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반도체 소부장 실적 리뷰

HBM 호황에도 엇갈린 성적표…극과극 온도 차

[총론]소부장 대장 한미반도체도 어닝쇼크…장비업계 낙수효과 제각각

허인혜 기자  2026-05-22 13:40:20

편집자주

인공지능(AI) 붐을 타고 반도체 시장이 역사적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반면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업체들의 체감 온도는 엇갈리고 있다. HBM 투자가 확대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했지만 고객사 투자 지연과 재고조정, 중국향 매출 둔화 등 복합적인 영향에 기업별로 극과 극의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더벨은 국내외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을 분석해 반도체 생태계의 현황과 미래를 점검해봤다.
인공지능(AI) 파도를 타고 역사적 슈퍼사이클을 맞은 반도체 시장이지만 올해 1분기 실적을 열어보니 제조사와 소재·부품·장비 기업간 실적 격차가 뚜렷했다. 소부장 기업 안에서도 생산 장비 특성별로 편차가 나타났다. 반도체 소부장의 대장으로 꼽히는 한미반도체도 어닝쇼크를 기록하며 반도체 시장과 소부장 기업의 실적 엇박자 배경에 시선이 쏠린다.

결론적으로 TC본더 등 HBM 핵심 제조장비 기업들은 HBM 세대 전환 과정에서 매출 반영 공백과 수주 지연 영향을 받았다. 후공정·테스트 분야 기업들은 투자 지연과 품목 매출 감소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반면 범용 전공정 장비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선전하며 업황 회복의 수혜를 먼저 누렸다. 글로벌과 국내 고객사 포트폴리오 차이도 기업별 실적을 가른 요인이다.

◇제조사들 AI 서핑 중에도…'소부장 대장' 한미반도체 어닝쇼크

한미반도체는 2026년 1분기 영업이익 84억5600만원을 기록했다. 매출액은 509억200만원, 당기순이익은 190억3200만원으로 집계됐다. 증권가 컨센서스를 크게 하회하는 어닝쇼크였다. 증권가는 영업이익 약 900억~1000억원, 매출액은 1900억~2000억원을 전망했다.

그래픽=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한미반도체는 시가총액 31조원이 넘는 반도체 소부장 대장기업이다. 지난해 성과도 올해 1분기의 부진을 짐작하기 어렵게 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매출액 5767억원, 영업이익 251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하면 1분기 한미반도체의 영업이익은 88%나 줄었다. 매출액이 65.5%, 당기순이익이 65.2% 감소했다.

한화비전의 반도체 장비 자회사인 한화세미텍도 1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이 0.2% 늘었지만 적자전환했다.

반도체 제조사들이 순풍을 넘어 AI발 슈퍼사이클에 올라탄 것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결과다. SK하이닉스는 같은 기간 매출 52조5763억원, 영업이익 37조6103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 72%는 시장을 놀라게 한 수치다. 분기기준 매출과 영업이익, 영업이익률 모두 창사 이래 최고치다.

삼성전자는 1분기 영업이익만으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을 앞질렀다. 반도체 부문만 53조7000억원의 이익을 냈다. 글로벌 동향도 당연히 같아서 지난 분기 역대급 성과를 냈던 엔비디아도 1분기 재차 시장 기대치를 넘어서는 실적을 발표했다.

◇HBM 세대전환 공백기에 맞은 보릿고개

시장은 HBM 세대전환기에서 나타난 장비 매출 공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5세대용 사이클이 마무리되고 6세대로 대체되는 시기로 HBM3E용 TC본더 투자가 일단락된 반면 HBM4용 장비 매출은 아직 본격 반영되지 않은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2분기 실적 개선을 자신하고 있다. 주력 제품인 TC본더 수주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화세미텍도 매출 시차를 원인으로 설명했다. 지난해 수주한 TC본더 물량이 전년도 실적에 대부분 반영되면서 1분기에는 일시적인 매출 인식 공백이 발생했다고 부연했다.

두 기업 모두 TC본더를 생산하기 때문에 HBM 전환기에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TC본더는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여러 장의 D램 칩과 기판 등을 고온·압력으로 켜켜이 붙이는 장비다. HBM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이 적층 구조와 접합의 조건, 생산라인의 사양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장비를 발주하는 것 역시 고객사의 투자 일정에 따라 실적이 크게 좌우된다. HBM3E 투자가 일단락되고 HBM4 투자가 본격화되기 전에는 장비 발주와 매출 반영에 시차가 발생하기 쉽다. 역시 TC본더가 주력인 세메스는 평이한 성과를 냈는데 삼성전자 계열 종합 장비사라는 지배구조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세메스의 사례를 염두에 두면 TC본더 주력사들이 고객사의 스케줄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 재차 증명된다.

그래픽=챗GPT가 생성한 이미지.

◇범용 전공정 장비는 선전, 고객사 포트폴리오도 영향

일부 기업의 부진을 반도체 소부장 기업 전체의 실적악화로 볼 수는 없다. 일부 범용 전공정 장비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실적을 냈다. 전공정 장비는 D램이나 낸드, 파운드리 등 여러 반도체 공정 전반에 쓰이는 제조장비를 일컫는다.

반도체 패키징 장비기업 피에스케이는 올해 1분기 매출 1566억원, 영업이익 47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53.6%, 영업이익은 108.4% 증가했다. 분기 최대 실적이다. 중국향 매출이 기대치를 웃돌고 미국·중국 고객 비중이 확대되면서 수익성 개선을 이끈 것으로 분석됐다.

반도체 증착·세정 장비 전문기업 테스도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972억원, 영업이익 222억원, 당기순이익 246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36% 증가한 것으로 파악된다.

반도체 기판 위에 회로를 만드는 공정 장비 등을 생산하는 원익IPS는 1분기 연결 기준 매출 1649억원, 영업이익 107억원을 기록하며 흑자전환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32.7% 늘었고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유진테크 역시 1분기 매출 1019억원, 영업이익 188억원으로 시장 예상치를 웃돈 것으로 분석됐다.

전공정 장비는 D램과 낸드, 파운드리 등 여러 방향의 투자를 통해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다. HBM 공정의 후반 단계에 적용되는 TC본더와 달리 특정 전환기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 중국 고객사의 투자 수요도 뒷받침된다. 피에스케이는 중국 고객사의 비중 확대가, 테스와 유진테크는 D램 공정 전환과 증설 투자 등이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올해 1분기 실적은 반도체 호황의 낙수효과가 장비업계에 균일하게 전달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조사는 AI 수요를 기반으로 사상 최대 수준의 실적을 냈지만 장비기업은 장비군과 고객사, 매출 인식 시점에 따라 성과가 갈렸다는 분석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