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의 혁신은 경계 없는 탐험에 가깝다. 온라인 서점에서 시작했으나 클라우드와 인공지능, 콘텐츠사업까지 광범위한 영역으로 확장했다. 이제 단순한 리테일기업이 아닌 빅테크로 불린다. 새로운 동력을 성공적으로 키우면서 클라우드사업이 본업 영업이익을 추월하고 있다.
반면 삼성의 혁신은 반도체라는 좁은 영역에 집중돼왔다. 기술적 우위를 위해 막대한 자원을 투입함으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방식이 미래를 보장하진 않는다. 최근 반도체사업의 고전, 그리고 이어진 삼성바이오로직스 분할 결정은 삼성그룹의 전략 선회를 짐작케한다.
지난해 아마존은 6380억달러의 매출을 냈다. 이중 북미와 해외 커머스부문이 각각 3875억달러와 1429억달러, AWS(아마존웹서비스, 클라우드)부문이 1076억달러를 차지했다. AWS 비중이 가장 적지만 영업이익은 거꾸로다. 전체 영업이익 686억달러 가운데 AWS가 절반 이상(58%)인 398억달러를 벌었다.
클라우드사업은 가파른 성장세를 계속하고 있다. 2023년과 비교해 매출은 18.5%, 영업이익은 61.7% 급증했다. 기업들의 신기술 채택 주기 등을 감안하면 향후 몇 년간 둔화가 불가피하지만 경영진은 여전히 미래를 낙관 중이다.
올 초 앤드류 재시 아마존 CEO는 실적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모든 애플리케이션은 생성형 AI(인공지능)이 필수로 자리잡을 것”이라며 “그 대부분은 클라우드를 통해 제공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 AWS는 아마존의 가장 큰 성장동력이다.
애초 온라인으로 책을 팔면서 시작한 아마존은 이후 사업을 전방위로 넓혔다. ‘잡식성 공룡’이란 말을 들을 정도다. 2006년 AWS를 론칭했고 이후 킨들, AI 비서인 알렉사, 무인매장 아마존 고, 동영상 스트리밍업까지 진출한다. 리테일에서 AWS로의 동력 전환도 이런 과정에서 이뤄졌다.
끝없는 다각화의 배경엔 대마불사(too big to fail)란 없다는 창업자 제프 베조스의 신념이 있다. 그는 “대기업들의 수명은 100여년이 아니라 보통 30여년”이라며 아마존도 언젠가 파산할 것이라 예측하기도 했다. 시장 변화에 앞서가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새로운 시장 창출을 선택한 셈이다.
삼성그룹의 방식은 다르다. 덩치 큰 계열사를 많이 두고 있긴 하지만 사실상 비금융계열의 현금흐름 대부분은 삼성전자에서 나온다. 투자 역시 반도체사업에 집중적으로 이뤄져왔다. 삼성그룹이 지출하는 CAPEX(자본적지출) 중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90%에 가깝다. 이 전략은 수십년간 효과적이었으나 AI 시대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핵심 부품인 HBM(고대역폭 메모리)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한참 뒤처졌기 때문이다.
또 반도체산업은 기술발전 속도가 빠르고 대규모 투자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며,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에 따라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대표적 순환(Cyclical)산업으로 꼽힌다. 삼성의 반도체 중심 성장모델은 시장을 선도하고 그룹을 견인할 원동력과 함께 특정산업의 리스크에 취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건설, 중공업, 배터리 등 다른 계열사가 있지만 역시 업황에 크게 좌우되는 제조업 기반이다. 또 현금흐름이나 이익 기여도를 볼 때 반도체산업의 부침이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구조적 이슈는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존이 사업 포트폴리오를 통해 특산업의 위험을 분산시킨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최근 갈수록 치열해지는 기술 경쟁과 반도체 시장의 변동성, 지정학적 문제 등을 고려하면 삼성그룹이 새로운 수익축을 키울 필요성을 느낀 것도 놀랍지 않다. 대상은 바이오로 보인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 달 분할 결정을 통해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과 바이오시밀러 사업을 완전히 분리하기로 했다. 순수 지주회사로 신설되는 삼성에피스홀딩스를 설립, 바이오시밀러기업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100% 자회사로 편입한다. 이후 ‘세계 1위 바이오시밀러 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20종 이상의 바이오시밀러 제품군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존 림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는 "글로벌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양사가 각 사업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이번 분할을 결정했다"며 "성장을 가속화해 글로벌 톱티어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