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주요 6개 계열사는 올해 상반기 1조원 넘는 영업이익을 냈지만 현금은 오히려 줄었다. 영업으로 번 현금에서 투자와 배당을 뺀 잉여현금이 1조9649억원 마이너스였다. 지난해에는 롯데케미칼만 빼면 현금이 남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케미칼을 제외하고도 1조원 넘게 부족했다.
케미칼 밖의 부족분은 롯데건설과 호텔롯데에서 발생했다. 롯데건설은 영업이익을 냈지만 영업활동에서는 6853억원의 현금이 빠져나갔다. 호텔롯데도 토지를 6633억원어치 사들이면서 잉여현금이 적자로 돌아섰다. 여기에 롯데건설 신종자본증권과 관련해 두 차례에 걸쳐 4000억원 규모의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하면서 향후 추가적인 현금 부담 가능성까지 안게 됐다.
◇지난해, 케미칼 빼면 6056억 남아 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지주·롯데케미칼·롯데쇼핑·호텔롯데의 연결 실적과 이들 연결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롯데건설·롯데글로벌로지스의 실적을 단순 합산한 지난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은 3조7673억원으로 전년보다 21.4% 줄었다. 유·무형자산 취득액(CAPEX)을 4조8236억원에서 3조9820억원으로 17.4% 줄였지만, 영업현금 감소액이 CAPEX 감축액보다 컸다. 영업현금에서 CAPEX와 배당 4086억원을 뺀 잉여현금은 6233억원 적자였다.
적자의 원인은 롯데케미칼이었다. 케미칼 한 곳의 잉여현금 적자가 1조2289억원으로 6개사 합산 적자의 두 배에 가까웠다. CAPEX를 27.5% 줄였지만 영업현금이 1조5424억원에서 4889억원으로 감소했다. 2024년 운전자본에서 1조290억원이 들어왔던 효과가 지난해에는 731억원으로 줄어든 영향이다.
케미칼을 빼면 그림이 달라졌다. 나머지 5개사의 잉여현금은 6056억원 흑자였다. 롯데쇼핑이 8314억원, 호텔롯데가 5884억원을 남기며 현금 창출을 이끌었다. 유통과 호텔이 번 현금이 그룹의 버팀목 역할을 한 셈이다.
다만 5개사 안에서도 롯데건설은 이미 현금이 새고 있었다. CAPEX가 256억원에 불과했는데도 영업현금이 6220억원 적자였다. 장기성매출채권이 5228억원, 공사미수금이 3480억원 늘었다. 공사를 진행하고도 회수하지 못한 대금이 쌓였다.
◇건설 유출 6853억…지원한 호텔도 6360억 적자 올해 상반기에는 버팀목이 흔들렸다. 케미칼을 제외한 5개사의 잉여현금이 1조481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현금이 8597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9.3% 줄어든 가운데 CAPEX 1조6517억원과 배당 2561억원이 나갔다.
롯데건설의 영업현금 유출은 전년 동기 4555억원에서 6853억원으로 커졌다. 공사미수금이 5551억원 늘었고 공사초과청구는 4527억원 줄었다. 공사대금은 덜 걷혔고 앞서 청구해 받아둔 금액은 공사가 진행되며 소진됐다. 영업이익은 냈지만 이익이 현금이 아닌 채권으로 쌓였다는 의미다.
부족한 현금은 차입과 계열사 지원으로 메웠다. 롯데건설의 차입금은 6개월 사이 5726억원 늘었다. 지난 1월에는 금리 5.80%의 신종자본증권 3500억원을 발행했다. 지난해 12월 3500억원에 이어 한 달 만에 다시 자본성 증권을 찍었다. 1월 발행분은 특수목적법인(SPC)이 인수했으며,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은 각각 2000억원과 1500억원의 자금보충약정을 제공했다. SPC의 상환 재원이 부족할 경우 해당 금액만큼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이다.
호텔롯데는 지난해 5884억원의 잉여현금을 남겼던 곳이다. 올해 상반기에는 636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CAPEX가 전년 동기 837억원에서 8400억원으로 10배 늘었다. 연결 기준 토지 순취득액만 6633억원이다.
토지 취득은 롯데뉴욕팰리스 호텔 부지 인수에 따른 결과다. 호텔롯데는 2015년 호텔 건물만 사들이고 토지는 뉴욕 가톨릭 대교구에서 임차해왔다. 25년마다 갱신하는 임차료가 큰 폭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지난해 12월 4억9000만달러(약 7000억원)에 부지를 매입하기로 했다. 장기적으로 임차료 인상 위험과 리스부채를 줄이기 위한 선택이다.
당장의 자금 부담은 커졌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는 인수대금 가운데 3억달러(약 4300억원)를 증권사 네 곳에서 조달했다. 증권사들이 보장받은 수익률은 연 6% 초반대로 알려졌다.
호텔롯데는 외부에서 조달한 부지 인수대금을 차입금이 아닌 기타금융부채로 분류했다. 이에 총차입금이 6개월 사이 2854억원 증가한 것과 별도로 기타금융부채의 비유동 항목도 6503억원 늘었다. 여기에는 롯데건설 신종자본증권과 관련한 자금보충약정 4000억원이 포함됐다. 같은 기간 호텔롯데의 영업활동현금흐름은 전년 동기 5554억원에서 2040억원으로 줄었다.
롯데케미칼은 CAPEX를 9473억원에서 3332억원으로 줄이고도 9168억원의 잉여현금 적자를 냈다. 재고자산과 매출채권이 각각 7140억원과 4594억원 늘면서 운전자본에서 1조5999억원의 현금이 빠져나간 영향이다.
6개사 중 잉여현금이 흑자인 곳은 롯데쇼핑 2467억원과 롯데글로벌로지스 857억원뿐이었다. 다만 롯데쇼핑은 CAPEX에 포함되지 않은 투자부동산 취득에 별도로 2894억원을 지출했다.
롯데케미칼·롯데건설·호텔롯데에서 모두 현금이 빠져나갔지만 그 성격은 달랐다. 롯데케미칼의 재고·매출채권과 롯데건설의 공사미수금은 판매와 대금 회수에 따라 현금으로 전환될 수 있다. 반면 호텔롯데의 뉴욕팰리스 부지 매입은 장기간 임차료를 절감하는 대신 당장 조달비용을 부담하는 구조다. 재고·매출채권과 공사대금의 회수 속도, 자체 자금 수요가 커진 호텔롯데의 계열사 지원 여력이 하반기 그룹 유동성을 좌우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