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은 스마트폰용 반도체에 집중해온 사업 구조를 데이터센터로 넓혔다.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하나를 새로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인공지능(AI) 연산과 고객 맞춤형 반도체, 칩 사이의 데이터 연결까지 묶어 데이터센터 시스템 전반에 진입하겠다는 전략이다.
제품 출시 전부터 메타와 다세대 협력도 맺으며 고객 기반을 먼저 확보했다. 과거 서버시장 도전에서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은 만큼 본격적 진출이 예고된다.
국내 소부장 기업에도 수요 변화가 예상된다. 모바일용 칩보다 크고 복잡한 서버용 반도체가 늘어나면 대면적·고다층 기판과 고속 테스트 기술의 중요성도 함께 커진다. 기존 공급관계를 맺은 삼성전기와 AI·데이터센터용 테스트 사업을 확대하는 ISC 등이 퀄컴과 기술적인 접점을 만들고 있다.
◇대형 서버칩 내놓는 퀄컴…모바일 AP보다 커지는 패키지 퀄컴이 6월 말 인베스터데이에 공개한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C1000에는 연산을 나눠 처리하는 코어가 250개 이상 들어간다. 여러 개의 반도체 조각을 하나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작동 속도는 5GHz 이상을 목표로 했다. 메모리와 AI 가속기, 저장장치 등 외부 장치와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도 초당 2TB 이상으로 높일 계획이다.
대형화라는 키워드로 이해하면 쉽다. 대규모 AI 연산에서 발생하는 열을 식힐 수 있도록 공기와 물을 이용한 냉각 방식을 모두 지원한다. 제품 생산은 2028년 하반기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데이터센터용 반도체는 여러 개의 연산칩과 메모리, AI 가속기를 한꺼번에 연결해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아야 한다. 칩이 커지고 연결해야 할 장치도 많아지는 만큼 반도체의 기능을 받쳐주면서 각 부품 사이에 전기와 데이터를 전달하는 패키지기판의 면적과 층수도 늘어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기가 퀄컴의 주력 파트너다. 퀄컴은 삼성전기를 자동차·컴퓨터·확장현실·산업용 IoT 등으로 사업을 다각화하는 데 필요한 핵심 공급 파트너로 평가했다.
삼성전기는 이미 퀄컴에 수만장에 달하는 플립칩 볼그리드어그레이(FC-BGA)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전기가 양산 중인 AI·서버용 FC-BGA는 일반 FC-BGA보다 면적이 4배가량 크고 내부 층수는 2배 많은 20층 이상으로 구성된다. 고속 신호를 처리하면서 대형 기판의 비틀림과 층간 정렬 오차를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퀄컴의 대형 서버칩 설계 방향이 삼성전기가 확대 중인 서버용 고부가 기판 시장과 일맥상통한다.
◇데이터 통로 넓히는 퀄컴…삼성전기·ISC와 접점 퀄컴은 서버용 CPU와 AI 가속기뿐 아니라 이들 사이에서 데이터를 빠르게 주고받게 해주는 연결용 반도체도 함께 공급할 계획이다. 새 제품은 초당 최대 1.6테라비트의 데이터를 전송하고 같은 데이터센터 안에서는 최대 20㎞ 떨어진 장비까지 연결할 수 있도록 개발되고 있다.
AI 서버는 연산칩의 성능만 높인다고 빨라지지 않는다. CPU와 AI 가속기, 메모리 사이에서 데이터가 제때 이동하지 못하면 반도체가 계산을 멈추고 기다리는 간극이 발생한다. 퀄컴은 연산용 반도체와 데이터 연결 기술을 함께 개발해 이런 병목을 줄이려고 시도 중이다.
이 변화는 삼성전기가 개발 중인 서버용 기판과도 같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삼성전기는 여러 반도체를 하나의 기판에서 직접 연결하는 제품과 넓은 기판이 휘거나 신호가 약해지는 문제를 줄이기 위한 글라스기판을 개발하고 있다.
반도체를 검사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ISC는 AI·데이터센터용 반도체 패키지의 크기가 기존보다 두 배 가까이 커지고, 검사해야 할 접점 수도 약 5000개에서 최대 2만5000개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칩이 커지고 연결 부위가 많아질수록 더 넓은 면적을 빠르고 정확하게 검사할 수 있는 테스트 소켓이 필요해진다.
ISC의 IR 리포트에 따르면 실리콘 러버 소켓은 신호 경로가 500~1000㎛(마이크로미터)로 짧아 고속 신호 테스트에 유리하고 연성 소재를 사용해 칩렛 패키지와 기판의 손상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 ISC의 2025년 데이터센터 관련 매출은 148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67%를 차지했고 AI 관련 매출은 1494억원으로 1년 전보다 115% 늘었다.
ISC의 주요 글로벌 팹리스 고객사 역시 퀄컴이다. 퀄컴이 지향하는 대형 패키지·고속 입출력 환경이 ISC가 제시한 테스트 로드맵과 부합하는 것으로 보인다.
◇약속된 고객 메타 확보…양산 검증은 2028년부터 퀄컴은 제품 상용화에 앞서 메타와 데이터센터 CPU 공급을 위한 다세대 협력을 맺었다. 메타의 차세대 서버에 쓰일 예정이다. 단일 제품의 시험 공급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CPU를 전제로 협력한다고 밝혔다. 선제적으로 약속된 고객을 확보한 셈이다.
퀄컴의 서버 CPU 시장 도전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서버 프로세서 센트릭(Centriq) 2400을 상용 출하한 바 있다. 최대 48코어 제품으로 당시 인텔 제온이 장악한 데이터센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18년 사업을 축소한 뒤 센트릭 제품군은 사실상 중단됐다.
메타는 광고와 추천 서비스, 생성형 AI를 운영하기 위해 대규모 추론 인프라를 지속해서 확대하고 있다. 투자 전문가들도 메타와의 협업이 퀄컴의 실적 전망을 구체화한다고 봤다.
삼성증권은 수요가 늘면서 컴퓨팅 자원이 여전히 부족하고 메타 역시 자체 AI 모델의 성패와 관계없이 상당한 추론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메타와의 계약은 퀄컴이 홀로 자기 기술 검증을 하는 게 아니라 대규모의 자체적 기술력과 검증 시스템을 갖춘 고객과 제품을 함께 시험하는 전략인 셈이다.
국내 소부장에 대한 수요도 퀄컴의 C1000 생산 시점인 2028년보다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대형 CPU와 기판을 공동 설계하고 테스트 소켓을 개발한 뒤 고객 인증과 양산 수율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중심이었던 국내 기판·테스트 수요가 서버용 대면적·고다층 제품으로 이동하는 방향성이 뚜렷해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