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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장사 배당 10년

'오너십 시프트' HD현대, 출범후 정기선에 1200억 지급

8년간 정몽준 부자 배당소득 7200억…재원은 현대마린, 오일뱅크 배당수익

고진영 기자  2025-03-17 08:27:59

편집자주

배당은 투자에 대한 직접적 보상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가장 기본적인 주주환원 방식이자 신뢰 구축의 수단이다. 또 배당정책은 기업의 재무상태와 현금흐름, 성장 수준을 나타내는 가늠자로도 기능한다. 단순한 이익분배를 넘어 잉여현금흐름을 효율적으로 관리, 주주와 경영진간 이해관계 일치를 도모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다. THE CFO가 지난 10년간 코스피 상장사들의 배당내역과 추이 변화를 되짚고 그 재무적 배경을 분석해본다.
HD현대는 대표적인 고배당주로 꼽힌다. 매년 유입되는 돈보다 많은 현금을 배당에 쓰는 중이다. 배경은 HD현대그룹의 거버넌스 변화에 있다. 전문경영체제에서 오너경영으로 회귀를 앞두고, 승계 재원 마련에 열을 쏟는 모습이다. 지주사 전환 이후 7000억원 이상이 오너일가에 흘러갔다.

◇영업현금 웃도는 배당규모, 오일뱅크가 2조 지원

THE CFO 집계에 따르면 HD현대는 2017년 지주회사로 전환한 뒤 지난해까지 8년 동안 총 2조356억원을 배당했다. 배당락일 기준이며 매년 2000억~3000억원대 배당금을 꾸준히 풀고 있다. 같은 기간 현금흐름을 감안하면 다소 무리한 지출이다.

HD현대는 2018년부터 배당을 시작했고, 2019년 집행돼 현금으로 빠져나갔다. 이때부터 HD현대는 한 해도 빠짐없이 배당 규모가 영업활동현금흐름을 웃돌고 있다. 별도 기준 영업현금에서 자본적지출(CAPEX)과 배당금을 쓰고 나면 돈이 남기는커녕 마이너스(-)가 발생했다는 뜻이다.

실제로 HD현대는 2019년부터 매년 잉여현금흐름(배당액 감산 기준)이 순유출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론 마이너스 328억원을 기록했다. 8년간 누적된 잉여현금 적자를 합산하면 9630억원에 달한다. 없으면 빌려서라도 배당했단 이야긴데, 2020년 2조원 수준이었던 총차입금이 작년 9월 말 3조원 규모로 뛴 이유라고 볼 수 있다.

HD현대의 배당재원은 대부분 자회사가 밀어주는 배당금이다. 매년 수천억원을 계열사에서 수취한다. 특히 비상장사인 HD현대오일뱅크가 가장 크게 기여하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는 지난 8년간 2조4400억원 이상을 배당했으며 이중 2조원 상당이 HD현대로 흘러갔다. HD현대는 현대오일뱅크 지분 73.85%를 들고 있는 최대주주다.

또 작년 기업공개(IPO)를 진행한 HD현대마린솔루션 역시 상장하자마자 배당을 크게 늘렸다. 현대마린솔루션은 애초 HD현대가 지분 100%를 보유하던 회사다. 그러다 2021년 미국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가 설립한 특수목적회사(SPC) ‘GLOBAL VESSEL SOLUTIONS, L.P’에 6460억원 받고 152만주를 팔았다. 상장 전 투자유치(프리IPO) 성격이다. 당시 지분율이 62%로 줄었고 지난해 상장을 위해 신주를 발행하면서 다시 55.79%로 축소됐다.

이 과정에서 HD현대는 대규모 유동성을 챙겼다. 현대마린솔루션이 지분 매각 바로 전인 2020년과 2021년 각각 1600억원, 1900억원의 통 큰 배당을 감행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3350억원이 HD현대 몫이 됐다. 지분을 넘기고 받은 대금과 합치면 1조원에 가까운 현금을 확보한 셈이다. HD현대가 배당을 돌연 확대한 시기와 일치한다.

HD현대는 2018년부터 2020년까지 2600억~2700억원 남짓을 배당하다가 2021년 3900억원, 2022년 3250억원으로 배당을 대폭 늘렸다. 현대마린솔루션 덕에 풍부해진 유동성을 활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뒤론 다시 연 2600억원 안팎을 배당하고 있다.

◇정기선 배당소득 1200억, 승계자금 핵심

HD현대의 배당금은 상당부분 오너일가에게 돌아간다. 소유구조를 보면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지분 26.6%, 아들인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이 6.12%를 보유 중이다. 합쳐서 32.72%인데, 이에 따라 지난해 배당한 2544억원 중 923억원을 정 이사장 부자가 가져갔다.

회사 출범 이후 8년간 두 부자가 받은 배당금을 셈하면 7200억원을 넘는다. 각각 정몽준 이사장이 약 6000억원, 정기선 부회장이 1200억원을 수령했다. 그동안 정 이사장의 보유주식수는 2021년 액면분할 영향을 제외하곤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정 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집하면서 지분율을 올리고 있다.

정 부회장은 2018년 KCC 소유였던 HD현대 주식 83만1000주를 블록딜(시간 외 대량 매매) 방식으로 매입해 5.1%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후 움직임이 없다가 2024년 5월 2일부터 7월 17일까지 거의 매일 HD현대 주식을 적게는 700주, 많게는 3만주 가까이 장내매수한다. 45차례에 거쳐 지분을 사들여 지금의 지분율(6.12%)로 늘렸다.

승계작업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는 평가다. 승계HD현대그룹은 정몽준 이사장이 1988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30년 넘게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돼왔다. 하지만 정 부회장이 2021년 HD현대 대표이사에 오르면서 오너경영으로 복귀를 알렸다. 2023년 부회장으로 승진, 지난해엔 수석부회장 타이틀을 다는 등 빠르게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남은 과제는 부친으로부터의 지분 승계다. 지분 매입 또는 상속을 통한 정공법이 유력하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현재 HD현대의 시가총액은 5조9000억원, 정몽준 이사장의 지분가치는 1조5700억으로 추정된다. 물려받을 경우 추정 세액만 8000억원에 육박할 전망이다. 정 부회장이 활용할 수 있는 재원은 배당소득이 핵심으로 보인다. 회사에서 받는 보수는 2023년 기준 6억원대에 불과해 크게 의미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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