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은행장은 금융그룹의 핵심 계열사를 이끄는 수장이자 보통 차기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는 자리다. 누가 이 자리에 앉는지에 따라 은행의 영업 전략은 물론 그룹의 승계 구도까지 영향을 받는다. 그만큼 연말 은행권 인사는 매년 금융권 안팎의 이목을 끌어왔다. 올해는 5대 은행이 동시에 행장 거취를 정해야 한다. 인사를 둘러싼 제도 환경마저 변화를 예고했다. 각 은행이 놓인 현주소와 은행장들의 지난 2년, 그리고 앞에 놓인 과제를 짚어본다.
정진완 우리은행장은 취임 당시 은행권 세대교체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혔다. 부행장 1년 만에 관행을 깨고 행장에 발탁됐고 취임 1년 만에 지주 회장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조직 쇄신이라는 취임 일성도 내부통제 정비와 평가체계 개편으로 착실히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은 과제는 실적이다. 우리은행은 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출 자산을 의도적으로 덜어내면서 순이익이 뒷걸음질 쳤다. 체력을 회복한 우리은행은 올해 들어 기업대출을 다시 늘리기 시작했고 다소 늦었지만 성과는 나오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에는 실적이 개선됐을 것으로 관측 중이다. 이에 연말 은행장 인사 전 사실상 마지막 성적표인 3분기 실적이 더욱 중요해졌다.
◇세대교체 요구 따라 발탁…1년 만에 회장 후보군까지 정진완 행장은 지난해 1월 취임했다. 그는 1968년생으로 포항제철고와 경북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우리은행의 전신인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종로3가지점장, 기관영업전략부장, 중소기업전략부장을 거쳐 중소기업그룹장을 지낸 영업 전문가다. 게다가 중소기업그룹장 재직 기간 우리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30조원 가량 늘었다. 당시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큰 증가폭이었다.
선임 과정 자체가 파격이었다. 정 행장은 2024년 말 행장 후보 롱리스트 6인 중 최연소였고 부행장 1년 차였다. 2년 차 이상 부행장이 후보군에 오르던 관행을 깬 발탁이었다. 당시 우리금융은 전임 회장 친인척 부정 대출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었다. 자회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자추위)는 세대교체와 조직 쇄신을 이끌 젊은 리더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선임 후 정 행장의 체급은 빠르게 커졌다. 정 행장은 지난해 말 우리금융 회장 후보 숏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내부 인사로는 임종룡 회장과 정 행장 단둘이었다. 임 회장이 연임을 확정하면서 회장 선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취임 1년 만에 그룹 승계 구도의 한 축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순익 덜어내고 자본 쌓은 시간…시간은 반등을 기다려줄까 취임 후 성적표에는 명암이 있다. 우리은행 순이익은 2024년 3조394억원에서 지난해 2조5896억원으로 14.8% 줄었다. 5대 은행 중 유일한 역성장이었다. 올해 1분기에도 53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6.2% 감소했다.
숫자의 이면에는 의도된 조정이 있다. 정 행장은 취임 직후부터 자본적정성 관리를 최우선 과제로 내걸고 자산 리밸런싱에 나섰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원화 기업대출 잔액을 154조962억원에서 148조2474억원으로 5조8488억원 줄였다. 위험가중치가 높은 중소기업 대출을 8조원 넘게 덜어냈다. 그 결과 우리은행 보통주자본(CET1)비율은 2024년 말 13.05%에서 올해 1분기 말 14.90%로 뛰었다.
내부 정비도 병행했다. 조직 통합으로 부행장 수를 줄였고 KPI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바꿨다. 수시 조직개편도 단행하면서 필요한 순간에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도 했다. 동시에 업무 매뉴얼화 등 내부통제 장치도 강화했다. 이에 내부서는 부정 대출 사태로 어수선했던 조직을 정 행장이 잘 수습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은 건 반등을 통한 입증이다. 체력을 회복한 우리은행은 올해 1분기 기업대출을 150조1113억원으로 다시 늘리며 확대 기조로 돌아섰다. 대기업 대출이 34조7202억원으로 뛰며 성장을 이끌었다. 그럼에도 1분기 실적은 역성장했는데 일회성 비용을 1분기에 털고 가자는 정 행장의 의지가 반영됐다. 2분기부터 본격적인 실적 상승 곡선을 만들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증권가서도 2분기부터 실적 회복이 시작될 것으로 관측한다.
또 이제 막 시작된 3분기 실적도 남아 있다. 지배구조 모범관행상 행장 승계 절차는 이르면 9월 시작되고 3분기 실적은 10월 말 공개된다. 인선이 마무리되기 전 정 행장이 내밀 수 있는 마지막 성적표다. 남은 세 달의 무게가 남다른 이유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고객확보가 성장의 근간'이라며 은행의 수익성 개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