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어 프레셔(Peer Pressure)'란 사회적 동물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무형의 압력이다. 무리마다 존재하는 암묵적 룰이 행위와 가치판단을 지배한다. 기업의 세계는 어떨까. 동일업종 기업들은 보다 실리적 이유에서 비슷한 행동양식을 공유한다. 사업 양태가 대동소이하니 같은 매크로 이슈에 영향을 받고 고객 풀 역시 겹친다. 그러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태생부터 지배구조, 투자와 재무전략까지. 기업의 경쟁력을 가르는 차이를 THE CFO가 들여다본다.
국내에서 치열한 2위 경쟁을 벌이고 있는 DB손보와 메리츠화재는 글로벌 사업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일찌감치 현지화 전략으로 글로벌 잠재력을 확인한 DB손보는 미국과 아시아 시장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해 왔다. 최근에는 미국 특수보험사 인수 협상 중으로 딜이 성사되면 유럽 시장으로도 거점을 확보할 수 있을 전망이다.
메리츠화재는 DB손보와 달리 해외에서 별다른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 유일한 해외 거점을 두고 있지만 한국계 기업이 주 고객으로 순익과 자산 규모는 미미한 수준이다. 원 메리츠 체제 출범 이후 수익성과 효율성 중심 경영 방향성이 더욱 뚜렷해지며 글로벌 시장 모색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DB손보, 미국·아시아 잡고 유럽 진출 시동
DB손보는 현재 미국 보험사인 포르테그라의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다. 포르테그라(지분 100%)는 현지에서 플로리다주에 본사를 둔 자동차보험 특화 보험사다. DB손보가 현지에서 상업용 건물 종합보험, 개인용 주택화재보험, 상업용 운송트럭 자동차보험 등을 취급 중인 만큼 현지 보험사 인수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DB손보 글로벌 네트워크 현황
이번 딜이 성사되면 미국과 아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DB손보의 글로벌 네트워크가 유럽까지 확장될 것으로 전망된다. DB손보는 현재 미국 뉴욕, 캘리포니아, 하와이, 괌 지역에 4개의 지점을 두고 있고 베트남 및 중국 현지 법인에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한편 포르테그라는 미국 뿐 아니라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각지에 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DB손보가 글로벌 진출에 뛰어든 건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첫 진출지는 괌으로 DB손보의 전신인 한국자동차보험의 해외 거점을 그대로 확보하게 되면서 영업을 시작했다. 당시 국내 기업계열 손보사들이 관계사의 물량을 확보하며 입지를 넓혀갔던 것과 다르게 DB손보는 일찌감치 현지인을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했다.
DB손보는 외국계 보험사들과 다르게 태풍 등 재해에도 철수하지 않고 신속한 보상으로 로컬 시장의 신뢰를 얻으며 지역 내 점유율 1위 보험사로 성장했다. 같은 전략으로 하와이와 미국 본토로 무대를 확장해갔다. 지난해말 기준 해외에서 발생하는 수입보험료는 4440억원으로 전체 수입보험료(15조8981억원)의 2.8%를 차지하고 있다.
이후에는 국가별 환경에 따라 직접 진출과 간접 진출을 병행하면서 거점을 확보해나갔다. 외국 보험사에 대한 규제가 강한 베트남에는 현지 손보사를 인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2015년 업계 6위권 보험사인 우정통신보험(PTI) 지분 37.32% 인수에 이어 2023년에는 현지 10위권 내 손보사인 베트남국가항공보험(VNI)와 사이공하노이보험(BSH) 지분 75% 인수를 단행했다.
◇메리츠화재, 유일한 인니 법인…현지화 보다 한국계 기업 고객 집중
DB손보와 달리 메리츠화재는 유독 글로벌 진출에서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메리츠화재는 인도네시아에 유일한 해외 거점을 두고 있는데 1998년 한국계 기업 코린도그룹과 합작 설립한 한진코린도보험(현 메리츠코린도보험)이 그것이다. 메리츠화재가 한진그룹 계열 보험사였을 때 만들어졌다.
메리츠화재 현지 법인의 주 고객은 코린도그룹과 현지에 진출한 한국계 기업이다. 현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보다는 기존 고객에 집중하고 있다. 시장 점유율도 0.3% 수준으로 미미하다. 인도네시아 손보 시장은 대기업 소유의 캡티브 보험사와 공기업 자회사를 중심으로 과점 체제를 형성하고 있어 외국계 보험사의 경쟁이 쉽지 않은 곳이다.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아 공격적인 투자도 나서지 않고 있다. 2011년 단행한 300억루피아(약 34억원) 유상증자를 제외하고는 현지 법인은 10년 넘게 추가적인 자본 확충 없이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현지 법인의 자산총액은 512억원으로 전년(649억원) 대비 21.1% 감소했다. 순익은 13억원을 기록했다.
인도네시아 외 추가적인 해외 진출 움직임도 감지되지 않고 있다. 글로벌 확장은 메리츠금융지주의 경영 방향성과도 맞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메리츠 금융 계열사는 2023년 지배구조 개편을 마무리한 후 원 메리츠 체제를 출범하며 자본 효율성과 수익성 제고를 통환 주주환원 확대를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사업은 초기 투입 비용이 크고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도 높아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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