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인수는 잔금 납부에서 끝나지 않는다. 두산의 SK실트론 인수 역시 계약서에 적힌 대금만으로 무게를 가늠하긴 어렵다. 거래와 함께 실트론에 쌓인 빚과 만기 부담이 같이 따라붙기 때문이다.
또 다른 변수는 SK그룹이라는 신용 울타리에 있다. 실트론이 SK 이름을 떼고 신용등급이 낮아질 경우 차환 비용이 뛰는 것은 불가피해진다. 사업 통합뿐 아니라 달라진 여건에서 차환 구조를 짜는 것도 두산이 마주한 숙제라고 볼 수 있다.
◇실트론 차입금 3조, 58%는 1년 내 만기 두산이 SK에 지급하는 2조3000억원은 지분 70.61%에 대한 대금이다. 하지만 계산이 여기서 끝나진 않는다. 거래가 종결되면 SK실트론의 부채가 통째로 두산 연결재무제표에 편입되기 때문이다. 3월 말 기준 SK실트론의 총차입금(리스부채 포함)은 3조원 수준이다.
만기구조 역시 부담이 될 수 있다. 올 3월 말 기준으로 SK실트론의 총차입금 가운데 1년 안에 만기가 돌아오는 단기성 차입금이 1조7842억원에 이른다. 2024년 말과 비교하면 85%가 늘었다. 거래종결 예정 시점이 올 11~12월이니 두산은 경영권을 넘겨받자마자 차환 대응부터 해야 할 전망이다.
앞서 SK실트론은 차입 총량보다도 구성 측면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SK실트론의 총차입금은 올 3월 말 3조855억원으로 2024년 말 대비 11%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 단기차입금은 9035억원으로 141% 뛰었고 1년 내 갚아야 하는 유동성장기부채도 8694억원으로 51% 불었다.
반대로 장기성 차입규모는 크게 감소했다. 사채를 포함한 장기차입금이 2024년 말 1조6673억원에서 올 3월 말 1조2188억원으로 4485억원 감소했다. 장기로 빌렸던 돈의 만기가 도래하면서 유동성 항목으로 넘어왔는데 신규 조달은 단기로 이뤄졌다는 뜻이다. 총차입금에서 단기성 차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사이 35%에서 58%로 올라섰다.
다만 차환 부담을 전부 두산이 넘겨받지는 않는다. 이자발생부채 명세를 뜯어보면 안진은 청산 예정인 'SK Siltron USA' 등 미국 SiC 법인의 재무를 분리하고 SiC 법인 차입금 6841억원을 포함한 청산 관련 순유출 6013억원을 별도 항목으로 계상했다.
구체적으로 청산 시나리오에서 SiC 법인이 갚거나 지출해야 할 돈은 차입금 전액과 청산비용 등을 합쳐 약 8061억원이다. 반면 SiC가 보유현금과 자산 매각으로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돈은 2048억원에 그친다.
모자라는 6013억원은 모회사인 SK실트론이 채워 넣어야 하고 거래종결 후엔 두산이 실트론 주인이 된다. 안진이 이 금액을 몸값에서 미리 깎은 이유다. SiC 몫을 걷어내고 실트론에 남은 단기성 이자발생부채(리스 제외)는 안진의 평가표상 1조5882억원으로 계산됐다.
거래 구조상 두산은 종결 전부터 이 차입 관리에 관여할 수 있다. 주식매매계약서 제6.1조는 매수인의 사전 서면동의 없이 할 수 없는 행위 중 하나로 "금전의 대여, 차입, 사채의 발행이나 인수 또는 담보 및 보증의 제공, 콜옵션이나 풋옵션 등 옵션거래, 스왑거래 기타 파생거래에 관한 계약" 등을 명시하고 있다. 두산이 5영업일 안에 답하지 않으면 동의로 간주되지만 형식상으로는 계약 체결일인 지난달 31일부터 SK실트론의 차환 결정마다 두산의 도장이 필요해진 셈이다.
◇'SK' 이름값 사라지면 A+ 흔들 더 구조적인 변수는 조달 조건에 있다. 실트론이 그동안 A+ 등급을 유지할 수 있던 데엔 SK그룹이라는 배경이 존재했다. SK 계열의 지원 가능성이 1노치를 높여준 덕분이다. 달리 말하면 실트론의 자체신용도는 A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등급 상승효과는 이번 매각으로 사라진다. 신용평가 3사는 지난해 우선협상대상 선정, 매매계약 체결을 거치면서 모두 SK실트론을 하향 검토 감시대상에 올렸다. 새 모회사가 될 두산의 등급은 BBB+로 실트론의 자체 신용도보다도 낮기 때문이다.
결국 실트론은 낮아진 등급표를 들고 차환 협상에 나서야 한다. 비용으로 환산하면 어떨까. 리스를 제외한 단기성 차입 1조7734억원 기준으로 조달금리가 1%포인트 벌어질 때 연간 이자 부담은 177억원 늘어난다. 지난해 실트론 영업이익(1931억원)의 9%에 해당하는 규모다.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돈은 만기표에 적힌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실트론 차입 가운데 약 1조2000억원(7월 말 기준, 회사채 약 7000억원 포함)에는 지배구조 변경제한 특약이 붙어 있다. 대주주가 바뀔 경우 조기 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조항이다. 은행차입의 경우 채권자가 대주주 변경에 대한 동의(웨이버)의 대가로 금리나 담보 조건 재설정을 요구할 수도 있다.
안진의 밸류에이션은 이런 변화를 반영하지 않고 있다. SK실트론 기업가치를 할인하는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산정에서 타인자본비용으로 5.05%를 적용했다. "평가기준일 현재 신용등급 및 재무상태를 고려한 A+ 등급 5년 만기 무보증 공모 회사채 수익률"이라는 설명이다. 매각이 종결되면 유지하기 어려운 조달 조건이 몸값 산정의 전제로 들어가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