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CFO

0

thebell desk

'한국형' 이사회

최명용 THE CFO 부장 겸 부국장  2024-04-24 07:12:46
이사회 중심 경영을 강조하는 회사들이 늘고 있다. SK그룹은 오래전부터 이사회중심 경영을 주문하고 있다. 수펙스추구협의회와 같은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있지만 계열사의 자율권을 최대한 보장한다. 그 과정에서 이사회의 견제와 지적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다.

롯데도 최근 이사회 중심 경영을 선포했다. 사외이사를 이사회의장으로 선임하고 부득이 사내이사가 이사회의장을 맡을 경우 선임사외이사를 도입하기로 했다. 사외이사들의 영향력을 그만큼 높이려는 시도다.

이사회는 한 회사의 최고 의사결정기구다. 이사회에서 내려진 결정을 수행하는 역할은 사내이사들이 맡는다. 이사회 중심 경영을 한다는 것은 사외이사에 더 역할을 준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상적인 이사회는 무엇일까. 이사들은 주주를 대신해 경영진을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능력 있고 전문성이 있는 이사들이 경영진이나 오너와 밀착없이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키우고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도록 시스템을 갖춘다.

이사회에 대해 기사를 쓰고 토론을 하면 종종 듣는 반문이 있다. '한국적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한국형 이사회가 한국 기업을 이끄는 데엔 더 유효하다는 반론들이 꽤 나온다.

이사회 경영을 선포했건, 안 했건 여전히 사내이사 중심의 경영이 더 일반적이다. 사외이사의 역할은 거수기 정도에 불과한 곳이 여전히 상당수다. 관료나 교수, 더욱이 여러 기업에 겹치기 사외이사를 하는 인사들은 한 기업의 의사결정에 전문성을 갖기 힘들다.

사내이사 혹은 오너 중심의 한국형 이사회는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중앙 집권화된 의사결정에 유리하다. 고도 성장기 한국 사회에선 주효했다. '이봐 해봤어'라는 말로 각종 반론은 묵살하고 밀어부쳤다. 그게 또 먹혔으니 한국형 이사회가 유효하다는 결론까지 이어진다.

미국 기업을 살펴보면 다양성과 전문성에 대한 고민의 깊이가 남다르다. 알파벳의 이사회 구성은 모두 10명이고 이중 사내 이사는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7명은 인종 민족 성별 면에서 모두 다른 다양한 이사 구성을 하고 있다. 은행에서 경력을 쌓은 금융전문가와 바이오회사 임원 등이 이사로 포진돼 있다. 벤처캐피탈 출신, IT기업 창업자 등도 독립이사(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테슬라는 일론머스크가 1인 독재를 하는 기업같아 보이지만 이사회엔 다양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9명의 이사 중 독립이사가 6명이고 자동차 기술 뿐 아니라 디자인, 사이버 보안 등에 대한 전문 인력을 이사진으로 포진하고 있다.

아마존이나 애플, 엔비디아 등 미국 기업 대부분은 다양한 인종과 경력을 가진 이사들을 통해 인사이트를 얻고 신사업과 새로운 거버넌스 체제를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가 다시 힘을 얻고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다양성에 바탕을 둔 이사회 시스템이 미국기업과 경제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 중 하나다.

한국 대기업들이 오너 중심의 경영으로 성장해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순 없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 돌입한 지금 또 다른 성장 동력을 만들려면 새로운 거버넌스와 새로운 이사회 구성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천편일률적인 관료 출신과 3~4군데 회사에 적을 두는 사외이사 전문 교수들로는 부족하다. 기업인 출신 이사회 멤버들도 필요하다. 타 업종, 심지어 경쟁사 출신, 헤지펀드 출신들의 의견도 수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외국인 임원, 다양한 인종, 성별 등 다양성에서 나오는 인사이트가 한국 기업엔 너무 부족하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 경제의 저성장 국면에 대해 '한강의 기적이 끝났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 전통 제조업 기반의 대기업 체제에선 더 이상 고도 성장이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를 타개할 신성장 동력은 1인의 머리에서 나오기 힘들다. 다양한 이사회 구성과 그 인사이트에서 답을 찾는 게 더 빠를 것이다.
< 저작권자 ⓒ 자본시장 미디어 'thebell',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