웨이퍼 분야는 AI 반도체와 메모리 수요 회복으로 긍정적이었지만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는 전기차 수요 둔화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후공정 기업은 AI향 물량뿐 아니라 모바일 AP와 범용 시스템반도체 시장도 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AI와 HBM 수요 확대만이 실적과 이어지지는 않았다. 테스트 소켓과 일부 패키징 기업은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를 바탕으로 비교적 뚜렷한 개선 흐름을 보였다.
◇SK실트론, 반도체 수혜 까먹은 전기차발 SiC 웨이퍼
SK실트론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4534억원, 영업이익 8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8% 줄어드는 데 그쳤지만 영업이익은 76.7% 감소했다. 당기순손익도 224억원 흑자에서 82억원 손실로 전환했다.
SK실트론의 대표 제품은 웨이퍼다. 반도체 공정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지는 소재다. 반도체 호황을 제대로 누렸어야 했지만 1분기 실적은 그렇지 못했다.
반도체 공정은 크게 8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 공정인 웨이퍼는 반도체의 핵심 재료인 원형 판이다. 웨이퍼 위에 사각형의 IC칩들을 인쇄해 잘라내면 하나하나가 반도체 칩이 된다. 웨이퍼 자체를 생산하는 작업과 이 웨이퍼를 재료로 가공하는 팹 산업, 이후 포장하는 패키징 등으로 구분한다.
SK실트론의 어닝쇼크는 제품별 영향을 별도로 구분해 봐야 한다. SK실트론은 실리콘(Si) 웨이퍼와 실리콘 카바이드(SiC) 웨이퍼를 생산한다. SiC 웨이퍼는 실리콘 웨이퍼보다 가격과 제조 난도가 훨씬 높은 소재다. 더 높은 전압과 온도를 견디는 만큼 차량용 전략 반도체 소재로 사용된다. 그만큼 가격이 비싸지만 1분기엔 실적 부진의 단초가 됐다.
문제는 SiC 웨이퍼 물량을 받아줄 전기차 시장이 캐즘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SiC 웨이퍼 법인인 SK실트론CSS은 꾸준히 손실을 내왔다. 지난해에만 4141억원의 손상차손을 기록했다. 두산그룹의 인수가 마무리되면 SiC 웨이퍼 사업은 정리될 예정이다.
그래픽=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테스트 소켓 ISC·리노공업 선전, AI 수요 실적 반영
반도체 부품 기업 중에서는 소모성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두드러졌다. 대표적인 제품군이 테스트 소켓이다.
테스트 소켓은 완성된 반도체 칩의 성능을 검사하는 과정에서 쓰이는 부품이다. 고성능 칩일수록 테스트 난도가 높아지고 소켓의 사양도 올라가기 때문에 AI 서버와 고성능 반도체 수요 확대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영역으로 꼽힌다. 반도체 소부장 기업 중에서는 이 분야가 가장 빨리 수혜를 본 것으로 해석된다.
장비기업과는 수혜의 방식이 다르다. 장비기업은 고객사의 설비투자 집행 시점에 크게 좌우된다. 테스트 부품은 고성능 반도체 생산과 출하가 늘면 그만큼 수요가 확대된다. AI 서버용 반도체의 테스트 수요가 늘면 늘수록 호황이다.
ISC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683억7200만원, 영업이익 236억1600만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15.5%, 영업이익은 237.8% 늘었다. 1분기는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비수기로 불리는데 전통적인 비수기에도 수익성이 확대됐고 영업이익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다.
ISC는 AI GPU, ASIC, 하이엔드 메모리 등 AI 중심 수요 확대가 실적 성장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인 성과가 아니라 구조적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리노공업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리노공업은 1분기 개별 기준 매출 997억7100만원, 영업이익 473억100만원을 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27.2%, 영업이익은 35.4% 증가했다. 리노소켓과 리노핀 매출이 늘었고 수량 증가와 가격 상승이 동시에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왔다.
◇범핑·패키징도 개선, 네패스 수익성 회복
후공정 영역에서는 네패스의 개선 흐름이 눈에 띈다. 네패스는 반도체 범핑과 패키징 등 후공정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객사의 물량과 가동률, 믹스개선에 영향을 받는다.
다만 네페스의 실적 개선이 곧 HBM발 수요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AI 반도체뿐 아니라 모바일 AP용 전력반도체 등 또다른 수요로도 돈을 벌었다. HBM과 AI 반도체 수요가 후공정 기업 전반의 기대감을 키우고 있지만 일단 1분기 실적에서는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
네패스는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340억원, 영업이익 109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5% 늘었고 영업이익은 198.9% 증가했다.
투자업계에서는 네패스의 실적 개선 요인으로 국내 고객사의 모바일 AP용 전력반도체 탑재 수 증가, 범핑 수요 호조, 글로벌 고객사향 물량 확대를 꼽았다. PMIC뿐 아니라 RF 칩 수요도 견조하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반도체 시장의 호황뿐 아니라 제품 믹스에 따라 실적이 갈린다는 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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