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실트론 매각이 표류하면서 시장에서는 그룹 내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인수할 만한 사업적 명분을 가진 계열사로는 단연 SK하이닉스가 지목된다. 실트론은 반도체 웨이퍼를 만드는 소재 회사고, SK하이닉스는 그 웨이퍼를 직접 쓰는 전방 수요처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웨이퍼의 안정적 확보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공급망을 그룹 밖으로 넘기지 않고 안에 묶어둬야 한다는 수직계열화 논리도 힘을 얻고 있다.
SK 사외이사들이 매각에 제동을 건 명분 역시 이같은 전략자산론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SK하이닉스가 인수자로 나서는 시나리오는 지배구조상 이해상충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재무적으로 하이닉스는 5조원대 거래를 검토할 체력을 갖춘 거의 유일한 계열사로 꼽힌다. SK하이닉스의 연결 순현금은 1분기 말 30조원을 웃돌고 있다. 2025년 영업이익은 47조2063억원으로 사상 최대를 찍었고 그해 영업활동현금흐름만 53조3731억원, 잉여현금흐름은 23조1126억원(배당금 지급 후 기준)을 기록했다. 한 해 유입된 영업현금만으로 실트론을 사고도 남는다는 뜻이다.
SK 입장에서 하이닉스 현금을 당겨올 수 있는 우회로의 측면도 있다. SK하이닉스에서 유동성을 SK에 밀어줄 수 있는 길이 사실상 배당뿐이기 때문이다.
SK는 SK스퀘어를 거쳐 하이닉스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 SK가 SK스퀘어 지분을 32.14% 보유하고, SK스퀘어가 다시 SK하이닉스 지분 20.5%를 쥐고 있는 구조다. 따라서 배당이 SK스퀘어를 거쳐 다시 SK까지 올라오려면 지주에 닿는 돈은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실트론 매각을 통한 자산 거래는 대규모 현금을 SK하이닉스에서 지주사로 옮겨올 통로가 되어줄 수 있다.
차입금 정리 차원에서도 그룹 내 매각의 경우 유리한 부분이 눈에 띈다. SK실트론의 차입금 일부(약 1조7000억원)에 붙어 있는 기한이익상실(EOD) 특약이 기업집단 내 이전의 경우 발동하지 않을 수 있다. 지배구조가 변경되면 EOD가 생길 수 있는 조건인데, SK하이닉스가 인수할 경우 실트론은 여전히 SK그룹 안에 남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점 역시 지배구조에 있다. 문제는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행위제한이다. SK하이닉스는 지주사인 SK의 손자회사고, 손자회사는 국내 계열회사를 원칙적으로 소유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증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하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SK하이닉스가 SK실트론을 인수하려면 SK가 보유한 51%와 SPC를 통해 보유한 TRS 계약분 19.6%뿐 아니라 최태원 회장 개인 지분인 29.4%까지 전부 사들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장 계열사가 지주사와 총수 측 지분을 사 주는 그림이라는 점에서 주주들로부터 이해상충 시비를 부를 수 있다.
가격 산정도 복잡해진다. 매각 논의가 시작된 시점보다 반도체 밸류체인을 보는 시장의 눈높이는 높아졌는데, 실트론 몸값을 비싸게 쳐줄수록 일반주주 이익과 부딪힌다는 문제가 제기될 공산이 커진다. 개정 상법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까지 넓힌 만큼, 이사회가 주주들에게 불리한 값에 사주는 거래를 더 엄격한 잣대로 볼 수 있다.
하이닉스 이사회는 9명 중 사외이사가 5명으로 과반이고, 이사회 의장도 사외이사가 맡고 있다. 사내이사는 2명, 기타비상무이사는 SK와 SK스퀘어 대표 2명이다. 그룹 측 인사가 이사회에 들어와 있지만, 이해상충 소지가 있는 거래에서는 사외이사 중심의 견제를 피할 수 없다.
SK로서는 세 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다. 두산과의 본계약을 되살리거나, 이해상충 논란을 감수하고 SK하이닉스 카드를 꺼내들거나, 매각을 접고 보유로 돌아서는 길이다. SK는 6월 15일 매각 관련 해명 공시에서 '두산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두고 매각을 추진하고 있으나, 매각 여부와 조건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재공시 예정일인 3개월 뒤까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