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가 추진하던 SK실트론 매각이 잠정 중단되면서 재무적 후폭풍에 시선이 쏠린다. 딜이 끝내 무산될 경우 가장 먼저 주목할 부분은 차입 부담에 있다. 이번 거래는 지분을 넘기는 동시에, 특약부 차입까지 인수 측 자금으로 정리하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차환 압박이 이미 커진 상태라는 점이다. SK실트론은 총차입금이 3조원대까지 불어났고 영업에서 버는 현금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빅딜 무산의 청구서 SK가 지난해 12월부터 두산과 논의해온 SK실트론 매각구조에는 애초부터 빚 정리가 포함돼 있었다. 거래대상 지분만 보면 SK가 직접 보유한 51%와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한 총수익스왑(TRS) 계약분 19.6%를 합친 70.6%다. 시장에서는 딜 규모를 5조원 수준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이 5조원은 기업가치(EV) 기준이다. 2조원대 순차입금이 포함된 몸값으로, 절반 가까이가 빚이라는 이야기다. 게다가 상당부분은 주인이 바뀌면 그대로 안고 갈 수 없다. 차입금 일부에 지배구조 변경을 제한하는 특약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실트론이 SK그룹에서 빠져나가 경영권이 두산으로 넘어가는 순간, 사채권자와 대주단이 기한이익상실(EOD)을 주장해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작년 11월 말 기준 회사채를 포함한 이 특약부 차입은 약 1조7000억원에 달했다. 인수자가 거래 종결과 동시에 빚을 갚거나, 새 대출로 갈아태울 자금을 미리 약정해둬야 딜을 클로징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산업은행과 우리은행이 두산 측에 주선하기로 한 금융 2조5000억원 가운데 1조5000억원이 '주주 변경에 따른 차입금 상환의무 해소' 용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설계 단계부터 실트론 차입금 정리가 전제됐던 셈이다. 그러나 본계약 서명을 앞두고 매각 작업이 표류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이 빚이 다시 SK실트론에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단기차입 급증...내년 만기 9000억 육박 규모는 만만치 않다. SK실트론의 연결 총차입금은 3년 전 1조원대였지만 올 3월 말 3조855억원까지 불었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은 2조6242억원으로 두 배 점프했다. 총자산에서 차입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52.8%. 자산의 절반 이상을 빚으로 쌓아 올린 구조다.
설비투자가 차입을 키웠다. 지난해 SK실트론의 자본적지출(CAPEX)만 6315억원에 이른다. 올 3월 말 기준 아직 집행하지 않은 유·무형자산 취득 약정액도 3691억원 남아 있다. 투자를 임의로 줄이기 어렵게 계약으로 묶여 있다는 뜻이다.
차입의 무게중심이 단기로 쏠린 것은 올 들어서다. 단기차입금이 지난해 말 4470억원에서 올 3월 말 9035억원으로 한 분기 만에 4565억원 불었다. 같은 분기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 487억원으로 순유출 전환한 것과 무관치 않다. 영업에서 만들지 못한 현금을 단기차입으로 메운 모습이다.
만기 구조도 덩달아 짧아졌다. 1년 안에 갚거나 차환해야 하는 단기성 차입금이 지난해 말 9269억원에서 3월 말 1조7842억원으로 늘었고, 총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한 분기 만에 34.1%에서 57.8%로 올라섰다. 내년엔 더 큰 고비가 다가온다. 연도별 상환계획을 보면 만기 도래액은 올해 4677억원에서 2027년 8831억원으로 2배 가까이 뛰게 된다.
대응할 여력은 빠듯해 보인다. 3월 말 보유현금은 4614억원(단기금융상품 포함)으로 단기성 차입의 25.9%에 그쳤다. 이중 663억원은 미국 에너지부(DOE) 대출 프로그램과 관련해 정부기관 승인을 받아야 인출할 수 있는 계좌에 묶여 있는 상황이다.
이자 부담은 어떨까. 지난해 이자비용으로 처리된 금액은 349억원이지만, 손익계산서 밖에 감춰진 이자가 따로 있다. 건설 중인 설비 원가로 자본화된 차입원가 827억원이다. 합치면 1176억원으로 지난해 영업이익의 60.9%에 이른다. 올 1분기에도 자본화 차입원가를 포함한 이자부담은 292억원으로 분기 영업이익(88억원)의 세 배를 웃돌았다. 자본화된 차입원가는 공장이 완공되는 순간부터 내용연수에 걸쳐 감가상각으로 손익에 반영된다.
◇미국 SiC 부실, 담보 부담도 겹쳤다 상환 재원이 될 현금창출력 역시 주춤한 추세를 보이고 있다. 5000억원 안팎이던 연간 영업현금흐름이 지난해 1440억원으로 줄었다. 같은 해 자본적지출의 23% 수준에 그치는 돈이다. 투자까지 반영한 잉여현금흐름은 -4875억원으로 3년 연속 순유출을 나타내고 있다. 이 기간 쌓인 잉여현금 적자는 1조3016억원에 달한다.
부진의 핵심 원인은 미국 SiC(실리콘카바이드) 웨이퍼사업이다. SK실트론은 2019년 듀폰의 SiC 웨이퍼 사업부를 인수하면서 미국 사업관리 법인 SK실트론USA와 생산판매 법인 SK실트론 CSS를 세웠다. 실트론 USA가 CSS를 100% 보유하는 구조라, 실트론USA 연결 재무지표가 사실상 미국 SiC사업의 성적표라고 볼 수 있다.
다만 기대만큼 실적을 내지 못했다. SK실트론 USA는 2025년 6500억원에 육박하는 대규모 순손실을 냈고, SK실트론도 지난해 SiC 웨이퍼 사업 관련 영업권·유무형자산 등에 4141억원의 손상차손을 인식했다.
담보 부담도 상당한 수준이다. 작년 말 기준 SK실트론 CSS의 총자산 7929억원이 통째로 DOE에 담보로 제공돼 있으며 SK실트론은 대출과 관련해 CSS와 자금지원약정까지 맺고 있다. 손실 사업의 자산은 이미 전부 담보로 잡혀 있고, 모회사인 SK실트론 신용까지 얽혀 있는 구조다.
결국 실트론 매각이 중단될 경우 재무적 여파는 SK의 대금 유입 무산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수금융 구조 안에서 정리될 수 있었던 특약부 차입과 미국 SiC사업의 담보 부담이 다시 SK실트론에 돌아오기 때문이다. 3조원에 이르는 빚의 차환은 SK실트론 스스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